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 쾌락주의자 말이 목표가 된 세상 [영화로 읽는 세상]
영화로 읽는 세상 | 돈 룩 업➎
‘거대 혜성’ 영화 속 위험한 변수
재앙 앞 잇속 차리는 지도자들
영화나 현실이나 다를 게 없어
기후 위기 대처하는 우린 어떤가
“카르페 디엠” 오늘만 사는 사람들
애덤 매케이 감독은 지구를 완전 파괴할 정도의 거대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상황을 맞이한 미국이라는 사회가 보여주는 어이없는 대응을 한바탕 풍자극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이든 재벌기업이든 중차대한 위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데 혈안이 돼 있을 뿐이다.
거대 혜성이란 '위험한 변수'가 나타났다. 충돌하면 종말이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백악관은 중차대한 위기 상황에서도 정치적 계산기 두들기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 최대 재벌기업 회장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혜성에서 희토류를 추출해서 거대 이윤을 창출할 기대감에 흥분한다. 미국 정부도 희토류를 미국이 독점할 욕심에 러시아, 중국 등 우주강국들과의 국제공조를 거부한다.
일반 대중은 6개월 후에 거대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셀럽들의 가십기사만 클릭질해 댄다. 그러는 사이에 거대혜성은 쉼 없이 날아 마침내 지구 상공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제야 미국과 온 세계는 자포자기 상태로 저마다의 온갖 신들에게 기도하거나 아니면 괜히 술 퍼마시고 총질해대고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을 약탈하고 여기저기 불 질러대면서 종말을 맞는다.
혜성 충돌 직전까지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서로 죽어라 싸우면서 잡아먹고 먹히고 하다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는 쥐라기 공룡들이나 인간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화를 따라가면서 이렇게 심각한 위기 앞에서 '설마' 지도자나 시민들이 저런 쥐라기 공룡들 같은 모습을 보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각 나라 지도자의 모습이나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영화 속 모습들이 꼭 애덤 매케이 감독의 과대망상이거나 지나친 과장만은 아닌 듯싶어 불안해진다.
실제로 사업가 출신이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가 미국의 국익에는 오히려 유리하다는 신묘한 논리를 펼치기도 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과학자들의 기후위기론은 완전한 허구이며 '가짜 뉴스'라고 '파리기후협약'에서 용감하게 탈퇴하기도 한다. 미국을 '기후 악당'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국제사회에서는 미국 못지않은 '기후 악당국'으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영화 속에서 직경 10㎞에 달하는 거대혜성 디비아스키가 정확히 6개월 후에 칠레 앞바다에 충돌하며 그에 따른 피해예상은 '지구종말'이라고 모든 과학자가 예언한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정치지도자들과 기업가, 일반시민은 6개월 후에 닥친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혜성보단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들처럼 눈앞에 보이는 각자의 이익과 소중한 일상을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기상과학자가 미구未久에 닥칠 재앙적인 기후 위기를 경고하지만 정치와 경제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익 앞에 딴전만 피운다. 그 때문인지 시민들도 딴전을 피운다. 누가 먼저 딴전을 피우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물속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온도를 올리면 개구리는 물이 끓어도 그대로 앉아 죽는다고 한다. 아마 우리도 기온이 1년 만에 10도쯤 올라버리면 깜짝 놀라 무슨 수를 마련할 텐데, 기껏해야 0.2도 정도 꾸준히 오르니 우리도 개구리처럼 100도가 될 때까지 뭉개고 앉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명상철학자 오쇼 라즈니시(Osho Rajneesh)가 「배꼽」이라는 책에서 펼쳐 보이는 몇몇 우화는 무척 인상적이다. "한 사내가 사자에 쫓겨 절벽으로 떨어지다 나뭇가지를 겨우 움켜잡고 매달렸다. 내려다보니 절벽 아래 강에는 악어떼가 우글거리고 모여 사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검은 쥐와 흰 쥐가 번갈아가며 사내가 매달린 나뭇가지를 갉고 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나뭇가지에서 달콤한 물이 배어나온다. 사내는 그 신비로운 달콤한 물을 핥으면서 현실과 미래의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잊는다." 기후 위기를 대하는 우리 모습이 개구리 같기도 하고 절벽에 매달린 그 사내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 선조들은 워낙 현실이 팍팍해서 내일을 걱정할 여유가 없었는지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을 만들어내고,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해괴한 노랫말을 아무 거부감 없이 흥얼거리기도 하며 '오늘만 사는 자세'로 살아왔던 모양이다. 그런 정신세계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지 요즘엔 난데없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로마시대의 시 한 구절에서 따온 말이 굉장한 현자의 말씀처럼 유행한다.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는 그의 시에서 미래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현재를 즐겨라,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 dula postelo)"라고 노래한다. 호라티우스 본인이 흔히 '쾌락주의자'로 번역되는 '에피쿠로스(Epicuros)' 학파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기에 쓰인 '잡다'와 '즐기다' 모두 해석 가능한 '카르페(carpe)'라는 말을 '즐기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아마 이솝우화에서 베짱이가 다가올 겨울 준비에 여념이 없는 개미들을 비웃으며 '아직 오지도 않은 겨울 걱정은 접어두고 현재를 즐기라'고 하는 베짱이의 노래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다지 마음속에 소중하게 담아둘 말은 아닌 듯하다.
이 와중에 야당 대표가 집권 비전으로 '먹사니즘'을 들고나오니 조금은 답답하다. 아마도 1992년 클린턴 대통령의 성공적인 대선 슬로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idiot!)'를 벤치마킹한 듯도 하다. 미래비전이 보이지 않는 정부를 대신해 미래비전을 제시해줬으면 하는 야당대표가 먹사니즘이 유일한 원칙이 돼야한다는 선언을 한다.
아마 온갖 사법 리스크로 경황이 없어서 미처 다듬어지지 못한 비전이 다듬어지지 못한 거친 표현으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국가를 이끌어 나갈 좀 더 구체적인 미래 비전을 듣고 싶은데 '슬로건' 정도인 먹사니즘만 앞세우고 있으니 아쉽다.
그렇다고 먹사니즘을 어떻게 구현하겠다는 대안도 없다. 지구 지키는 일은 독수리 5형제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저 오늘 하루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가. 조금 꼬인 마음으로 들으면 정말 국민을 오늘 하루 등 따습고 배부르기만 바라는 '개돼지'쯤으로 여기는가 싶어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올해 여름의 더위가 유난하다. 117년 만의 무더위라고 한다. 노인이 되면 그의 남은 인생 중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하는데, 혹시 이러다 30~50년 후쯤에 되돌아봤을 때 2024년 여름을 그나마 지낼 만하고 좋았던 여름으로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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