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웨이 아웃’ 200억 대국민 살인청부에 무기력한 정부
디즈니플러스 ‘노 웨이 아웃: 더 룰렛’
몇십억 정도는 우습게 여긴다. 가진 돈이 없어도 몇백억 정도는 되어야 귀가 솔깃해진다. 상대적 빈곤감이 확산하면서 물질적 욕망이 기하급수적으로 비대해진 탓이다. 법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범죄자들을 공개 처형하겠다면서 도박판을 벌이는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의 현상금 200억원 정도는 되어야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다. 10억원의 현상금이 걸린 ‘귀 자르기’에 이어, 연쇄 성폭력 살인을 저지르고도 조기 출소하는 흉악범을 죽이면 200억원을 준다는 도박이 가능한 까닭이다.
‘200억원이 걸린 흉악범, 가면남의 타깃이 되다’라는 자극적인 문구와 ‘공개 살인 청부한 가면남, 그는 누구?’라는 말초적인 물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언론 보도와 함께 경찰과 정치인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경찰력은 법적 처벌이 끝나 사회로 복귀한 흉악범을 ‘보호’하는 데 소진된다. 부패한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흉악범과 ‘협상’을 시도한다. 전문가들은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법과 제도의 한계와 여론의 움직임을 놓고 갑론을박한다. 하지만 “저는 형을 다 살았습니다”라며 자신을 향한 사회적 비난이 부당한 인권침해라는 흉악범의 주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사이버 레커(렉카)들만이 ‘정의’를 참칭하며 돈벌이에 몰두할 뿐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을 연상하게 하는 김국호(유재명)가 일으킨 파장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난맥상을 들춰낸다. 그는 인터넷에서 “걸어 다니는 보너스”이자 “200억좌”로 불린다. 사적 복수나 응징으로 법적 처벌의 한계를 해소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거액을 챙길 수 있다면 살인도 불사한다는 그릇된 인식의 반영이다. 오히려 김국호는 시민의 불안감에서 비롯한 사회적 혼란을 이용하여 목소리를 높인다. 주거지 제한이라는 경찰의 조처를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막는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무력화한다.
뻔뻔한 그의 태도가 공분을 일으키지만 속수무책이다. 형사 백중식(조진웅)은 빼돌린 범죄 은닉금 10억원 때문에 ‘김국호 전담 관리’ 임무에 집중하지 못한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김국호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테러로 간주하겠다는 경찰서장의 기자회견을 알량한 법 지식으로 재단한다. 전문가 패널 역시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경찰서장의 공언을 허풍으로 치부한다. 범행 시도를 차단하겠다는 겁박이자, 윗선에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조롱 섞인 분석이다. 이처럼 언론은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한 진단이나 대응책은 언급하지 않고, 마치 ‘언론 상품’처럼 김국호 사건을 소비한다.
부패한 시장 안명자(염정아)도 시민의 안전을 지키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김국호를 노린 폭발물 사고로 숨진 시민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며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의 눈물은 시장 재선을 노린 ‘악어의 눈물’이다. 시민의 안전보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중시할 뿐이다. “매년 2억씩 5년에 10억”을 주는 조건으로 김국호와 사전에 조율하고, 김국호를 몰아내겠다면서 시위하는 모습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현실 정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비루한 정치인 가운데 한명일 뿐이다.
변호사라고 다를 바 없다. 물류센터 노동자 상해 사건의 원고 변론을 맡은 이상봉(김무열)은 재판 거래로 거액을 챙기는 비열한 변호사다. 자신이 투자한 대단지 상가 건축 인허가와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야합도 서슴지 않는다. “모든 국민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외치며 ‘김국호의 인권변호사’를 자임하지만, 안명자를 정치적으로 옭아매기 위한 계략일 뿐이다. 이상봉의 언행은 “국민의 알권리”를 참칭한 개인 방송으로 돈을 챙기는 사이버 레커들과 다르지 않다.
희대의 흉악범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을 수습할 책임은 공권력을 관장하는 정부에 있다. 법적 처벌이 끝났으나 여전히 사회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는 흉악범의 인권을 둘러싼 논쟁을 정리할 책임도 정부에 있다. 하지만 경찰은 너무 무기력하고, 시장은 정치적 잇속만 챙긴다. 전문가는 방송을 이용하여 인지도를 올리느라 혈안이 되어 있고, 변호사는 돈의 유혹에 빠져 법 기술자로 전락했다.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이, 알권리를 주장하는 사이버 레커들만 준동한다. 불법과 편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잇속을 챙긴 증거가 차고 넘쳐도 고위 공직 임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국민의 안전’을 강조하는 정부 발표가 신뢰를 주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래저래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김건희 명품백’ 기소, 다시 판단한다…최재영 신청 수용
- ‘탈장’ 4개월 아기, 응급실 뺑뺑이 3시간…열 곳에 받아달라 했지만
- 김건희 여사의 레임덕이 시작되었다
- 대통령실 “2025년 의대 증원 재논의 불가능”
- 한동훈, 자신 뺀 윤 관저 만찬에 “모르는 일”...친한계 의아·불쾌
- 퇴소 뒤엔 또 강제수용…갇혀버린 23년, 비극은 반복됐다
- 정부 “추석 연휴 문 여는 병·의원 8천곳”…의사들 “통계 조작”
- 매출 4조 미만 제외…쿠팡·배민, 독과점 규제서 빠질 듯
- 김건희 ‘추석 인사’ 등장...명품백 불기소 권고 뒤 기지개 켜나
- 강원·고려·충북 의대 비대위원장 삭발·단식, 사직 예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