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모두가 찾자, 25년간 찾지 못했던 그의 딸을[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회사 출근하자마자 아침 댓바람부터 펑펑 울었다. 이 나이에 혼나서? 어디가 아파서? 아니, 그날 조간에 나온 장기실종아동 송혜희 양(당시 17살)의 부친, 송길용 씨(71)의 부고 기사를 보고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 현수막의 주인공, 혜희 양의 아버지 송길용 씨가 지난 2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가끔 지나가다 전단지나 현수막을 보면 ‘아직도 못 찾았나 보다’하고 안타까워했을 뿐 자세한 사정은 몰랐는데, 부고 기사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 송길용 씨는 딸이 실종된 1999년부터 25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현수막 1만 장을 달고, 전단 1000만 장을 배포했다고 한다. 그간 이동 거리도 100만km에 달한다. 사망한 날도 칠순을 넘긴 아버지는 현수막을 달러 가던 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애타게 찾던 딸을 결국 생전에 다시 보지 못하고, 경기 평택의 어느 도로 위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 현수막 1만 장, 전단 1000만 장…생업 접고 딸 찾아 25년
송탄여고 2학년이던 길용 씨의 둘째 딸 혜희 양은 1999년 2월 13일 학교에 공부한다며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막차를 타고 내린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몸에서 술 냄새 나는 성인 남성이 혜희 양의 뒤를 따랐다는 목격자 진술이 있었지만 남성을 찾진 못했다. 당시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논과 밭뿐인 농로였고 CCTV도 없었다.
● 수사 종결, 주변 만류에도 포기 않고 전국 돌았는데…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한시인들 편했을까.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자면서도 늘 딸 혜희 양에게 미안했다고 한다. 딸은 지금 밥이나 제대로 먹는지도 모르는데, 자신만 따뜻한 방에서 호의호식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덕에 딸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실종아동’이 됐다. 전단지를 나눠주면 “잘 알고 있으니 이 전단은 다른 사람 주라”고 독려하는 시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길용 씨 혼자 이뤄낸 일이다. 부정(父情)은 위대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딸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인들은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이 정도 찾아서 안 나오면 이 세상에 없는 거라고 매정한 말로 길용 씨를 단념시키려 했다. 경찰 수사도 2004년 종결됐고 납치 혹은 인신매매 공소시효도 2014년 끝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간은 딸을 배웅하던 1999년 2월 46살의 아빠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딸이 용돈을 모아 개통해 준 016 휴대전화 번호도 20년 가까이 바꾸지 않고 두었다고 한다. 언제 혜희가 전화를 걸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 장기실종아동 1336명, 가정은 풍비박산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년 이상 장기실종아동이 1336명이고, 혜희 양 같은 20년 이상 장기실종아동도 1044명에 이른다. 2023년에만 2만 건 넘는 실종아동 신고 가운데 25건이 미해결로 남았다.
실종아동가정은 대부분 무너지고 만다. 부모는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끊거나 이혼하고, 함께 살더라도 아이를 찾는 데 돈과 시간을 쓰느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불화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에 따르면 장기실종 가족의 70~80%가 가정해체를 겪는다고 한다.
정부는 2005년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사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실종경보 문자 △지문 등 사전등록 △유전자(DNA) 분석 △복합인지기술 활용 과거 사진 변환·대조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제도들을 통해 장기실종아동이 성인이 되어 가족을 찾기도 한다. 최근에도 전남 여수에서 8살 때 가족을 잃어버렸던 남성이 재수사를 통해 57년 만에 가족을 찾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경찰 내 실종수사 인력과 예산이 태부족하고 제도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실종아동이 발생하면 1년간은 실종 지역 경찰서에서 수사하다 관할 지방청으로 이관하도록 돼있다. 이 때문에 다른 지방과 공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아동보호시설의 서류 관리가 부실해 아동 정보를 대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결국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가 직접 발 벗고 뛰어다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실종아동관리 진일보해 혜희 씨 찾는 날 오기를
한 아이와 한 가족의 인생을 생지옥으로 만드는 실종아동 사건은 최대한 예방하고 최선을 다해 수사해야 한다. 길용 씨도 수천, 수만 번 가슴을 쳤을 것이다. 그때 초동수사가 잘 됐더라면. 그때 그 수상한 남자를 찾을 수 있었더라면.
길용 씨가 딸을 찾아 헤맨 25년이 결코 훈훈한 미담으로만 끝나지 않길 바란다. 아직 1000명이 넘는 장기실종아동이 남아있다. 그들의 부모도 자식을 찾으러 가던 길에 허망하게 스러지도록 할 순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길용 씨가 하늘에서 그렇게 바라던 딸을 만나지 못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실종아동 관리가 진일보해 이 땅 어디에선가 숨 쉬고 있던 혜희 씨를 기적적으로 찾아내길, 그래서 언니와 함께 아빠, 엄마의 묘소를 찾아 “늦게 와서 미안해요!”라고 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이제 우리가 혜희 씨를, 다른 1300여 명의 아이들을 찾을 시간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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