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패럴림픽]'내가 걷는 길이 곧 새 역사' 태권에이스 주정훈, 사상 첫 패럴림픽 2연속 銅 획득
[파리=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한국 장애인태권도의 간판스타이자 사상 최초 '패럴림픽 메달리스트'였던 주정훈(30·SK에코플랜트)이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패럴림픽에서 2회 연속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는 놀라운 쾌거를 만들었다. 주정훈이 한국 장애인태권도의 역사를 또 새로 썼다.
주정훈은 1일 새벽(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년 파리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80㎏급 스포츠등급 K44 동메달 결정전에서 카자흐스탄의 눌란 돔바예프를 7대1로 꺾고 동메달을 쟁취했다. 이로써 주정훈은 지난 20202 도쿄패럴림픽에 이어 패럴림픽 2연속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도쿄 대회 때 주정훈은 이미 한 번의 역사를 썼다. 한국 장애인 태권도 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 획득이었다. 이번엔 '2연속 메달획득'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이날 동메달 결정전에서 주정훈은 경기 초반 경고 1개씩 주고받아 1-1로 맞섰다. 그러나 곧 리드를 잡았다. 왼발차기를 돔바예프의 몸통에 적중하며 3-1을 만들었다. 기세를 이어 종료 3분10초전에 또 몸통 공격을 성공시켰다. 5-1로 벌어졌다. 주정훈의 날카로운 발차기는 계속 이어졌다. 1분 50초전에 반격기로 돔바예프의 몸통에 또 발을 꽂았다. 7-1로 스코어가 벌어졌고, 곧 경기가 종료됐다. 주정훈이 시상대 세 번째 높은 곳에 서게 됐다.
동메달 결정전 때의 집중력이 앞서 4강에서도 나왔다면 결승까지도 바라볼 만 했다. 주정훈은 앞서 4강전에서 아쉬운 역전패를 허용했다. 멕시코의 루이스 마리오 나헤라를 만나 경기 초반 7-0까지 앞서 나갔다.
결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던 순간이다. 하지만 상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접근 공격을 하며 주정훈을 추격했다. 7포인트 차이는 금세 좁혀졌다. 결국 연장으로 경기가 이어졌고, 주정훈이 8대10으로 역전패했다.
주정훈은 "항상 1등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상상을 해왔다. 비록 8년간 한 번도 내가 상상했던 걸 이루진 못했지만, 그래도 값진 동메달을 따내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메달 획득 소감을 밝혔다. 이어 "첫 판에 세르비아 선수와 경기하다 무릎에 골반을 맞았다. 뼈와 근육 사이가 너무 아려서 이후 경기 할 때 계속 거슬렸다. 지금은 다리가 잘 안올라갈 정도다"라며 부상을 안고 경기했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주정훈은 '부상 때문에 동메달 결정전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나'라는 질문에 "솔직히 한 99번 정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옆에서 (김예선)감독님이 '나약한 소리 하지 마라.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정신 차려라'고 계속 옆에서 이야기해주셨다"면서 "화장실에서 혼자 앉아 마음 정리를 했다. 그렇게해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진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하고 나왔다"고 승리 비결을 밝혔다.
생애 두 번째 패럴림픽 메달을 목에 건 주정훈은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을 만날 계획이다. 특히 어린 시절 장애를 남긴 사고 때문에 평생 가슴에 짐을 안고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 메달과 소고기를 올릴 예정이다. 주정훈은 만 2세 때 경남 함안군 시골 할머니 댁에 머물다 소 여물 절단기에 오른손을 크게 다쳤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 대신 어린 주정훈을 돌보던 외할머니 고(故) 김분선 씨는 이 사고 이후 평생 눈물을 달고 살아갔다. 아들 내외와 손자에게 늘 '내가 죄인'이라며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작 주정훈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고다.
주정훈은 태권도 선수로 대성해 패럴림픽 메달을 건 모습을 외할머니에게 보여주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잘 자란 손자를 보며 할머니가 죄책감을 덜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2021년에 열린 도쿄패럴림픽 때 동메달을 딴 주정훈의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는 주정훈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요양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주정훈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외할머니가 임종 순간 외손자의 이름을 불렀다는 이야기만 전해들었다.
여전히 주정훈은 외할머니에게 메달을 보여드리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파리패럴림픽을 마친 뒤 메달과 함께 외할머니가 평소 좋아했던 소고기를 잔뜩 사서 갈 계획이다. 외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손자가 한국 패럴림픽 출전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을. 주정훈은 한국 최초의 패럴림픽 태권도 메달리스트이자 2회 연속 메달리스트다.
파리(프랑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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