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코인 행사에 축사 보낸 기시다… 블록체인 맹주 꿈꾸는 日
日 정부·자민당, 블록체인 산업 지원에 ‘원팀’
규제에 막힌 국내 업체들, 日로 발길 돌려
글로벌 블록체인 시장의 패권을 잡기 위한 일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한때 블록체인 강국으로 꼽혔던 한국이 최근 몇 년간 정부의 무관심 속에 쇠퇴하는 사이 일본은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 주도로 규제 완화와 지원 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1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8일 도쿄 더 프린스 파크타워 호텔에서 개막한 일본 최대 블록체인 콘퍼런스인 웹X 2024에서 영상을 통해 직접 축사를 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은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웹3 토큰의 활용과 결제 상용화, 콘텐츠 산업 육성 등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수반인 총리가 민간 행사에서 직접 축사에 나선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열린 웹X 2023 행사에서도 영상 축사를 통해 블록체인 규제 완화와 지원을 약속했다. 올해 행사에는 사이토 겐 경제산업상도 참석해 “일본을 전 세계 블록체인 기업가와 개발자가 모이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 아부다비·두바이와 함께 新블록체인 강자로
블록체인 전문 컨설팅업체인 해시드오픈리서치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일본이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두바이와 함께 세계에서 블록체인 업체들이 가장 주목하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자민당 산하에 설립된 ‘웹3 프로젝트팀’이 발행한 백서를 통해 제안한 내용이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며, 일본의 블록체인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3년 전부터 블록체인 산업 육성에 뛰어들었다. 지난 2021년 출범한 기시다 내각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워 인재와 과학 기술, 스타트업, 환경, 디지털 전환 등 5개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왔다. 이 가운데 웹3 스타트업과 디지털 전환의 핵심 축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2022년 블록체인 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한 전담 사무처를 신설했다. 의회는 스테이블코인(달러화 등 기존 화폐에 가치가 고정되는 가상자산)의 발행과 유통, 자금 세탁 방지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자민당은 매년 신규 정책에 대한 제언을 담은 백서를 발간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블록체인 산업을 키우기 위해 ‘원팀’으로 나선 것이다.
정부의 지원과 규제 완화가 3년간 이어지면서 일본의 블록체인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해시드오픈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가상자산 거래소 사업과 실물자산(RWA) 코인 발행, 채굴, 대체불가토큰(NFT) 발행 등의 사업을 하는 업체는 29곳에 이른다.
해외 블록체인 사업자들의 일본 진출도 늘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한국 진출을 시도했던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는 국내 금융 당국의 벽에 막히자, 일본으로 발길을 돌려 바이낸스 재팬을 설립했다. 컴투스와 넷마블 등 국내 게임 제작사도 현지 업체와 제휴하거나, 자체 발행 코인을 일본 거래소에 상장하는 방식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달에는 국내 IT 기업인 아이티센이 일본 RWA 코인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 “日, 맹렬한 기세로 앞서 나가… 정책 격차 좁혀야”
일본 블록체인의 성장세가 계속되면서, 국내에서도 정부와 금융 당국이 이에 대응해 규제 완화와 정책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냈던 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는 지난달 27일 한국증권학회가 주최한 정책 심포지엄에서 “일본이 블록체인 분야에서 맹렬한 기세로 앞서 나가고 있다”면서 “한국도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의 정책 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미국에서 승인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해 금융 당국은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유로 지금껏 승인을 거부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지난해부터 은행과 신탁회사 등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허용된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법안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토큰증권 시장 관련 입법도 지난 21대 국회에서 무산된 후 현재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일본이 강점을 가진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산업과 블록체인 기술이 결합되면 성장세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며 “정부와 금융 당국,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국내 업체가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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