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가 쏘아올린 '가격 인하' 공, 누가 받을까
해태 일부 제품 가격 인하
식품업계 전반으로 확산할까
원재룟값 오르면 가격 인상
원재룟값 내릴 땐 모르쇠…
소비 위축 부메랑 날릴까
"과자 한 봉지도 가격을 따져보고 사게 된다." 한번 오르면 좀처럼 내리지 않는 식품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에게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해태제과'가 비스킷 3종의 가격을 인하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해태제과는 9월 9일부터 '계란과자' '칼로리바란스' '사루비아'의 가격을 평균 6.7% 인하한다. 소비자가격 기준 계란과자(45g)는 1200원에서 1100원으로, 칼로리바란스 치즈(76g)는 2000원에서 1900원으로, 사루비아 통참깨(60g)는 1500원에서 1400원으로 각각 100원씩 내린다. 해태제과 측은 "여전히 원가 부담이 높은 상황이지만 고객의 부담을 줄이고 물가안정에 동참하기 위해 제품 가격을 인하했다"고 밝혔다.
사실 해태제과가 가격을 낮춘 제품들은 모두 밀가루 비중이 높다. 주요 원재료인 밀가루 가격이 안정화하면서 가격을 인하할 여지가 생겼다는 거다. 실제로 시카고상품거래에서 거래되는 소맥 가격은 현재(8월 28일) 541.50센트(이하 1부셸당)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2022년 2월)하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러-우 전쟁 전인 2021년 8월 30일 기준 소맥 가격(723.50센트)과 비교해도 25.1%나 하락한 수준이다.
소맥뿐만이 아니다. 소맥과 함께 가공식품에 주로 쓰이는 '4대 곡물'인 옥수수, 대두, 대두박 가격도 모두 2021년 대비 가격이 하락했다. 옥수수 가격은 2021년 542.75센트(8월 30일)에서 2022년 683.00센트(8월 30일)로 올랐다가 현재(8월 28일) 390.75센트에 머물고 있다.
같은 기간 대두 가격(1303.25센트→1432.50센트→977.00센트)과 대두박 가격(1톤당‧347.20달러→424.50달러→308.30달러)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가공식품의 또 다른 주요 원재료인 설탕 가격도 내림세를 띠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 설탕가격지수는 지난해 9월 162.7까지 올랐지만 올 7월 기준 120.2로 하락했다.
문제는 원재료 가격 하락이 가공식품 가격에 좀처럼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해태제과와 같은 사례가 거의 없어서다. 지난 4년간(2021년 7월 대비 2024년 7월) 가공식품물가는 꾸준히 올라 17.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품목별로는 비스킷 가격 상승률 24.6%(100.25→124.93), 파이 15.6%(98.13→113.46), 시리얼 15.2%(103.84→119.71)를 찍었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11.6%)을 훨씬 웃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인건비‧물류비 등 각종 제반 비용이 상승해 가격 인하를 단행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선 "원재룟값 오를 땐 곧바로 가격에 반영하면서 하락할 땐 모르쇠"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같은 기업들의 '모르쇠' 전략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고물가‧고금리에 시달려온 소비자가 지갑을 닫으면 결국 기업이 매출 감소란 후폭풍을 맞을 수 있어서다.
가격 인상의 역풍을 맞은 미국 '펩시코(PepsiCo)' 사례가 대표적이다. 코카콜라 경쟁업체 펩시코의 올해 2분기 북미지역 음료와 스낵 매출액은 각각 3.5%, 4.0% 감소했다. 최근 2년간 분기마다 가격을 끌어올린 펩시코 제품을 소비자가 외면한 결과다.
이런 현상은 고물가‧고금리에 시달려온 국내 소비자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장지혜 DS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내수 소비 부진으로 가공식품 기업들의 2분기 매출 성장세가 둔화했다"고 분석했다. 가격을 올릴 줄만 알고 내릴 줄은 모르는 기업들의 콧대가 꺾일 수 있다는 거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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