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큰 그림 짜기 유용…감성 담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

한겨레 2024. 8. 3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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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소영의 짧은 글의 힘
인공지능시대의 글쓰기
아이디어·맞춤법·문장호응 도움
객관적 검토 뒤 편집·보완 가능
AI는 수많은 가능성 제시할 뿐
화려한 글 홍수 속 고갱이 찾아야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초에 ‘인공지능 (AI)이 올해의 키워드’라는 글을 본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정말 우리의 실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절대적으로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글쓰기에도 인공지능의 역할이 점점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챗지피티를 비롯해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도와주는 도구들이 많이 등장했는데요.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 가지는 마음은 기대 반 두려움 반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들 중에도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기 전에 빨리 뭔가를 써야겠다며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잘 활용해서 능률을 높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강생들 중에도 과제를 제출할 때 인공지능 글쓰기 도구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글쓰기 강의를 하다 보면 종종 자기소개서에 대한 첨삭을 부탁받는데, 가끔은 맞춤법이나 문장 호응 같은 것들을 그런 도구로 한번 걸러서 오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때가 있습니다. 본인이든 타인이든 한번 정리된 글이 수정하고 첨삭하기가 더 수월합니다. 자잘한 것들에 시선을 뺏기다 보면 막상 큰 그림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나은 부분이 있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을 적절히 잘 나눠서 활용하면 플러스가 되는 쪽으로 발전되어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절한 표현·단어 막막할 때

저도 적극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편은 아니지만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거나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했을 때 인공지능을 활용하곤 합니다. 이런 뜻의 단어를 쭉 나열해달라고 하거나, 이 단어의 유의어나 반의어를 물어보는 식인데, 내가 가진 어휘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풍부한 낱말을 보유하고 있으니 당연히 도움이 됩니다. 내가 원했던 답을 발견하지 못할 때도 단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번뜩 해답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번은 갑자기 궁금해져서 방송 프로그램 장르별로 기획안과 대본을 써달라고 해봤는데 의외로 아이템이나 주제, 적합한 출연자나 인터뷰 대상자 선정에 참고할 만했습니다. 물론 형식이나 구성 부분은 아직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신선한 창의력이 발휘되고 콘텐츠의 질이 결정되는 부분은 바로 그 형식이나 구성에서 차이가 나니까요.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언젠가 읽은 글 중에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가 된 다음에 인공지능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미래형 인재이고,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인 사람들이라는 내용이 참 와닿았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이 글을 다 써주는데 글쓰기를 계속 배워야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것들이 답은 아닙니다. 완벽하지도 않습니다. 수많은 가능성을 제공해줄 뿐이죠. 결국 그중에서 선택하고 정리해내는 건 나의 전문성이고 능력입니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어야 잘못된 것들을 걸러내고 실수를 잡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야 그 글이 나의 글이 됩니다. 내가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짧은 글의 원칙과 기승전결의 룰을 확실히 습득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럼 여기서 한번 되짚어보고 넘어갈까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짧고 쉽게’죠. 한 문장의 길이를 한 호흡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짧고 쉬운 단어와 표현들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한 문장에는 주어 하나에 술어 하나, 하나의 이야기만 담을 것. 여기까지가 문장과 문단에 관한 것이라면 글 전체의 큰 그림은 ‘기-승-전-결’의 구성을 살리고 각각의 분량과 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머릿속으로는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해도 내 글에 직접 적용하고 반영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쓴 글에는 거리를 두거나 객관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체를 볼 수 있고, 구성이나 흐름, 문장 호응이나 문맥 같은 걸 살펴보면서 편집을 다시 하고 구조를 탄탄히 세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내 글로는 평소에 잘 안되고 안 보이던 것들이 잡히고 익숙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부쩍 실력이 늘 때가 서로의 글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인데, 그 시간을 통해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걸 배우게 되고 자극을 받으면서 새로운 관점을 얻기 때문입니다. 비슷하게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신선한 시각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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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알고 싶은지 알아야

한가지 더 활용법으로 제안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 글이 짧은 글로 잘 써졌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소리 내서 읽어보는 걸 추천했었는데, 내 글은 아무래도 눈으로 읽게 되고 소리 내서 읽는다 해도 내가 쓴 글이라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럴 때 인공지능에게 내 글을 소리 내서 읽어달라고 하면 제대로 듣고 잘못된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챗지피티의 경우 어떻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고 하죠.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범위를 좁히고 질문을 잘게 쪼개서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질수록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질문을 하려면 내가 알고 싶은 게 뭔지, 내가 뭘 모르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나 목적, 목표가 명확하게 서 있어야 할 겁니다. 점점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게 힘이 되는 시대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는 학습을 통한 나만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글을 잘 쓰는 게 강력한 무기가 되고, 모든 분야에 글이 중요해진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계가 대신 글을 써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직 감수와 검토는 사람의 몫으로 남아 있고, 글쓰기는 여전히 인간만의 감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울리는 인간다운 활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글쓰기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지금이야말로 화려함으로만 치장한 글들이 시야를 가리는 상황 속에서도 중요한 걸 찾아내서 제대로 강조하고 선명하게 전달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소화하기 쉽고 먹기 좋은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건 우리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합니다.

방송작가

물리학을 전공한 언론학 석사.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짧은 글의 힘’, ‘웹 콘텐츠 제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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