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만으로 美금리 예측 어려워”...이젠 이 지표가 중요해졌다는데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4. 8. 3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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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만큼 변덕스러운 것이 경제다. 요즘 미국경제가 그렇다. 물가와 경기는 모두 주식과 채권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재료들이다. 다만 시기와 상황에 따라 영향력의 차이는 있다.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시장을 보는 눈을 키우는 첫걸음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은 최근 잭슨홀 미팅에서 “통화정책을 조정할 시기가 도래했다”며 9월 기준금리 인하를 강하게 시사했다. 그는 또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에 매우 가까워졌다”며 “(앞으로는) 강한 노동시장을 지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준의 정책 목표가 물가에서 고용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언급이다. 파월의 발언 이전부터 미국 시장은 이전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8월 들어 미국 경기를 표시하는 경제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이 나라 주가가 큰 폭으로 출렁거렸다. 미국을 따라 일본과 한국 등 연관 국가들의 주가도 덩달아 급등락 한다. 미국 경기가 상승할 것을 암시하는 지표가 발표되면 주가는 급등하고 반대의 경우는 급락한다. 경기가 좋아지면 기업들의 실적도 개선되고 이 경우 기업가치가 올라 주가가 오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시계를 불과 몇 개월 전으로 돌려보면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 때는 경기 둔화를 나타내는 지표가 발표될 때 주가가 올랐다. 당시의 논리는 이렇다. 경기가 안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하루 빨리 낮출 것이고 이렇게 되면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해져 주가가 오른다는 논리다. 경기 상승을 암시하는 지표가 발표되면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즉 경기 상승이 예상되면 연준은 금리 인하시기를 늦출 것이고 이는 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줄여 주가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득세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연초엔 경기둔화 시그널이 되레 주가 상승 불러
예를 들어보자. 8월 1일 발표된 7월 미국 ISM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7.8로 공개됐다. 이 지수는 400개 이상 기업의 구매담당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미래경기를 예측하는 지수다. 8월초 발표된 지수는 전달(48.5)보다 낮았을 뿐만 아니라 시장 전망치(48.8)도 밑돌았다. 이 지수가 발표되자 미국 주식시장에서 다우지수는 1.21%, 나스닥지수는 2.44% 급락했다. 8월 2일에는 미국의 실업률이 예상치(4.1%)보다 높은 4.3%로 발표됐고, 미국 비농업 고용자 증가폭도 11만 4,000개로 전망치를 크게 밑돌면서 주가 급락세는 이어졌다. 시장금리 기준인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양일간 각각 1.28%와 4.76%나 급락했다. 반면 미국 7월 소매판매증가율이 발표된 8월 15일에는 반대 상황이 발생했다. 이날 소매판매증가율이 1%로 시장 예상치(0.4%)를 크게 웃돌자 주가와 채권금리는 동반 급등했다.

시계를 불과 2개월 전으로 돌려보면 다른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 6월 3일 발표된 5월 ISM 제조업 PMI지수는 48.7로 시장 전망치(49.8)를 크게 밑돌았다. 하지만 이날 다우지수는 0.3% 하락했고 나스닥 지수는 0.35% 상승했다. 제조업 지표가 악화된 것은 공통적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6월과 8월 사이에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 다만 경기 둔화 지표가 발표될 때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크게 떨어진 것은 지금과 같았다. 6월 7일에는 비농업고용자수(5월)가 27만 2,000개 늘어난 것으로 발표돼 시장 예상치(18만 2,000개)를 크게 능가했다. 8월 같으면 주가 급등을 이끌어야 할 요인이다. 하지만 당시 다우지수는 0.22% 하락했고 채권금리는 3.42% 급등했다.

연초엔 물가지표로 시장 출렁 ... 9월 금리인하 확실해지자 이젠 경기에 민감
물가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과거와 달라졌다. 8월에 발표된 미국의 7월 소비자와 생산자 물가는 모두 시장 예상치 보다 덜 올랐다. 물가 상승세가 진정된 것으로 파악되자 주가는 상승했고 채권금리는 떨어졌다. 6월에도 소비자와 생산자물가(5월)는 모두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당시 다우지수는 소폭 하락했지만 나스닥은 상당 폭 올랐고 채권금리는 떨어졌다. 하지만 연초인 2월에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당시 미국 주식시장은 경기지표보다 물가지표에 훨씬 더 민감했다. 2월 13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로 시장 예상치(2.9%)를 크게 웃돌자 다우지수는 1.35%, 나스닥지수는 1.58% 급락했다.

미국 시장은 유기체처럼 흘러간다. 연초에는 경기지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왜소했지만 8월에는 경기지표에 대한 민감도가 크게 올라갔다. 반면 연초 시장을 좌지우지했던 물가지표의 시장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드는 모양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미국 연준이 7월말 오는 9월 기준금리 인하를 거의 공식화 한 점을 들 수 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시장의 최대 관심은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었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7월 전까지 금리 인하 시점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하면서 시장을 긴장시켰다. 특히 파월 의장은 매번 ‘물가 안정’을 금리 인하의 전제조건으로 강조했다. 이 때문에 물가 안정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시장참여자들의 급선무였다. 하지만 7월말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9월 FOMC회의에서 금리 인하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며 금리인하 가능성을 밝히자 시장의 물가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 사드라 들었다. 때마침 미국의 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지표가 나왔다. 파월의장의 잭슨홀 발언은 이 같은 흐름에 쐐기를 박았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듯 ... 경기 호황 길어지며 불황 불안감 커져
물가에 대한 관심은 떨어진 반면 경기에 대한 관심은 증폭됐다. 미국 경제는 금융위기를 극복한 이후인 2009년부터 역사상 유례 없는 최장기간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도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경제의 호황기간이 길어지면서 불황이 임박했다는 불안감이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특히 연준이 1년 이상 연5.5%의 고금리 정책을 펴면서 경제내의 돈줄도 말라가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로 인한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진다. 불확실성이 클 때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고 기업들은 투자를 꺼린다. 이런 점이 미국경제를 침체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염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표시하는 지표가 조금만 안 좋게 나오면 사람들의 불안감은 공포로 바뀌면서 시장이 큰 폭으로 출렁거리는 것이다. 경기 지표가 다소 호전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감은 일정부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미국경제의 문법은 바뀌었다. 종전 ‘물가하락- >금리인하- >유동성 확대- >주가상승, 채권금리 하락’이 주요한 고리를 형성했다면 이제는 ‘경기지표 하락- >경기침체 공포 확산- >주가 및 채권금리 하락’이 주된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경기와 고용 지표가 시장의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가 됐다. 반면 물가는 더 이상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경기와 고용지표 발표시점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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