프랑스 극좌 정당 “마크롱 대통령이 월권… 탄핵해야”

김태훈 2024. 9. 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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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추천한 새 총리 후보, 마크롱이 거부
“권위주의 대통령에 맞서 민주주의 지키자”
헌법상 절차 까다로워 실현 가능성은 낮아

프랑스 극좌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겨냥한 탄핵소추안 발의에 나섰다. 지난 7월 하원의원 총선거에서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이 승리했음에도 NFP가 추천한 새 총리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음으로써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 이유다. LFI는 NFP를 구성하는 여러 분파 중에서도 가장 강경한 세력으로 꼽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세르비아 국빈 방문 도중인 8월30일(현지시간) 프랑스·세르비아 양국 기업인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인공지능(AI) 포럼에 참석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AFP연합뉴스
8월31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LFI는 다른 정당들에게 “마크롱을 탄핵하려는 우리의 오랜 노력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 LFI 소속 의원들은 탄핵소추 결의안 초안을 이미 작성했는데, 여기에는 “하원과 상원은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성향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마틸드 파노 LFI 하원 원내대표는 이 초안 문건을 하원의 모든 의원들에게 보내 서명을 요청했다.

지난 7월 실시된 프랑스 총선에서 NFP는 가장 많은 의석을 얻어 원내 1당으로 부상했다. 마크롱이 이끄는 중도 집권당은 2위로 내려앉았으며,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이 전보다 의석수를 크게 늘리며 3위로 부상했다. 다만 어느 세력도 하원 전체 577석의 과반(289석 이상)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프랑스 극좌 정당 LFI의 마틸드 파노 하원 원내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LFI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겨냥한 탄핵소추 시도를 본격화하고 나섰다. AP연합뉴스
프랑스는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제 국가다.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는 과정에선 하원의 동의가 필요없다. 다만 하원은 총리 등 내각에 대한 불신임권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를 상대로 하원이 불신임안을 가결하는 경우 총리는 물러나야 한다. 안정적인 정부 구성 및 운영을 위해 대통령은 하원의원 과반이 지지하는 인물을 총리로 임명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올해 1월 마크롱이 임명한 가브리엘 아탈(35) 현 총리는 총선에서 집권당이 패배한 직후 사의를 표명했다. 마크롱은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파리 올림픽 기간 동안에만 총리직을 수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11일 올림픽이 끝났지만 마크롱이 새 총리를 임명하지 않으면서 현재 프랑스는 곧 물러날 ‘시한부’ 총리인 아탈이 정부를 이끄는 어정쩡한 상태다.

NFP는 “우리가 총선에서 이긴 원내 1당인 만큼 총리를 배출하고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파리시 재정국장으로 일하는 공무원 루시 카스테트(37)를 총리 후보자로 선정해 마크롱에게 임명을 촉구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아직까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NFP가 원내 1당인 것은 맞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한 것은 아니고, 따라서 원내 중도 및 우파 세력이 연합해 총리 불신임 투표를 추진하는 경우 정권이 무너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시 재정국장으로 일하는 공무원 루시 카스테트가 8월30일(현지시간) 사회당 주최로 열린 정치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카스테트는 사회당, LFI 등 좌파 정당들의 연합체인 NFP에 의해 차기 총리 후보자로 추천됐으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AFP연합뉴스
특히 LFI의 존재가 문제가 되고 있다. NFP는 LFI를 비롯해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중도 및 우파 세력은 이 중에서도 유독 LFI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강경 우파 정치인들은 “LFI가 정부에 참여하는 순간 총리 불신임 투표를 추진할 것”이라며 벼르고 있다. 마크롱 또한 “LFI는 정부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견해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LFI를 제외한 나머지 좌파와 중도 그리고 우파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시도하는 중이다.

“대통령이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추천한 총리 후보자 임명을 거부한 채 다른 정당들과 정치적 거래를 이어가는 것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 밖의 일로 위헌이며, 따라서 탄핵 사유가 된다”는 NFP 측의 주장에 대해 프랑스 헌법학자들은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1958년 제정된 지금의 제5공화국 헌법은 의회에 반드시 과반 다수 정당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헌법상 대통령 탄핵은 하원과 상원 모두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등 절차가 대단히 까다롭다. 따라서 NFP가 마크롱 탄핵소추를 시도한다고 해도 성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후 대통령 탄핵 사례는 아직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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