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0억 ‘이것’에 쓴 천재 소설가...작품마다 매번 등장시킨 이유 [전형민의 와인프릭]
찰스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Hard Times)에는 스티븐 블랙풀과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의 부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디킨스는 스티븐의 아내를 통해 알코올 중독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을 서늘하게 묘사하고, 알코올 중독이 사회적 맥락에서 심각한 문제로 다뤄져야한다는 점을 시사했습니다.
“그녀는 누더기 옷과 얼룩투성이의 모습만큼이나 그녀가 초래한 도덕적 타락과 술주정으로 인해 스티븐에게 큰 불명예를 안겨주었기에, 보기에도 끔찍한 존재였다.” (어려운 시절 中)
이런 신랄하고 노골적인 묘사는 당시 그가 살던 시기가 산업 혁명이 절정이던 빅토리아 시대였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덕분에 대중이 도시로 모여들어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되며 빈곤층으로 전락하던 시기, 이들을 위한 값싸고 도수 높은 술 진(Jin)이 공급됩니다.
문제는 진이 너무 과하게 음용되면서 알코올 중독과 범죄 등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야기됐다는 점 입니다. 후세에서는 당시를 진 광기의 시대(Gin Craze age)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한때 기자였던 디킨스는 당시 시대상을 글을 통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재밌는 것은 디킨스 본인도 매년 와인값으로 1만5000파운드를 쓰던 와인광(狂)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화폐가치로는 약 180만 파운드, 한화로 따지면 30억원에 가까운 금액인데요. 그토록 알코올 중독에 대해 경고하던 이가 알고보면 와인광이었다는 점이 아이러니 합니다.
분류하기에 따라서는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을 쓴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와 함께 근현대 대중문학의 시초 중 한 명으로 여겨지기도 하죠. 실제로 이날 그의 편지는 7000파운드(한화 약 1120만원)에 팔렸습니다.
달랑 1장 분량의 편지에는 런던의 와인 수입업자인 제임스 리버모어에게 자신이 구매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와인 13갤런(약 50리터)이 운송 중 누출돼 대부분 손실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남은 와인을 잘 병입(柄入)해달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디킨스가 편지 작성 2주 후 실제로 리버모어에게 병입 작업에 대한 수고비로 20파운드를 지불한 영수증을 비롯해 와인을 사들인 장부 등이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보면, 디킨스가 와인을 어지간히 사모은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다만 그는 와인을 대부분 소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사망 전 작성된 유산 목록 중 그의 저택인 개즈힐 플레이스(Gad’s Hill Place) 셀러에 저장된 와인은 포트와인 200병, 샴페인 60병, 샤블리 60병, 스위트와인 60병, 레드와인 100병, 증류주 20병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작품 초반부, 와인통이 거리에서 깨지며 와인이 흘러나오는 장면이죠. 가난한 사람들이 흘러나온 와인을 손으로 퍼마시는 모습은, 그들이 느끼는 절망과 갈증, 다가오는 혁명적 격변을 암시합니다. 와인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변화의 메타포로 작용한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에서도 와인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 에비니저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 정신을 깨닫고 변화한 후, 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만찬에 와인이 등장하죠.
이 장면에서 와인은 화합과 따뜻함, 그리고 새롭게 찾은 가족적 유대감을 상징합니다. 디킨스는 이런 와인의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도 와인은 상류층과 하류층 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이 작품에서 부유한 인물들이 즐기는 와인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와인과 같은 사치품을 누릴 수 없습니다. 계급 간의 격차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도구로 와인이 쓰인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현실 친구들과의 사교 모임에서도 와인을 중요한 요소로 활용했는데요. 와인을 단순한 음료가 아닌 대화의 촉매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와인을 마실 때면, 그곳을 여행했던 이야기를 공유하는 식입니다.
와인이 슬픔과 사랑, 행복과 고통 등 인간의 감정을 나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더 나아가 와인을 통해 사람들이 연결되고 대화하며 문화적 경험을 풍부하게 가꿔나간다고 본 것이죠.
한편 디킨스의 시대로부터 20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와인에 대해 권위적이고 어려운 음료라던가, 복잡하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음료라는 시각이 덧씌워져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디킨스는 일찌기 와인이 그런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자신의 에세이, 비상업적 여행자(The Uncommercial Traveller)에서 그는 와인이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누구보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를 통해 작품을 창작했고 와인을 사랑했던 만큼, 와인의 미래를 특유의 통찰력으로 미리 내다봤을지도 모릅니다.
슬슬 끝이 보이지 않던 더위가 누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와인과 함께 오래 전 읽었던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의 소설 속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 대입할만한 또 다른 통찰력을 찾게될 지도 모릅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어르신, 운전면허 반납하면 60만원 드려요”...전국서 가장 많이 주는 곳 어디? - 매일경제
- “옷 다 벗으면 아이폰 줄게”…나이트클럽 ‘옷 벗기 대회’에 러시아 발칵 - 매일경제
- “내 꿈 산산조각 났다”…30번 성형 13억 쓴 브라질女 ‘날벼락’, 무슨일이 - 매일경제
- 파리 올림픽 아쉬움 털었다…우상혁, 로마 다이아몬드리그 우승 - 매일경제
- 아침 구보 중 쓰러진 이등병 끝내 숨져…누리꾼들 “이래서 군대 보내겠나” - 매일경제
- “시원하게 헐벗겠다”…‘파격 노출’ 산다라박, 워터밤 끝나자 한 일 - 매일경제
- “교통사고로 폐차, 새 차 샀는데”…‘이것’ 몰라 거액 날렸다, 뭐길래 - 매일경제
- “와, 죽을 뻔했네”…100m 날아온 화살 운전석에 꽂혔다 - 매일경제
- “축의금 넣어야 식권 발급”…결혼식장 키오스크에 ‘하객=돈 vs 편리하다’ - 매일경제
- ‘성추행 혐의’ 피겨 이해인,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출전 어려워졌다…3년 자격 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