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사진 장인한테 보낸다"... 아내를 죽음으로 몬 남편, 왜 징역 3년에 그쳤나
불법 촬영물로 강제 전역... 군은 처벌 안 해
아내 성인방송 내보낸 뒤 협박·감금 일삼아
법원 "남편만이 자살 이유는 아냐" 징역 3년
"죽은 우리 딸의 남편을 처벌해주세요. 제발."
지난해 12월 17일 인천연수경찰서에 고소장이 접수됐다. 전직 부사관 A(37)씨의 처벌을 요청하는 고소장이었다. 사망한 B(36)씨 가족들이 제기한 혐의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음란물 유포) △감금 △협박 △강요 네 가지다.
A씨가 아내 B씨에게 성관계 영상을 억지로 촬영하게 한 뒤 이를 성인물 플랫폼 등을 통해 판매했고, 2년 전부턴 성인방송까지 강요했다는 참혹한 내용이 담겼다. 피해자인 B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부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음란물 유포' 알고도 처벌 않은 군
모 육군 부대에서 부사관으로 일하던 A씨는 2019년 12월 B씨와 결혼했고, 2021년 여름 군복을 벗었다. 그가 군을 떠난 건 트위터 계정에 음란물을 게시한 사실이 제3자의 제보로 알려지면서다. 영상 속엔 아내 B씨를 포함해 다수 여성들의 나체 장면이 담겼다. 이렇게 A씨가 공개적으로 올린 음란물은 1심 판결문에서 드러난 건수만 98건(2021년 1~4월)에 달한다.
그러나 군은 처벌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B씨에게 서면으로 사건에 관한 의견을 받은 뒤, 해임 조치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본부 측은 "당시 관계자들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거나 은폐하려는 의도 및 절차상 하자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유족들은 A씨가 이 일로 수입이 끊기자 B씨를 더 착취했던 것으로 본다. 강요로 찍은 불법촬영물을 성인물 플랫폼에서 판매한 것도 모자라, 아예 아내를 성인방송에 출연시킬 생각까지 실행에 옮겼다. 자기 요구를 거부하면 "나체 사진을 장인어른에게 보내겠다"는 등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B씨와 소속사가 맺은 계약서엔 '소속사가 BJ 사생활에 관여할 수 있다'거나 'BJ가 우울증을 앓아도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는 있으나 이를 빌미로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없다'는 등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B씨의 매니저로 일할 때 이뤄진 계약이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0307440003788)
이혼 요구하자 찾아가 협박·감금 일삼아
결혼생활은 날이 갈수록 지옥으로 변해갔고, 결국 B씨는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방송 수입에 의존하던 A씨는 B씨를 놓아주기는커녕 더욱 모질게 괴롭혔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 찾아가거나, 휴대폰을 빼앗은 뒤 현관문을 막고 아파트에 가뒀다. B씨는 A씨가 감금할 때마다 지인들에게 연락해 '울고불고해도 안 된다', '(A씨가) 하도 잡아서 멍들었다' 등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 처지를 토로했다. B씨가 귀가하지 않을 때면 A씨는 흥신소와 접촉해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강요로 시작된 방송은 또 다른 협박의 빌미로 쓰였다. 시청자들에게 '사실은 결혼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공개해 수입을 끊기게 하겠다고 여러 번 겁을 준 것이다. 집에서 나와 지인과 지내던 B씨에게 A씨는 "오늘 저녁 6시까지 안 들어오면 이거(결혼사진) 실시간으로 (방송을) 켜겠다"면서 위협했다. 비슷한 내용을 담은 메시지는 지난해 10월부터 일곱 번에 걸쳐 전송됐다. 12월 4일엔 "날 XX 취급하면 너 또한 유부녀 상간녀 BJ가 되는 걸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두 차례 보내기도 했다. 이날은 B씨가 숨지기 4일 전이었다.
결국 B씨는 유언장을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언장엔 "이별 후 계속되는 협박과 금전 요구로 인해 더 이상 살기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아내 장례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 "나는 을이었다" 항변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2월 1일 A씨를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에서 체포하고 같은 달 8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A씨를 재판정에 세웠다.
네 차례 재판을 거쳐 인천지법 형사5단독 홍준서 판사 심리하에 열린 6월 14일 결심 공판. 이날 검찰은 "피고인은 배우자의 나체 사진을 게시하고 감금 및 협박했다"며 "피해자는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게 돼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징역 7년을 구형했다. B씨의 아버지 또한 "딸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반면 A씨 측은 감금 혐의 자체를 부인했다. 되레 "피고인은 피해자의 방송 수입에 의존했던 '을(乙)의 위치'였다"면서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했다. 다른 혐의에 대해서도 "피고인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서 음란물을 유포하지는 않았다"면서 "협박 혐의와 관련해서도 그와 같은 해악을 끼칠 의사가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1216010005271)
지난달 12일 1심 재판부는 결론을 내렸다. 형량은 검찰 구형보다 4년이 줄어든 징역 3년. 홍 판사는 "이 사건 범죄는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인이 됐다"면서 "피해자 아버지를 포함한 유가족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 사망 직전까지 같이 있었던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피고인뿐만 아니라 팬 혹은 다른 BJ와의 관계나 방송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인"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경찰 수사 단계에선 적용됐던 강요 혐의가 빠진 것도 형량에 영향을 미쳤다. 구속 당시 경찰은 A씨가 성인 방송과 음란물 촬영을 강요한 혐의를 적용했지만, 검찰은 이 부분을 기소하지 않았다. B씨의 사망으로 강요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법은 내 편이 아니야"... 아버지의 절규
딸을 죽음으로 몬 사위를 법의 심판대에 올렸으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자 아버지는 오열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3년이 뭐냐고요!"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 카메라에 잡힌 그는 상의를 찢는 등 격노를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법이 내 편인 줄 알았다"면서 주저앉기도 했다. 이어 "법도 내 편이 아니고 이 나라도 내 편이 아니란 걸 절실히 깨달았다"며 눈물을 쏟았다.
검찰은 지난달 17일 "범행 이후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유가족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피고인을 더욱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항소했다. B씨 유족 측 법률대리인은 "B씨 아버지의 상태가 인터뷰에 응할 만큼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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