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연대기 1931~2011』 남화숙 “그때 그녀들이 없었더라면 민주화가 가능했을까” [김용출의 한권의책]
늦봄 어느 이른 아침, 대동강 기슭 모란봉 가장자리에 자리한 을밀대 밑을 지나던 평양 시민들은 누각 지붕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열변을 토하는 한 여성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그는 일제 경찰과 관계자들이 나타나자 지붕에 사다리를 대면 바로 뛰어내려 죽어버리겠다고 말했다. 쪽을 진 것으로 보이는 전통적 머리에,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한 그의 이름은 강주룡. 평원고무에서 일하는 여직공이었다.
“나는 평원고무 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감하(삭감)의 선언을 취소하기까지는 결코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근로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26쪽)
1931년 5월29일, 을밀대 위의 강주룡은 평양 시민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의 사연은 언론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체공녀 돌현!” 다음날 일간지 ‘동아일보’는 고무 노동자 파업을 알렸고, 이틀 뒤에는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앉은 강주룡의 사진을 큼직하게 게재했다. 사진에는 강주룡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팔짱을 낀 모습에선 어떤 결연함이 분명히 드러났다. 신문들은 앞다퉈 강주룡을 “옥상녀” “을밀대의 여인” “여투사”라고 불렀다.
강주룡은 격동하는 동아시아와 국제적 투쟁의 그물망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일제 식민지 조선은 중요한 분기점을 맞고 있었다. 전쟁을 앞둔 일제는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가운데, 주요 기업들은 대공황을 이유로 조선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주도했다. 강주룡을 비롯한 섬유 고무공장 노동자들은 기존 노동운동 경험과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영향을 받으며 자본가들에게 맞섰다. 일제와 자본가들 역시 여성의 투쟁이 불온 세력의 배후 조종으로 촉발된다는 소위 ‘배후 담론’을 펼치며 첨예한 대결을 이어갔다.
그의 일장 연설에 현장에 있던 한 개신교 장로는 눈물을 지었고, 평양 지식인들은 달변에 놀라움을 표했으며, 한 시인은 그를 ‘여투사’라고 추앙하는 글을 썼다. ‘체공녀(Women in the sky)’ 강주룡의 탄생이었다.
강주룡은 열네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만주에서 생활했고, 스물네 살에 귀국했으며, 1931년 평원고무 파업이 일어났을 때는 평양에서 생활한 지 5년째 되던 해였다. 그는 한해 전 노조에 가입했고 노동자 총파업을 경험하기도 했다.
한국학 분야의 대표적인 노동사학자로 평가받는 저자 남화숙은 책 『체공녀 연대기 1931~2011』(남관숙 옮김, 후마니타스)에서 “그때 그대들이 없었더라면?”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 고무공장 여공 강주룡부터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용접공 김진숙에 이르기까지 여성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과 기억의 복원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서 한 세기에 걸친 노동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들의 변혁적 기여를 논증하는 한편, 한국사에서 이들의 이름과 기억이 지워지고 사라진 과정을 추적한다.
이승만 세력은 수익성 높은 조방이 김지태와 같은 반이승만 그룹의 손에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조방을 확보해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적행위 혐의를 씌워서 기존 경영진과 노조 간부를 체포하고, 어용 사장으로 강일매를 투입해 노조를 무력화하려 했다. 하지만 조방 여성 노동자 수천여 명은 벽보를 붙이거나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다시 시위를 벌이며 강력하게 맞섰다. 비록 분열 공작과 공권력 투입으로 파업은 막판에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투쟁은 강력했다고 당시 노조위원장 안종우는 기억했다.
“깡패도, 뭉둥이도, 총소리도 그리고 개머리판도 거대한 노도와도 같이 밀어닥치는 종업원들의 자유와 권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고 뜨겁게 단결된 6000여의 ‘넋’을 막을 길이 없었다.”(210쪽)
“제가 크리스찬아카데미 교육을 받고 의식화가 되면서부터는 이게 인제 조그만 노동조건에서 시작해 우리 여성들이 정말 얼마나 남성들하고 불평등하게 대우를 받고 등등 사회에 제가 눈이 뜨인 거예요.”(로케트전기 노조위원장이자 한국 금속노조의 첫 여성 노조 지회장이었던 이정희씨, 280쪽)
크리스찬아카데미 교육을 모태로 한 ‘여성 해방노동자 기수회’ 운동과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주길자씨의 분투를 비롯해 1970~80년대 초 서울과 수도권에서 활발했던 여성 주도의 민주 노동조합 운동도 조명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과 가족 생활임금 담론의 제도화가 어떻게 여성 노동자들의 비가시성을 지속시켰는지 주목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속에 묻어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314쪽)
“1987년 민주화투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성공에 대한 여성 노동자들의 기여를 인정하는 데 자못 인색해진 요인 중 하나는 그들이 주도했던 부문의 민주노조 운동 자체가 사라지게 된 데 있다⋯.1970년대의 운동은 1980년대 운동 진영이 절대 따라서는 안되는 모델로 비난 받았다. 비판의 초점은 여성 노동자들이 명백한 정치적 목표를 위해 싸우는 대신 노조 강화와 현장 활동을 우선시하는 ‘경제적 조합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325쪽)
저자는 책 막바지에 21세기 신자유주의 하에서 해결되지 못한 노동과 여성 문제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여성 용접공 김진숙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김진숙은 한진조선소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서 2011년 1월6일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조선소의 35미터 크레인 위에 올라간 뒤 309일간 고공 농성을 감행했다. 그의 장기 고공 농성은 국내외적으로 큰 파장을 낳으면서 회사는 결국 정리해고 계획을 철회했다. 김진숙은 환호 속에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책은 2022년 존페어뱅크상과 2023년 제임스팔레상을 차례로 수상한 노작이다. 페이뱅크상 심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여성노동자를 가시화함으로써 성차별과 젠더 권력관계가 한국 사회를 괴롭히고 노동운동을 제약하며 오늘날 역사적 기억을 왜곡하는 깊은 사회적 보수주의를 영속화하는데 어떻게 작용했는지 보여준다.”(출판사 보도자료)
요컨대, 책은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두 가지 어려운 과제를 성취한 한국의 성공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분투가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규명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큰언니’ 격인 이철순이 여성 노동운동가 8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자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에서 외친 목소리를 거대한 메아리로 만든다.
“엄혹했던 시절 이름도 빛도 없이 노동운동을 일구어 온 그대들. 그때 그대들이 없었더라면 87년 대투쟁이 있었을까, 이땅의 민주화가 이만큼이라도 가능했을까, 오늘날의 민주노조 운동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324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후마니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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