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애는 하염없이 기다렸다…이런 나였는데도[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

기자 2024. 8. 3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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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릴 적 동네 친구 ‘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시력이 점점 사라져가던 시기…좋지 않은 소문에 휩싸인 친구 ‘윤’
‘실패자’라는 동질감에 그에게서 도망쳤던 과거…나는 비겁했다, 그때도 지금도

윤은 뭐든지 나보다 빨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좋아하는 남자애가 수시로 바뀌었다. 하굣길에 그 애는 연예인 이야기나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 내용을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반면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지루해하며 발길을 서두르면 그 애는 유행가를 소심하게 부르며 안무 동작을 흉내 냈다. 그깟 거 연습해 뭐에다 쓰냐 물으면 윤은 좋아하는 애에게 보여줄 거라며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

“공부도 못하는데 이런 거로라도 뽐내야 나를 봐주지 않겠어?”

유치하다 생각했지만 내버려 두었다. 춤 연습을 하느라 뒤처지는 윤을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타박타박 걸어갔다. 윤은 도로 위에서 춤을 추다 내가 저만치 앞서 걸어가면 기다리라 소리치고 달려와 숨을 쌕쌕 내쉬며 내 옆에서 걸음을 맞췄다. 그러다 다시 두 팔을 흔들고 어깨를 비틀며 춤을 췄다. 나는 다시 멀어지고 윤은 또 기다려달라 소리치며 달려왔다. 나는 한 번도 윤의 춤을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점차 윤과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 애 소식은 돌고 돌아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왕따, 등교 거부, 폭행, 성매매라는 단어가 섞여 있었다. 윤이 그렇게까지 망가졌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와전된 악의적 소문일 거라 믿고 싶었지만 내 일은 아니었기에 금세 잊어버렸다.

윤이 나를 찾아온 것은 진파랑 하늘이 세상을 뒤덮은 가을날이었다. 나는 하교 후 근처 국립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다. 버스 시간이 멀었기 때문에 도서관 정원 의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윤이 사복 차림에 지독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내 옆에 털썩 앉았다. 내 어깨를 툭 치며 잘 살고 있었냐 물었다. 목소리도 표정도 다리를 꼬고 앉는 자세도 어른스러웠다. 뜻밖의 만남이라 윤을 위아래로 살펴보다 뒤늦게 답했다.

“오랜만이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허공을 올려다봤다. 조경수로 심어놓은 단풍나무가 핏빛으로 물든 이파리를 한숨처럼 떨구었다. 어색해서 손목시계를 보며 버스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확인했다.

“너 아프다며?” 윤이 물었고, 나도 모르게 공격적인 언사가 튀어나왔다.

“학교도 안 다니면서 소문 빠르다. 근데 너랑 뭔 상관인데?”

나는 휭하니 일어나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걸어갔다. 윤은 말없이 나를 따라왔다. 이젠 유행가도 어설픈 연예인 흉내도 없이 나와 속도를 맞춰 걸었다. 그러고는 터미널 앞에서 인사를 생략한 채 제 갈 길로 가버렸다.

며칠 후 교문 앞에서 윤을 다시 만났다. 역시 사복 차림이었고 향수 냄새가 지독했다. 눈으로만 인사하고 지나치려는데 윤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내심 윤과 어울리는 게 눈에 띄어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들었지만 윤을 떼어버릴 마땅한 핑계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외롭고 쓸쓸했다. 평범한 세상에서 벗어난 이단아가 된 것은 나도 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동질감이 들었다.

“돈가스 먹자. 집엔 내가 데려다줄게.”

해가 지면 길이 보이지 않아 서둘러 집에 가야 한다며 거절했지만 윤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읍내에 하나뿐인 경양식 식당으로 나를 끌고 갔다. 못 이기는 척 따라가 돈가스를 얻어먹고, 윤의 팔을 잡고 유독 나에게만 어두워진 길을 걸었다. 그 애는 약속대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러곤 잠시 우리 집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그 애 마음을 알면서도 잘 가라 인사하고 혼자 집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몇주 뒤 윤이는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골목에서 나를 기다렸다. 멀리서 흰 담배 연기가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애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우리는 터미널 슈퍼에서 싸구려 햄버거를 사 먹었다. 내가 계산할 때도 윤이 돈을 낼 때도 있었다. 가끔은 무슨 생각인지 윤이 내가 탄 버스를 함께 타고 우리 집까지 따라왔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애에게 집에 들어왔다 가라고 잡지 않았다.

시력의 상실은 나날이 계속됐다. 이제는 맨 앞자리에 앉아도 칠판 글씨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 사정을 아는 애들이 자기 필기를 보여주었다. 쉬는 시간에 전 수업의 필기를 베껴 썼다. 결국 모든 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더 이상 노트를 빌리지 않았다. 수업 시간마다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에 빠졌다.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은 공상이었다. 필기하는 척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세계를 저주하는 내용일 때도 있었고, 비련의 주인공을 앞세운 유치한 소설일 때도 있었는데 모두 결말 없이 쓰다만 채로 끝났다.

어느 날 다른 반 애가 자기 담임이 나를 호출했다며 교실 앞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영문도 모르고 교무실로 향했다. 윤리교사인 그가 자리에 앉은 채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당황스러운 이름이 튀어나왔다.

“너 윤이랑 어울린다며? 걔한테 전해. 출석일 부족으로 자퇴 처리됐다고. 그리고 너! 얌전하게 생겨서는 그런 애랑 어울리면 못 써, 알았어? 가봐.”

나는 조련된 짐승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섰다. 교무실을 나서는데 저딴 인간에게 고개 숙였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댔다. 그 길로 책상 위 물건들을 가방에 쑤셔 넣고 학교를 나섰다. 윤과 앉았던 터미널의 낡은 의자에서 가을하늘을 오랫동안 올려다봤다. 시외버스는 연신 사람을 뱉었다 삼키기를 반복하며 정해진 목적지로 떠나갔다. 아주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학교와 집뿐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터미널 화장실에서 윤을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다. 윤은 급한지 대충 내게 손 인사만 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고는 급한 듯 종종대며 공중전화부스 인근에서 도로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회색 승용차가 깜빡이를 켜고 갓길로 다가왔다. 윤은 앞 좌석 문으로 재빨리 올라탔다. 돈벌이에 나선 거였다. 나는 그 부스가 원조교제를 나온 애들의 집합소라는 것을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 다시 터미널로 들어와 집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윤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다음날 나는 항상 다니던 길로 터미널에 갔다. 멀리 골목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건조한 가을바람이 윤의 향수 냄새를 내게 일러바쳤다. 순간 걸음을 멈추고 소리 없이 돌아섰다. 어제까지 윤을 이해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 애를 보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도 윤은 그 골목에서 나를 기다렸고, 나는 다시 도망쳤다. 며칠이 반복되었는데도 그 애는 내가 자기를 피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나를 만나기 위해 학교 후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윤은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향해 손을 번쩍 들어 보였고, 순간 나는 학교 안으로 되돌아가며 정신없이 달렸다. 윤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윤에게 실패자라는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의 미래는 똑같이 망가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애가 자동차에 올라탔을 때 다름을 알았다. 나는 현실에 순응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애처럼 인생을 던질 수도 없었다. 이후 나는 장애인 학교에 입학했고, 윤의 소식은 들을 수도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또다시 그 애를 잊고 살았다.

과거에서 윤을 끄집어낸 사람은 엄마였다. 고향 집에 돌아와 몇달을 빈둥대던 가을밤, 엄마는 대청마루에 앉아 마른 동부 콩깍지를 까며 옛 친구 이름을 댔다.

“걔가 윤이었지? 초등학교 때 네가 우리 집에 몇번 데려왔었잖아. 쪼그마해서 입 툭 튀어나왔던 애. 중학교 때는 노랑 대가리 해가지고 날라리 됐잖아. 읍내에서 나이 든 놈들이랑 붙어 다니는 거 내가 여러 번 봤어. 너 맹학교 가고 집으로 전화가 두 번 왔었는데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딱 잘랐어. 그런 것들이랑 어울리면 못 써.”

순간 엄마의 말에 화가 났다. 마침 발에 걸린 휴대전화를 힘껏 걷어차고는 엄마를 향해 쏘아붙였다. “엄마가 말하는 그런 것들이 뭔데? 적어도 윤은 나를 만나러 왔었어. ‘눈 병신’된 친구라도 어울려줬어.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애먼 엄마에게 화풀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얼얼한 발끝을 내려다봤다. 동강 난 휴대전화가 내 처지 같았다. 죄책감이 밀려들며 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자신을 보자마자 뒤돌아서 도망치던 내 등을 바라보고 서 있었을 윤이. 나는 여전히 비겁했다.

■조승리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열다섯 살 때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손끝으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펴냈다.

조승리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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