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죽음’ 뒤엔 에어컨 설치 떠넘기기가 있다
찜통더위로 낮 기온이 34도까지 올랐다. 2024년 8월13일 전남 장성의 중학교 급식실에선 에어컨 설치 작업이 한창이었다. 선풍기 단 두 대만 돌아가는 실내에서 설치기사 넷이 땀을 뻘뻘 흘렸다. 오후 4시40분쯤 한 사람이 급식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구토하다 자리로 돌아가는 듯하다 구토하길 반복했다. 비틀거리던 그는 결국 의식을 잃고 학교 화단에 쓰러졌다. 팀장과 동료들은 119 신고 등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후 5시10분엔 어머니에게 쓰러져 있는 아들 사진을 보내며 “평소 (아이에게) 정신질환이 있었느냐. 데려가라”고 연락했다. 이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뒤늦게 119에 신고한 건 오후 5시28분께. 쓰러진 직원의 체온은 측정이 불가할 만큼 치솟았고 의식은 거의 혼수상태였다. 병원에 옮겨졌지만 그는 끝내 숨졌다.
이리저리 떠넘겨지는 에어컨 설치 노동
숨진 이는 27살 양준혁씨다. 사망 전날 업소용 에어컨 설치 업체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일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온열질환으로 숨진 것이다. 가족들은 장례를 미루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찍어 보낼 시간에 119 신고라도 했다면 사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수사하시는 모든 기관에게 (진상규명을) 두 손 모아 간절하게 자식 잃은 엄마가 애원 드립니다.”(8월19일 기자회견) 이들은 준혁씨를 땡볕에 방치한 하청업체 팀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하청업체와 원청 삼성전자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준혁씨의 죽음을 막을 순 없었을까. 회사 동료들은 왜 준혁씨를 방치했을까. 정확한 사고 원인은 수사 중이지만, 에어컨 설치기사의 파편화된 노동환경에 최소한의 실마리가 있다.
에어컨은 전문기사의 설치가 필요한 가전제품이다. 설치 서비스가 없으면 고객은 에어컨을 사지 않는다. 뒤집으면 설치 서비스는 에어컨을 파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그래도 에어컨 설치기사들은 비정규직이다. 가전 제조사가 설치노동을 자회사와 하청업체에 이리저리 떠넘기는 탓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가정용 에어컨을 팔 때는 자회사 삼성로지텍에 설치노동을 위탁한다. 로지텍은 이를 다시 설치기사들에게 위탁한다. 일종의 재하청인 셈이다. 업소용 에어컨을 팔 때는 지역별로 난립한 수백 개 하청업체에 맡긴다. 삼성이나 엘지(LG) 이름을 단, 이른바 ‘전문점’이라 불리는 업체들이다. 이들 하청업체는 직접 설치하기도 하고 다시 하청을 주기도 한다. 엘지전자도 마찬가지다. 가정용 에어컨은 자회사 판토스에, 업소용 에어컨은 지역 하청업체에 설치노동을 맡긴다.
일감을 따는 하청업체는 대부분 영세업체다. 직원 규모가 커야 10명이고 5명 미만인 경우도 허다하다. 준혁씨가 속한 회사 ‘유진테크시스템’도 대표를 포함한 전 직원이 5명이었다. 이 회사는 준혁씨가 입사한 첫날 12시간 일을 시켰다. “주머니에 넣어둔 담배가 다 젖을”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근로계약서는 안 썼다.
이튿날 준혁씨는 비틀거리며 알 수 없는 말을 하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열에 따른 의식장애는 온열질환의 대표적 증상이나, 업체 팀장은 ‘정신질환이 있냐’고 가족에게 물었다. 동료들은 준혁씨가 딴짓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업체가 작업자 온열질환 위험을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솔직히 나도 사고를 접하기 전까진 온열질환이라는 걸 잘 몰랐다. 여름철이 워낙 일이 바쁜 시기이고 누가 제대로 알려준 적도 없었다.” 충남 천안에서 일하는 에어컨 설치기사 ㄱ씨의 말이다.
이와 달리 가전 제조사에 직고용된 수리기사는 온열질환 예방 수칙을 문자로 안내받는다. 폭염주의보 발효시 대처방안과 온열질환 예방법, 야외활동 자제 권고 등이 담긴 안내 문자다. 한때는 이들도 하청사에 고용된 비정규직이었지만 노조의 오랜 투쟁으로 각각 2018년(삼성)과 2021년(엘지) 직고용됐다. 다만 두 가전 제조사는 노조가 있는 수리기사 직군만 직고용하고 노조가 없는 설치기사 직군은 여전히 하청 노동자로 남겨뒀다. 결국 간접고용이냐 직고용이냐에 따라 산재 위험을 알 권리가 극명하게 달라졌다.
원청 외주화에 하청업체들은 ‘치킨게임’
적은 일감을 놓고 하청업체끼리 저가 경쟁하는 구조도 있다. 업소용 에어컨 설치공사는 가정용 에어컨 공사와 견줘 공사 규모도 금액도 크다. 가정용 에어컨처럼 가전 제조사가 미리 정해놓은 최소한의 견적 기준도 없다. 자연히 고객 선택을 받으려는 영세업체 간 최저가 경쟁이 극심하다. 적은 이윤으로 공사 기한을 맞추는 과정에서 안전 조처는 뒷전이 된다.
준혁씨는 전날 ‘냉각 모자라도 달라’고 업체에 요구했다고 한다. 그물망처럼 미세한 구멍이 있어 바람이 통하는 모자다. 싼 것은 1만~2만원이면 산다. 하지만 업체는 준혁씨의 요구를 거절했다. 안전에 대한 비용도, 관심도 없었을 수 있다.
이런 구조는 재하청 구조에서 더욱 심화한다. 하청 단계를 거칠수록 이윤이 줄고 작업 속도도 빨라진다. “에어컨 공사 자체가 기본적으로 가격을 낮게 써내 일감을 따는 구조다. 거기다 전문점-설치업체-재재하청업체로 내려가면 마진이 더 줄고 공사기한은 정해져 있으니 굉장히 바쁘다. 특히 방학 안에 끝내야 하는 학교는 더 빡빡하다.” 에어컨 기사 ㄱ씨의 말이다. 전직 에어컨 기사 ㄴ씨도 “업소용 에어컨의 경우 실외기가 건물 꼭대기에 달려 있는 등 작업 조건이 특히 위험한데 추락방지망도 없이 사닥다리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2021년 11월 경기 남양주에서 단독주택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던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다. 그 역시 직원 2명을 둔 영세한 에어컨 설치 업체 소속이었다. 현장엔 안전난간이 없었다. 같은 해 4월엔 업소용 에어컨 설치공사를 불법 재하도급받은 업체의 대표가 배관 공사를 하다 불이 났다. 이 사고로 1명이 죽고 5명이 다쳤다. 건설공사에서 나타나는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에어컨 설치공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는 셈이다.
검증 안 된 영세업체에 설치노동을 떠넘기면서도 원청의 하청 관리는 허술하기만 하다. 삼성과 엘지는 하청업체를 고를 때 자사가 발급한 설치기사 자격증을 몇 명이 보유했는지만 따진다. 그 업체의 직접시공 여부나 안전 관리 역량, 작업량 대비 인원 수 등은 보지 않는다.
원청, 무관할 수 없는 책임 소재의 꼭대기
준혁씨 가족이 하청업체와 원청 삼성전자를 둘 다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건 준혁씨를 방치한 하청회사 잘못도 있지만, 애초에 이런 방식으로 일하도록 업무를 외주화한 삼성전자 잘못도 크다고 본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9호는 원청이 하청업체를 선정할 때 하청의 산재 예방 능력·기술과 안전보건관리비, 공사기간에 관한 적정 기준을 마련하고 하청업체가 이를 따르는지 적어도 반년에 1회 점검할 것을 요구한다.
“가전 제조사에 대한 하도급 금지가 당장 어렵다면 업계 공동의 룰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 하청업체에만 도급을 준다거나, 안전조처가 안 된 현장은 공사를 중지시키는 등 최소한의 원칙을 만드는 거다. 기업이 안전을 건너뛰고 손쉽게 매출을 올리지 못하도록 사회적 장애물을 만드는 것이 행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이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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