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대자보는 옛말...요즘 대학가는 ‘디지털 현수막’ 대세

구동완 기자 2024. 8. 3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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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천 현수막, 환경-공해 문제로 민원 잇달아
중앙대 등 디지털 대자보로 전환
한양대 9월부터 현수막 전면 금지
지난 21일 중앙대 디지털 게시판에 게재된 현수막 앞에서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독자제공

지난 21일 오후 3시 중앙대에서는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들이 학사모를 쓰고 디지털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중앙대는 최근 디지털 게시판이 천 현수막을 대체했다.

중앙대 관계자는 “각종 포스터와 현수막으로부터 캠퍼스 환경을 지키기 위해 지난 3월부터 학교 곳곳에 디지털 게시판을 설치했다”며 “천 현수막은 물론 학내 대자보와 각종 학교 소식, 동아리 포스터 등도 디지털 게시판을 통해 송출돼 기존에 오프라인으로 게재되던 광고물을 50% 이상 대체했다”고 밝혔다. 중앙대에서는 디지털 게시판이 설치되기 이전에 월 평균 50개, 연간 600여개의 천 현수막이 버려졌다고 한다.

대학가에서 최근 학생들의 소셜미디어(SNS) 이용 증가와 환경 공해 문제로 천 현수막과 종이 대자보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의견 표명 공간이었던 현수막과 대자보가 SNS나 디지털 게시판에 밀려 더 이상 내걸리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학기 초였던 지난 4월 서울 마포구 서강대의 총학생회 전용 게시판은 ‘수필 공모전’을 홍보하는 내용의 포스터 한 장을 제외하곤 텅 비어있었다. 가로 폭이 10m쯤 되는 게시판에는 압정과 스테이플러 심, 찢긴 종이 조각만이 남아 과거의 흔적을 보여줬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이제현(24)씨는 “학교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더 빠르고 편하게 찾아볼 수 있으니 훨씬 효율적”이라며 “굳이 미관상 좋지 않은 종이 대자보를 붙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졸업을 맞아 디지털 현수막을 만들었다는 중앙대 대학원생 김채원(36)씨는 “신청만 하면 학생들도 무료로 게시할 수 있다고 해 제작하게 됐다”며 “나중에 버려야 될 현수막 폐기물도 나오지 않고, 나무에 거추장스럽게 매달지 않아 보기도 좋았다”고 했다.

한양대는 작년 8월부터 단계적으로 제한해 오던 현수막 설치를 오는 9월부터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한양대 관계자는 “현수막 소각처리 비용만 1톤당 10만원이 넘게 들어갈 정도로 환경문제가 심각했다”며 “붙이는 사람이 따로 있고, 철거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관정도서관의 텅 빈 게시판 앞을 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구동완 기자

최근 대학 학생회들은 비용 문제 등 때문에 SNS와 디지털 게시판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서강대 사회대 학생회 고권영(21)씨는 “최근 2년 동안 대자보를 붙이거나 본 적이 없다”며 “학교에 허가를 받는 절차도 번거로울뿐더러 에브리타임 같은 SNS를 통해 내용을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대 총학생회 측은 “총학생회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매달 1~2개 이상의 현수막을 만들어야 했는데, 디지털 게시판이 설치된 후 이런 부담을 덜었다”고 했다.

현수막과 대자보가 하던 학내 정보 공유와 공론화의 역할은 대학 생활 플랫폼인 ‘에브리타임’이 대신하는 추세다. 에브리타임 운영사 비누랩스에 따르면 2016년 100만명이었던 누적 가입자 수가 올해 처음 700만명을 돌파했다. 한 달에 1번 이상 서비스를 쓴 이용자 수를 뜻하는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지난해 기준 300만명에 달했다. 이는 2019년 168만명에서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서울대 4학년 백모(25)씨는 “대자보에 실리는 주장들이 양극단으로 편향되어 있어 피곤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공론화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박모(24)씨는 “학생회장 선거 당시에도 선본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에타(에브리타임)에 올라와서 빠르게 인기 게시판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며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특성상 쉽게 쟁점화돼 논란이 빠르게 확산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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