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고전 다이제스트]'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칸트 "이 세상은 내버려진 것"

김효성 2024. 8. 3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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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수 법사의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3' [바른법연구원]

[新고전 다이제스트]'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칸트 "이 세상은 내버려진 것"

오늘은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 1, 2, 3> 17번째 순서입니다.

"이 세상은 내버려진 것이다. 이 세상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독일의 세계적인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말했습니다.

칸트는 덧붙입니다.

"비록 이 세상은 내버려진 것이라 하나 뜻을 세운 사람의 뜻대로 전개된다."

다시 말해 세상은 원을 세운 사람, 뜻있는 사람의 것이라는 얘깁니다.

이 칸트의 주장은 불교 가르침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그대들은 마음 쓰는 데 따라 우주도 만들 수 있느니 우주의 주인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선지식의 말씀을 계속 들어보시겠습니다.
◇ 부처님께 의지하는 불교

'부처님, 나를 좋게 해 주십시오'하는 불교는 어떤 삶인가?

생활의 두려움을 느끼고 위기를 만났을 때 '이 두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나는 노력해야 한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 내가 살아야 한다'하는 마음을 내는 삶은 무엇에 의지하려 하고 난제의 해법을 마음 밖에서 찾으려 합니다.

여차하면 절대자에게 전부 다 의지합니다.

죽을 때 의지하고, 선거에서 당락이 발표되기 전날 의지하면서 기도하고, 입시에서 당락이 결정되기 전날 초조한 마음으로 안절부절못하며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부처님, 나를 좋게 해 주십시오.'하는 불교를 믿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30대에 요절한 러시아의 천재작가 푸시킨의 시를 좋아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돌아오리니 삶은 언제나 슬픈 것. 시가 아름답죠.

그런데 그 사고방식을 닮으면 목표를 위해서 급하게 설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잘 안 되면 불평하고, 사회를 비난하고 개혁하려 하고, 남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한층 더 나가서 자기 업적을 과시하면서 오만해지기 쉽습니다.

즉 탐진치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결국 위기가 있을 때 절대자한테 매달리게 될 수밖에 없고, '부처님, 나를 좋게 해 주십시오'하는 불교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 부처님 시봉하는 불교
▲김원수 법사의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3' 관련 자료 [바른법연구원]

그럼 부처님 시봉하는 불교는 어떤 것인가?

부처님 시봉하는 불교를 믿으려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위기나 공포를 진짜로 알면 부처님 시봉하는 마음이 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나보다 모든 사람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위기나 공포가 착각이고 본래 없음을 아는 금강경 정신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처님 시봉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됩니다.

우리는 모든 난제의 해법을 밖에서 찾습니다.

'돈이 필요하다. 권력이 필요하다. 명의, 명약이 필요하다.'

이것은 모든 난제의 해법을 마음 밖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마음 밖에서 구하면 반드시 절대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고, 나를 살려 달라는 애절한 마음을 갖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우리 금강경 공부하는 사람은 위기가 착각이고 공포가 본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모든 난제의 해법을 자기 마음속에서 찾습니다.

마음 밖에서 찾지 않고 마음속에서 찾는 사람은 부처님 시봉하는 마음을 낼 수 있습니다.

위기의 해답을 밖에서 찾는 사고방식으로는 절대로 부처님 시봉하는 마음을 낼 수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궁하다. 열등하다. 피조물이다. 내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느끼면 부처님 잘 모시겠다는 마음이 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공부의 결과 제가 체험하고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깨달음은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만 있습니다. 이것을 깨쳐야 합니다.

내가 전지전능한 조물주이고 상대는 내가 만든 피조물이라고 알면 됩니다.

상대도 역시 전지전능한 부처와 같은 내가 만든 부처님의 작품입니다.

나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상대도 부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라야만 부처님 시봉하는 마음을 낼 수 있습니다.

내가 대단하다고 해야지, 내가 열등하다고 하면 부처님께 나를 좋게 해 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구족한 전지전능한 존재이고 상대는 내가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를 대할 때 잘 모시고 섬기려 할 수밖에 없습니다.
◇ 수도는 부처님 시봉하는 사고방식으로 변화 과정

알고 봤더니 수도라는 것은 '부처님, 나를 좋게 해 주십시오.'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부처님 잘 모시기를 발원.'하는 사고방식으로의 변화 과정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합니다.

세상이 왜 고통스러울까요?

나를 좋게 해 달라고 매달리는 사고방식으로는 고통이 착각인 줄 모르기 때문에 항상 고통이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고통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소할까요?

고통이 착각인 줄 아는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불교, 즉 부처님 잘모시기를 발원하는 불교를 믿을 때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의 세계, 열반의 세계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 사고방식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저는 귀여움 받고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정을 그리워했던 사람에서 칭찬해 주고 도와주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도인 밑에서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처님, 나를 좋게 해 주십시오.'하는 사고방식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 몸만 살겠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모든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 바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백 선생님의 은혜를 느끼면서 '선생님은 참으로 대단하시고 참 고마우신 분이구나. 선지식은 반드시 필요한 분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부처님께 의지하는 불교 = 중생불교, 부처님 시봉하는 불교 = 보살불교

보통 중생불교는 자신을 구원받아야 할 열등한 존재로 봅니다.

자신이 구족하고 베풀 수 있는 여유로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고달픈 존재라고 생각하여 절대자의 가피력이나 위신력의 힘을 입어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불교를 중생불교라고 합니다.

중생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을 고유명사라고 합니다.

2500년 전에 인도에서 태어나신 싯다르타 태자 석가모니불입니다.

고유명사, 사람, 성인으로 봅니다.

위대한 능력자요 우리를 가르쳐 주는 큰 스승으로 보며, 공경하고 의지합니다.

자기가 부처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부처와 똑같다는 것을 알고 수도하는 것이 보살불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살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을 2500년 전 인도의 가비라성 왕자로 고유명사화하지 않고 '참나'로 봅니다.

보살불교에서는 본래 착각인 줄 알고 바칩니다.

본래 착각이고 바칠 것이 없지만 그 착각을 소멸하기 위해서 바치는 것이 특징이며,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입니다.

※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 3> 김원수 지음(바른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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