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피소드] 최고 성적 거두고도 '임금체불'로 회장 사퇴한 사격연맹
2024 파리 올림픽을 마치고 대한민국 사격 선수단은 금의환향 했습니다.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를 수확한 2012 런던 올림픽의 성과를 넘어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를 따내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사격계는 선수들이 피땀 흘려 일궈낸 값진 성과를 만끽해야 할 순간에 오히려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파리 올림픽 일정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 6일 신명주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기 때문입니다. 신명주 전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경기도 용인에서 운영하던 종합병원 ‘명주병원’에서 임금 체불 사태가 벌어진 탓이었습니다.
사퇴 의사를 밝히기 불과 나흘 전까지만 하더라도, 언론들은 신 전 회장을 한국 사격의 ‘르네상스’를 이끌 ‘구원투수’로 묘사했습니다. 사격연맹은 값진 성과를 거두기 직전, 수장을 오랫동안 찾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지난 2002년부터 20년 넘게 대한사격연맹 회장사를 맡아 왔던 한화그룹은 지난해 11월 회장사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사격연맹은 반년 넘게 수장 공백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지난 6월 대한하키협회 부회장을 지낸 신명주 명주병원장이 새 회장 후보로 단독 출마해 새 사격연맹 회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지난달 초 파리 올림픽 사격대표팀 출정식과 함께 이뤄진 사격연맹 회장 취임식에서 신명주 전 회장은 “사격연맹 회장직을 맡게 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신 전 회장은 “유기적인 소통 체계를 구축해 모두가 함께하는 연맹을 만들겠다.”, “사격 연맹의 안정을 위해 재정 자립의 길을 열겠다”며 당찬 포부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취임한 지 막 한 달이 됐을 무렵, 개인적 사유로 스스로 물러나게 되면서 ‘공염불’이 됐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명주병원은 한 때 직원이 650명에 달하던 대형 종합병원입니다. 한 명주병원 관계자는 “신 전 회장이 자신의 병원이 지역 거점병원으로서 수월하게 기능하는 꿈을 꿨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지난 2022년 6월 신 전 회장은 명주병원을 23개 진료과, 18개 특성화센터 규모로 빠르게 확장시켰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 전 회장은 병원 건물을 추가로 세우기 위해 명주병원 주변에 땅을 사들였습니다. 하지만 외형에 비해 내실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명주병원 관계자는 “명주병원은 개원 이후 월 기준으로 단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익을 내지 못하다 보니 병원의 적자 규모는 점차 불어났고, 재무적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명주병원 간호사들의 월급날은 매달 10일입니다. 하지만 MBC가 한 명주병원 간호사의 급여 지급내역을 확인해 보니, 명주병원은 지난해 5월부터 매달 10일에 약속한 임금을 전액 지급하지 못했습니다. 많게는 3차례에 걸쳐 월급을 나눠 지급했습니다. 급기야 지난 4월부터는 직원들이 아예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병원 상황이 녹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관리자들은 ‘병원은 순항 중’이라며 상황을 숨기기 급급했습니다. 신 전 회장은 지난 6월 직원 전체 공지 문자메시지를 통해 “재정 안정화를 위한 마지막 진통을 겪고 있다”고 병원 상황을 긍정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명주 전 회장이 직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약속은 여러 차례 깨졌습니다. 지급되지 않은 임금 탓에 직원들의 신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만, 심지어 신 전 회장은 프랑스 파리로 출국했습니다. 그리고 이달 초 프랑스에 체류 중인 신 전 회장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급여 지급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지연된다”고 알리며 또 한 번 직원들과의 약속을 뒤집었습니다. 해당 메시지를 받은 직후, 명주병원 직원들은 “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 선장이 배를 비우고 한가하게 외유성 출장을 떠나는 게 맞느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직원들의 분노를 키우는 신명주 전 회장의 기이한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직원들이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해 카드 빚이 연체되고,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신 전 회장은 ‘통 큰 기부’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지난달에는 지역 취약 계층을 위해 용인시에 쌀 1톤을 기탁하고, 그보다 한 달 앞선 지난 6월에는 모교인 충주고에 1,000만 원의 발전기금을 내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직원들 사이에서는 “직원들 돈으로 강제 기부했으니 (올림픽) 메달도 나눠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신 전 회장은 1년 넘게 직원 월급이 밀리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최대 주주로 있는 법인 ‘바른파트너스’에는 수억 원대 병원 임대료를 꼬박꼬박 지불했습니다. 취재 결과, 명주병원은 올해 5월과 6월에는 3억 3천만 원을, 7월에는 4억 4천만 원을 바른 파트너스에 임대료 명목으로 지불한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신 씨는 “바른파트너스에서 발생한 수익을 개인적으로 가져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임대료로는 월 1억 5천만 원 정도로 지급됐다며 3~4억 원으로 표시된 세금 계산서와 실제 임대료는 다르다”고도 주장했습니다.
MBC 취재진은 신명주 전 회장이 프랑스에서 귀국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지난 6일 임금 체불 취재 내용과 관련해 해명을 듣고자 신 전 회장에게 연락하자, 신 전 회장은 “회장직을 사임한다고 (연맹) 사무처에 얘기해 놨다”고 말했습니다. 또, MBC의 첫 보도가 나가자 신 회장은 입장문을 내고 “사격과 병원은 별개로 봐 달라”며 “우리 선수들의 성과가 폄하돼선 안 되고, 나무가 아닌 숲을 봐 달라”고 밝혔습니다. 신 회장은 또 “최근 두 달 동안 병원에 많은 퇴사자가 있어 급작스럽게 많은 퇴직금을 줘야 하는 상황인데, 부동산을 처분하는 등 방법을 마련해 병원을 정상화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신 전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지난 21일에는 해당 사태에 책임지고 31명의 대한사격연맹 이사 전원이 사퇴를 결의했습니다. ‘신명주 전 회장의 부임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이사진이 책임을 통감하며 내린 결단’이라는 설명입니다.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며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사격연맹은 결국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하게 됐습니다. 신 전 회장이 약속한 출연금 일부를 활용해 지급하려 했던 올림픽 메달리스트 포상금은 기약이 사라졌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한 신명주 전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또, 노동부는 직원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신명주 전 회장 측에 밀린 임금에 대한 해결책과 자산 청산 계획 등을 묻는 공문을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동부 관계자는 “임금체불 액수와 인원 등 규모가 상당한 이유로 사안에 대해 엄중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신 전 회장과 관련해 접수된 임금 체불 신고 건수만 400여 건에 육박합니다. 이와 별개로 검찰에는 임금 체불로 혐의로 신 전 회장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됐습니다. 다만, 수사당국은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고려해야 하는 탓에 수사 속도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한 명주병원 직원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모아둔 돈도 이제 다 까먹었고 상황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연히 받아야 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제발 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신명주 전 회장은 직원들에게 언제 밀린 임금을 다 지급할 수 있을지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이재욱 기자(abc@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632328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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