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방울 눈·2등신 캐릭터’ 하츄핑 열풍…왜?
추석 연휴 오랜만에 만난 유치원 다니는 손녀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할머니, 할아버지라면 먼저 한마디 건네보시길. “너는 무슨 ‘핑’을 좋아하니?” 손녀의 눈빛은 아마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 <사랑의 하츄핑>의 누적 관객 수가 80만을 넘었다(8월 말 기준). 이미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겼고, 하츄핑의 무대인사가 포함된 상영관은 암표까지 등장했다. 모르는 어른에겐 그저 왕방울 눈을 가진 2등신 캐릭터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들의 매력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반응이 뜨거울까.
부모는 쿨쿨…그런 아동용 애니가 아니다
아동용 극장 애니메이션은 보통 한 명이 관람하면 최대 두 명의 관객 수가 추가로 카운팅되는 법이다. 물론 영화가 시작되면 부모는 아이의 옆자리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암묵적 룰. <사랑의 하츄핑>의 관객석 풍경은 좀 다르다. 훌쩍거리는 엄마, 슬쩍 눈물을 훔치는 아빠. <사랑의 하츄핑> 감독이자 제작자인 SAMG엔터테인먼트 김수훈 대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같은 가족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모가 옆에서 잠자는 영화는 만들기 싫었어요. 장르적 특성상 부모도 만족해야 하고 콘텐츠의 확장성을 위해서는 10대도 극장에 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자녀부터 중학생 그리고 부모까지 볼 수 있는 가족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컸죠.”
내수 시장이 크거나 투자가 활발한 미국이나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이 아닌 이상 <겨울왕국> 같은 가족 애니메이션의 탄생은 꿈만 같은 일이다. 국내 애니메이션은 아직 독립 프로덕션이 한 땀 한 땀 만들어내는 구조에 가깝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극장가 타격이 크고 아이들 인구도 줄다 보니 애니메이션 제작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 됐죠. 그러나 우리만의 오리지널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50만 관객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그것을 달성한 것만으로 큰 가능성을 봤어요.”
파산핑, 등골핑…이유있는 인기
<캐치! 티니핑>은 2020년 3월부터 KBS 2TV를 통해 방영을 시작한 한국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이모션 왕국의 공주 로미가 지구로 뿔뿔이 흩어진 마음의 요정인 ‘티니핑’을 잡으러 다니는 이야기로 1기부터 4기까지 100가지 티니핑이 등장한다.
티니핑의 작명은 각자의 특징에 ‘핑’을 붙인다. 로미와 늘 함께하는 ‘하츄핑’은 사랑의 감정을 대표하는 티니핑으로 ‘하트’(어린아이 발음으로 하츄)에 ‘핑’을 붙여 하츄핑이 됐다. 그 외에도 춤을 잘 추는 ‘라라핑’, 행복을 주는 ‘해핑’, 유대감과 밀착의 아이콘 ‘딱풀핑’처럼 이름은 단순명료하다. 영어 이름 역시 각각 ‘Heartsping’ ‘Raraping’ ‘Happying’ ‘Stickping’이다.
김 대표는 작명에 대해 “티니핑의 이름이 곧 감정이나 상태를 나타낸다”며 “어른도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해야 외우기 쉽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100가지 캐릭터는 사실 1000개가 넘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버려지면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김 대표의 최애핑은 단연 ‘하츄핑’이다. 가족 애니메이션 제작이라는 자신의 꿈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해준 고마운 핑이기에. 티니핑 지식재산권(IP) 담당자 홍석진 과장은 우아한 멋이 있는 행운핑을 꼽았다. 행운핑은 굵은 웨이브에 통통한 얼굴로 오은영 박사와 닮아 ‘은영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나 독특한 특성에 주목받는 ‘마이너핑’들도 있다. 무엇이든 빈틈이 보이면 꼭 채워 넣으려는 신념이 확고한 샌드핑은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를 크림으로 채워준다. 깜박핑은 빌런과 싸우다가도 깜박 잊어버려 해맑은 웃음을 짓는 천진한 매력이 있다.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어른들이 공감할 만한 귀찮음의 대표, 차나핑도 있다. 차나핑은 상대의 의욕을 상실시키고 행동을 느리게 하는 신묘한 기술이 있다. 코자핑과는 사촌지간이다.
티니핑은 ‘생명력이 느껴지는 굿즈’로도 유명하다. 마치 살아 있는 듯한 티니핑의 눈망울은 키덜트에게도 구매욕을 일으킨다. 김 대표는 지난 5년간 자체 굿즈 제작을 시도하다 사기를 당하거나 금형 불량으로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가 애니메이션을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시진’이라는 조카를 가진 한 누리꾼이 “조카가 자기 자신을 자꾸 ‘시진핑’이라고 불러달라고 할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 없다”고 전한 에피소드가 온라인에서 화제였다. 홍 과장은 “우스갯소리로 중국 진출에 용이하도록 ‘시진핑’을 만들라는 분도 있었다”며 “다행히도 중국과 일본에서 반응이 좋아 올해 안으로 현지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동용은 조잡하고 유치해도 된다는 룰을 과감하게 깬, 그래서 ‘파산핑’ ‘등골핑’이라 불리는 국산 애니메이션의 공세는 이제 막 시작됐다. 이번에 개봉된 <사랑의 하츄핑>은 티니핑 시리즈의 프리퀄이 담긴 첫 번째 작품이다. 2탄과 3탄이 이미 기획 제작 단계에 들어가 있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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