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는 개과천선할 수 있을까?

김창훈 칼럼니스트 2024. 8. 3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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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견문록]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존 듀이, 얼마나 유명한 철학자인가? 그럼에도 필자는 이전에 듀이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필자를 이 책으로 이끈 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현실화되는 한미일 군사동맹은 동북아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경제위기는 복지예산에 대한 대폭적인 감축과 사회적 통제의 분위기를 가져올 것이다. 수천 조가 몰린 부동산 경제가 얼어붙는다면 생각하기 싫은 상황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런 위기의 배경에는 늘 '자유'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얼마나 '자유'를 말해왔는지 생각해보라.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미일동맹을 추진하고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북한과의 일전도 불사하려 든다. 자유에 지친 필자는 이딴 '자유'를 제대로 말해주는 사상가는 없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다 존 듀이를 만났다. 새롭게 만난 듀이는 실용주의자라고 간단히 소개될 철학자가 아니었다. 듀이는 '자유주의'를 재정립해 대공황시대가 초래한 갈등과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려한 대사상가였다. 시대와 대결한 듀이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김진희 옮김, 책세상 펴냄)을 펼쳤다.

1929년 경제대공황이 찾아오면서 방임적 자유주의를 당연시했던 미국은 몹시 당황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방임적 자유주의로는 위기 극복은 불가능했다. 한편으로 계급투쟁에 기반한 사회의 혁명적 재편을 꿈꾸는 세력 역시 지식인을 중심으로 강력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자유주의는 대공황이라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존 듀이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유주의를 꺼내 들었다. 그의 자유주의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임 자유주의가 아니라 기간산업에 대한 국유화를 주장하는 불온한 급진자유주의였다.

듀이는 자유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적인 태도를 잘 알고 있었다. 듀이는 이렇게 적고 있다. "자유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위기의 순간에는 늘 자본주의의 지배자편에 서는 자들이다."(상기책 인용, 인용 미기재시 동일) 듀이는 기득권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자유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먼저 자유주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듀이는 근대 자유주의의 비조로 로크에 주목한다. 로크는 소유권을 포함한 개인의 권리 보호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다. 이런 가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시민 혁명의 권리도 주창했다. 로크는 개인의 권리를 그 무엇보다 중심적 가치로 설정함으로써 개인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소유권을 중시하고 정부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한 로크식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관습적 법체계에 얽매여 있던 사회를 해방시킨다. 그러나 로크의 개인 정향의 자유주의는 소유권을 지나치게 중시해서 정부와 개인을 적대적 관계로 설정하는 지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체제가 완성된다. 이때부터 자유주의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개인의 천부적 자연권 특히 소유권보호에 주목하는 개인적 자유주의는 자본주의가 초래한 사회적 모순을 봉합하는 데 어려움을 보였다. 아동노동금지라는 사회법이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 계약거래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이유로 한 위헌판결이 대표적 사례였다. 개인의 천부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자유주의가 기득권의 소유권보호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19세기 초반에 대세가 되기 시작한 방임적 자유주의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통합기능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 듀이의 말이다. "19세기 중반에 이르자 상황이 급변했다. 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한 경제·정치적 변화가 대부분 성취되면서, 이번에는 그들이 기득권자가 되었으며 그들의 신조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의 형태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지적 정당화를 제공했다." 전투적 지식인의 대명사였던 자유주의자가 어느새 자본에 길들여진 순한 애완견이 되었다. 무엇이 이들을 완고한 기득권자로 변하게 만들었을까?

듀이는 자유주의자들의 역사적 감각의 결여를 거론한다. 자신들의 사상과 입장이 특정 역사 속에서 구성된 것임을 메타인지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즉 현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 역시 역사적 환경과 조건의 산물임을 깨닫지 못했다고 듀이는 지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불변의 진리로 내세웠다." 즉, 자유주의가 자유로운 이념이 아니라 개인의 자연권 보호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내세우면서 교조적 도그마가 되어버렸다. 자유주의는 결국 '단호한 개인주의'(rugged individualism) 즉 외부 환경에 의존하지 않는 홀로 독존하는 개인을 이상적 인간으로 설정하게 된다. 자족하는 개인이 이상화되면 약자에 대한 공적구제도 수혜자를 빈곤케 만드는 잘못된 정책이 되어버린다. 이상주의적이기에 오히려 현실을 무시하는 이런 지식인들을 되돌려 세울 방법은 없을까? 듀이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철학에서 찾았다. 그는 사상과 철학을 그 자체의 진리값으로 인정하기보다 시대적 문제해결의 도구로 보는 실용주의 즉 도구주의를 주창했다. 기득권의 방패가 되어버린 자유주의에 대한 탁월한 비판이 가능했던 것도 사상, 이념조차 인간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그의 철학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듀이는 자신에 앞서 자유주의의 혁신을 선취한 사상가를 소개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토머스 힐 그린이다. 그린은 독일의 유기적 관념론을 영국에 도입한 인물이었다. 그는 국가의 의무는 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실현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을 공동체와 떨어진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사회와 함께 존재하는 유기적 존재로 생각했다. 그에 의해 자유가 개개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본질적 무엇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사회적으로 성취되어야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자유주의 역사에서 그린은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

한국에서 사회적 자유주의를 주창하는 대표적 학자 서울여대 문성훈 교수는 그린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소유물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자아실현의 방해가 된다. 그렇다면 재산이 필요한 것보다 적거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이들에게는 자아실현이 불가능한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그린은 재산이 없어서 자아실현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다시 말해 실업자나 노인등 사회적 약자에게 일정정도의 소유물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소유물을 과다하게 독점함으로써 타인의 소유를 방해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그린의 대답은 소유물의 과도한 독점은 제한되거나 철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새로운 사회적 자유주의> 문성훈 지음, 사월의 책 펴냄) 요즘 한국에서 출몰하는 자유주의자와는 격이 다르다.

듀이는 자유주의가 기득권이데올로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활용하자고 요청한다. 왜일까? 자유주의가 주목한 자유, 개인을 강조하는 개별성, 해방적 지성의 이념은 절대 폐기해서는 안될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지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간과하는 지점이 이것이다. 현실 사회주의는 개별 인간의 개별성을 보호하는 데에 있어서 취약했다. 물론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정보의 대부분은 서구의 조작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적어도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서구의 온건 사회주의자들을 감동시킬 정도의 흘러넘치는 개인주의는 없었다.

개인이 담론 구조의 핵심에 잡리잡게 된 것은 서구 근대계몽사상부터였다. 사회주의에는 인간의 개별성에 주목하는 이론이 내장되어 있지 않다. 물론 사회주의에 근접하면서 개인에 천착한 사상가들도 있다. 인간 중심 철학의 창시자 황장엽과 개인의 진정성의 철학적 의미를 궁구한 공동체주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가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이 담론장에서 확고한 지반을 구축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 자유주의는 분명 현재의 오명에도 불구하고 인간 정신의 역사에서 흔들리지 않는 지반을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듀이는 인간의 자유와 개별성의 가치를 온존시키기 위해서 자유주의를 폐기하는 대신 혁신하려 한다. 이때의 자유주의는 이전과는 완벽히 다른 자유주의다.

어떻게 다를까? 듀이는 다른 자유주의를 위해 사회조직의 형태를 새롭게 조직해야 할 것을 역설한다. 기존의 억압적 사회제도가 사라진 후 원자화된 개인들을 결합시킬 사회조직의 부재는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듀이는 유일하게 가능한 사회조직형태를 생산력에 대한 '협동적 통제'에서 찾았다. 듀이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보다는 보다 온건한 방식의 협동조합이나 집단적 통제에 방점을 둔 것 같다. 듀이가 이런 사회주의적 정책을 주장하는 이유가 있다. 듀이는 자유주의의 최종 목표인 인간 자유의 확대와 자아실현을 개인들의 사적 이익 추구에만 맡겨두어서는 제대로 달성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호소한 고전적 자유주의 대신 조직화되고 집단적인 사회개혁프로젝트가 사회개혁의 유력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듀이는 생각했다.

마침내 듀이는 이렇게 단언한다. "급진주의를 급진적 변화에 대한 필요성의 인식이라고 정의한다면 오늘날 급진주의가 아닌 자유주의는 의미도 전망도 없다."

듀이는 이 작은 책을 통해 자유주의는 '빨간 맛'일 때에만 진짜임을 가르쳐준다. '레드벨벳'의 '빨간 맛'이든 듀이의 '빨간 맛'이든. '빨간 맛'은 언제나 진리다.

▲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김진희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김창훈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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