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선거 포퓰리즘’에 나랏빚 쑥… 세계경제 뇌관되나 [세계는 지금]
1분기 세계 부채 315조弗… 1년새 8조弗 ↑
정부 비중 3분의 2… “2차 대전 이후 최악”
美, 코로나 거치며 사상 첫 35조弗 돌파
IMF “인플레·재정 불안 부를 수도” 경고
佛 신용등급 강등… 英 적자 GDP 6% 달해
선거 겨냥한 부자감세 공약 등 부채 악화
채무 불이행 등 현실화 땐 ‘도미노 위기’
‘빚을 지지 말아라’라는 문구는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개인들이 흔히 듣는 조언이다. 빚이 삶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탓이다. 그러나 개인이 아닌 국가 경제에서 적당한 빚은 사실상 필수적 요소다. 감당 가능한 부채는 오히려 경제를 더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만, 국가의 경우에도 부채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오히려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현재 전 세계가 보유한 빚의 규모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지난 5월 내놓은 ‘글로벌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세계 부채 규모는 315조달러(약 43경4700조원)에 달해 1년 전인 지난해 1분기에 비해 8조1000억달러나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CNBC방송은 “글로벌 부채 규모가 2차대전 이후 가장 크고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증가했다”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세계 각국의 빚이 향후 여러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례적으로 미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IMF는 “최근 미국의 예외적인 경제성장은 인상적이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재정적인 입장과 강한 수요 요인이 반영된 결과”라면서 “과도한 지출이 인플레이션 악화 사태를 촉발할 수 있고, 세계적인 자본 조달 비용 상승에 따른 장기적인 재정·금융 안정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 역시 막대한 정부부채를 안고 있다. 영국의 정부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01%인 2조7000억파운드(약 4760조원), 재정적자는 GDP의 6%인 408억파운드(72조원)에 달한다.
공교롭게도 이들 세 국가 모두 대선, 총선 등 대규모 선거를 앞두고 정부부채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해졌다. 미국은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고, 영국과 프랑스는 모두 지난 6월 조기선거를 치렀다.
미국의 경우 재선을 노리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거를 1년여 앞두고 전기차 생산 확대 등을 포함한 청정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의 공격적인 보조금 지급 재정확대 정책을 폈고, 이는 미국 경제가 활황세를 이어간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자연스럽게 정부부채도 대폭 늘어났다.
영국 역시 리시 수낵 전 총리가 이끌던 보수당 정부가 부자 감세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하며 정부부채 문제를 더 악화시켰고, 프랑스 역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한 법인세 감축 등 친기업 정책이 세수를 감소시키며 정부부채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직 선거가 끝나지 않은 미국은 정부부채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해서 제기된다. 대선 레이스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정부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은 지난 5월 야후 파이낸스 인터뷰에서 “양당 후보 모두 정부부채 문제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공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를 사퇴한 뒤 후보자격을 이어받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재 미국 정치가 부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정치인들이 안이해지고 부채관리를 위해 필요한 세금이나 지출 관련 결정을 피하면 오히려 경제가 위험해진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슈퍼 선거의 해’라고 불릴 정도로 전 세계에서 크고 작은 선거가 연이어 치러지고 있다. 선거를 치르는 정부는 표를 얻기 위해 정부지출 확대와 감세 등을 통한 무분별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선거 국면을 통해 한층 더 심각해진 정부부채 문제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올해 회계연도에 지급할 정부부채에 대한 이자가 8920억달러에 달하며 이는 국방 예산과 메디케어, 노인 및 장애인을 위한 건강보험 예산보다 더 많은 액수다. 결국 이런 막대한 이자비용이 국가재정을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미 의회 재정 감시 기관인 의회예산국(CBO)은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10년 후 미 정부의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22%, 30년 후인 2054년에는 166%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경제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채가 GDP의 150~180% 수준에 도달하면 경제와 사회 전반에 매우 심각한 비용이 발생한다고 본다. 이자지급 부담이 끝내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다. 심각한 경우 채무불이행이나 국가파산 등 괴멸적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이미 상당수 선진국들의 정부부채가 이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중 GDP 대비 정부부채 비중이 100%를 넘어선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은 향후 글로벌 경제상황에 따라 언제든 정부부채가 국가 경제 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 정부부채 비중이 200% 이상으로 세계 최대규모인 일본의 경우 국채의 90% 이상을 자국 기관과 일반 국민들이 소유해 국가부도 등 최악의 상황으로 발전할 확률이 크지 않다고 평가받지만 역시 위기 가능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부채로 인한 위기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정부 지출 확대로 시장 불안이 확대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도 충분히 존재하며, 이는 국가 성장동력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시장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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