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원숭이…위스키 이름에 등장한 사연 [ESC]

한겨레 2024. 8. 3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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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라벨은 위스키의 이름, 종류, 증류소, 도수, 사용하는 캐스크 등 여러가지 정보들을 담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싱글몰트 위스키는 주로 증류소의 이름을 사용하고, 블렌디드 위스키나 미국 위스키는 사람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증류소의 직원들이 근무 중 몰래 위스키를 조금씩 슬쩍해 담곤 했었는데 이때 사용한 것이 코퍼 독 디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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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이야기 코퍼독과 몽키숄더
근무 중 작은 용기에 위스키 슬쩍
고된 노동, 원숭이처럼 굽은 어깨
과일·꽃향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

위스키 라벨은 위스키의 이름, 종류, 증류소, 도수, 사용하는 캐스크 등 여러가지 정보들을 담고 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위스키의 이름이다. 이름은 위스키의 풍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그 위스키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스코틀랜드의 싱글몰트 위스키는 주로 증류소의 이름을 사용하고, 블렌디드 위스키나 미국 위스키는 사람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조금 특이한 이름을 가진 위스키 2개가 있다. 하나는 스코틀랜드 싱글몰트의 명가 월리엄 그랜트 앤 선즈의 ‘몽키 숄더’, 다른 하나는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 최대 증류기업인 디아지오의 ‘코퍼 독’이다. 위스키 이름에 원숭이와 강아지라니! 견원지간이라는 사자성어가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좀더 재미있게 다가온다.

몽키 숄더는 말 그대로 ‘원숭이의 어깨’를 말한다. 과거 몰트(맥아)를 만들기 위해 발아한 보리를 일정 시간마다 뒤집어주는 고된 일을 도맡아 하는 증류소 직원들이 있었다. 이들의 어깨가 원숭이 어깨처럼 굽어 몽키 숄더라고 불렀다고 한다. 코퍼 독은 위스키를 담을 수 있는 구리로 된 작은 튜브 모양의 용기인 디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증류소의 직원들이 근무 중 몰래 위스키를 조금씩 슬쩍해 담곤 했었는데 이때 사용한 것이 코퍼 독 디퍼였다. 체인으로 이어져 있어 바지 속이나 허리춤에 묶어 숨겼고, 이렇게 가지고 나온 위스키를 지역의 펍에서 나눠 마셨다고 한다. 두 위스키 모두 양조 노동자들의 노동 과정이 녹아있는 이름인 셈이다.

이 외에도 두 위스키의 비슷한 점은 더 있다. 우선 위스키 병의 디자인이 둥근 모양으로 비슷하다. 둘 다 몰트 위스키를 섞어 만드는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다. 몽키 숄더는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 소유의 발베니, 글렌피딕, 키닌비 세 곳의 몰트 위스키를 사용해 만든다. 코퍼 독은 디아지오 소유의 증류소 8곳의 몰트 위스키를 섞어 만든다. 둘 다 국내에서 3만~5만원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두 위스키 모두 어느 정도 달달하고 과일향, 꽃향이 나는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의 특징을 지녔다. 여기에 코퍼 독은 살짝 스모키한 향이 있다. 둘 다 얼음 없이 마시기에 좋고, 온더락이나 하이볼로 마시기에도 넘치지 않고 좋다. 특별한 호불호 없이 무난하고 가성비 좋은 위스키인 셈이다. 2005년 발매된 몽키 숄더는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얻으며 스코틀랜드의 몰트 위스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많이 판매되는 위스키가 됐다. 2013년 디아지오에서 출시한 코퍼 독은 누가 봐도 몽키숄더를 겨냥한 위스키다. 아직까진 인지도와 평가에서 몽키숄더가 좀 더 앞선다.

요즘 위스키 증류소에서는 노동자들의 수가 점점 줄고 있다. 세계적으로 거대화·자동화되는 현대 산업의 흐름을 위스키업계도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증류소의 위스키를 조금씩 슬쩍 빼내오는 코퍼독 디퍼는 물론이고, 몰트를 만드는 일이 고되어서 어깨가 원숭이처럼 굽은 노동자들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 소유의 스코틀랜드 발베니 증류소에서 몰트를 직접 생산한다고는 하지만 소량이며, 대부분의 증류소가 몰트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전문회사의 것을 구입해 사용한다. 위스키 증류소에 흔히 볼 수 있는 파고다 루프(과거 증류소에서 몰트를 만들때 사용했던 건물의 탑처럼 생긴 지붕)가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는 상징같은 존재가 된 것처럼, 코퍼 독과 몽키 숄더도 이제 실제가 아닌 상징만 남게 됐다.

글·그림 김성욱 위스키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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