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가장 더운날 "전기설비 불안"...우리 아파트만 이래?

한 아파트단지가 정전돼 한국전력 관계자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폭염기만 되면 불안한 노후 아파트

하필이면 가장 더운 날, 아파트 내 공지 방송을 듣고 불안에 떠는 주민들이 있다. 폭염에 전력 사용량이 급증해 아파트 전기 설비가 이를 버티지 못하고 정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노후 아파트 안내방송이다. 실제로 폭염기 아파트 정전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러나 매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송이 나올 뿐, 상황은 제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31일 한국전력공사 부산울산본부에 따르면 올여름(6월~8월) 부산지역 정전 발생 건수는 총 9건이었다. 다만 한전은 정전 발생 건물 자체 설비 문제에 따른 정전은 통계에 포함해 관리하지 않는 만큼 실제 부산지역 정전은 이보다 훨씬 많이 발생했다.

정전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아파트 자체 정전은 늘어난 전력 사용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전기설비가 설치돼 있거나 시설이 노후화돼 일어난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지난해 정전 복구를 지원한 전국 아파트 정전 사고 208건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96건(46.1%)이 사용 연한 15년 이상 된 설비 고장 때문이었다. 실제 올여름 부산 지역 정전은 대부분 노후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이달 9일 부산 연제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해 9시간 동안 정전 정전은 아파트도 자체 설비 노후화가 원인으로 꼽혔다. 지난 21일 부산 사하구의 아파트에서도 정전이 발생했는데 이 아파트는 1980년도에 지어져 전기 설비 용량이 가구들의 전력 소비량을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추정됐다.

한전 전력연구원(KEPRI)에 따르면 25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의 정전 발생률은 15년 미만 아파트보다 7.4배 높다. 노후 아파트가 정전에 취약한 이유는 아파트 내 변압기 용량은 준공 당시 수준이지만, 다변화된 가전기기 보급 확대로 전기 사용이 과거보다 많이 증가해 과부하가 있기 때문이다.

1991년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의 가구당 전력 사용 설계용량은 1㎾ 수준에 불과하다. 1991년 이후 건설된 주택의 경우 가구당 3㎾ 이상 설비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최근 가구당 최대 전력 사용량은 5㎾ 수준이다. 에어컨 1대를 가동하는 데만 순간적으로 1.5㎾ 정도의 전력 사용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여름 정전이 발생하면 주민들은 무방비 상태로 폭염에 노출되지만 시설 노후화에 따른 정전을 막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 보니 매년 반복되는 상황이다.

고효율 변압기는 1대당 5천~6천만원이 필요하다 보니 비용 부담도 큰 상황이다. 정부와 한전이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 사업도 펼치고 있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퇴근 시간 이후 전기 사용량이 급증해 건물 자체 설비가 용량을 초과해 정전이 발생하는 경우가 특히 많은데 노후 설비는 복구조차 쉽지 않아 장기간 정전이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며 "정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교체하지 않는 아파트들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권준영기자 kjykjy@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