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주지 않으면서 웃음 주는 절묘함 [ESC]

한겨레 2024. 8. 3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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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유머는 썰렁해." 내가 종종 듣는 비난의 말이다.

더운 날 나는 말했다.

"네 유머는 추울 때 들으면 썰렁하고 더울 때 들으면 열 받아." 나는 믿고 싶다, 내 유머 감각을 질투해 마음에 없는 말을 뱉은 거라고.

"여러분, 공부 하세요. 공부 안 하면 나중에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합니다." 여러 해 전 유명한 개그맨이 방송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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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웃기고 싶다 무더위와 유머

“네 유머는 썰렁해.” 내가 종종 듣는 비난의 말이다. 더운 날 나는 말했다. “내 유머가 썰렁하니 더운 날에 환영받을 거야.” 친구가 답했다. “네 유머는 추울 때 들으면 썰렁하고 더울 때 들으면 열 받아.” 나는 믿고 싶다, 내 유머 감각을 질투해 마음에 없는 말을 뱉은 거라고.

덥다. 너무 덥다. 무더위에 관한 농담을 살펴 볼까. 인터넷에서 봤다. 여름철 회사의 장점과 단점. “회사의 장점은 에어컨이 나온다는 것, 회사의 단점은 회사라는 것.” 회사에 억지로 출근하는 회사원이라면 즐길 법한 우스개다. 그런데 회사에서 잘렸거나 취업에 실패한 사람이라면 이 농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러분, 공부 하세요. 공부 안 하면 나중에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합니다.” 여러 해 전 유명한 개그맨이 방송에서 한 말이다. 나는 웃었다. “더울 때 더운 데서, 추울 때 추운 데서”라는 말의 리듬이 경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웃지는 않았다. 지금도 인터넷에 이 말을 검색하면, 의견이 갈려 있다. 이 말이 우습다는 사람과 이 말이 웃기지 않는다는 사람이 나뉜다. “육체 노동을 비하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농담은 웃기는 일도 중요하지만, 듣는 사람을 열 받지 않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러시아의 민담 연구자 프로프는 이런 말을 했다. “러시아 농노의 비참한 삶을 소재 삼아서는 농담을 할 수 없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요령을 빌려 볼까. 한국 사회보다 심하다는 미국의 정치 양극화. 말 많은 미국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사회 풍자 농담을 하면서도 크게 탈 나지 않은 시리즈가 ‘심슨 가족’이다. 미국 사회의 민감한 논쟁 주제인 기후 위기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농담을 던졌다. “기후 온난화란 존재하지 않아.” 극장판 ‘심슨 가족’ 영화에 나오는, 말썽꾸러기 넬슨의 대사다. “겨울에 이렇게 추운데 온난화라는 말을 어떻게 믿어?” 텔레비전 시리즈 ‘심슨 가족’에 나오는 호머 심슨의 대사다.

이 농담의 절묘한 점은 이중 코드다. 겉보기에는 기후 위기를 주장하는 지식인을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심슨 가족’의 세계에서 호머 심슨과 넬슨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들 하는 말과 반대로 가야 똑똑한 사람이다. 호머 심슨과 넬슨이 “기후 위기란 없다”고 말한다면? 실제로는 기후 위기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 농담은, 기후 위기란 없다고 믿는 사람을 비웃는 유머로도 읽을 수 있다. 아무려나 어느 한 쪽을 심하게 몰아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묘한 유머다. 이번 여름 무더위를 겪으며 우리는 기후 위기를 실감하게 되었지만.

글·그림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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