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당신에게
[이송희일의 견문발검]
[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어쩌다 보니 계속 기후위기 강의를 다닌다. 그때마다 우리 삶의 안녕을 묻는 근심어린 눈빛들과 마주한다. 올해의 저 매서운 폭염만 봐도 근심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엘니뇨가 끝났는데도 지구 기온은 거침없이 상승해 7월22일,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고온을 기록하고야 말았다. 어쩌면 정말로 지금의 더위가 우리가 겪는 가장 시원한 더위일지도 모른다.
강의 끝 무렵 어김없이 또 하나의 눈빛과 마주선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청중들에게 개인으로 고립되지 않는 게 먼저라고 간곡히 제안한다. 분리수거, 줍깅, 텀블러와 같은 개인적 실천과 착한 소비로는 지금의 행성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하지만 매번 저항에 부딪힌다. 자신의 개인적 실천과 선의가 얼마나 진심인지, 분리수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토로한다.
하기사 한국은 분리수거를 가장 잘하는 나라다. 자긍심의 발로인 걸까. 얼마 전에도 제주도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한 포럼에서 과학 유튜버로 잘 알려진 궤도가 학생들 대상으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분리수거를 들었다. 효과가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당찮은 조언이다. 과학 타령을 하며 내놓는 대안이 기껏 분리수거와 그린워싱 기업 상품의 소비라니. 과학은 우리에게 밝은 눈을 선사하지만, 결국에 기후위기는 정치와 경제의 문제다.
단 두 개의 장면으로도 간단히 기각되는 이야기다. 하나는 1955년 미국의 'LIFE' 매거진에 실린 사진. 온 가족이 환호성과 함께 쓰레기를 공중에 버리는 장면이다. 하단에는 '버리는 삶(Throwaway Living)'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닥치는 대로 일회용 쓰레기를 버리자는 캠페인이다. 2차 세계대전 때 군용으로 사용되던 플라스틱이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상품화되는데, 당시 미국인은 플라스틱 제품을 함부로 버리는 행위를 마뜩찮게 여겼다. 그러자 기업들이 일회용 소비를 종용하고 쓰레기를 버리자는 캠페인을 벌이며 대대적으로 소비자의 등을 떠밀었다. 마침내 이윤을 위한 일회용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또 하나의 장면은 1970년 '울부짖은 인디언(Crying Indian)'이라는 전설적인 공익 광고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인디언이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다. 이 광고를 만든 것은 미국의 유명 환경단체 '미국을 아름답게(Keep America Beautiful)'. 저돌적이고 다양한 캠페인으로 오늘날의 줍깅과 분리수거의 모델을 만들어낸 단체다. 그러나 이 단체를 비밀리에 만든 것은 코카콜라 컴퍼니, 펩시코 등 음료와 포장재 제조 기업들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니까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사용하라고 재촉한 것도 기업들이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은밀히 사람들에게 전가한 것도 그 기업들이다. 그 덕에 지구는 점차 플라스틱 무덤으로 변모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양심을 채찍질하며 허망하게 분리수거를 해왔던 것이다.
마치 수돗물을 틀어놓고 물걸레질을 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다. 지금 이 추세라면, 2050년경 플라스틱 생산량이 3배 더 늘어난다. 이는 석탄발전소 1700곳 이상과 맞먹는 탄소 배출을 야기할 뿐더러 바다에서 인간의 혈액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으로 출렁거리게 할 것이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기업을 규제하고 영리 활동에 따른 생태적 비용을 책임지도록 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개인적 책임과 실천이 유일한 해법인 양 호도하며 위기가 해소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은 미신적 주술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지구와 우리의 안녕을 걱정하는 그 선량한 마음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문제는 자본과 지배 엘리트들의 지휘 아래 우리의 실천양식이 복속될 때, 파괴적인 이윤 추구 시스템에 세상을 그냥 맡겨놓았을 때, 지구는 더욱 뜨거워지고 가난한 이들의 삶부터 차례차례 붕괴될 거라는 점이다.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첫 응답은 고립을 떨쳐내고 서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벽장이 아니라 광장, 개인이 아니라 시민. 문제가 무엇인지 난전을 벌이고 함께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그 시작일 터다. 과학 유투버의 주장과 달리, 그 만남의 장에선 할 게 넘쳐난다. 그것이 시위든, 공유지 운동이든, 공동체 텃밭이든, 그 무엇이든. 함께할 수 있는 시민적 실천들이 넘쳐 흐른다.
예를 들어 9월7일에 열리는 기후정의행진도 그런 만남의 장이다. 수만 명이 모여 기후정의를 외치고 민중의 힘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자는 뜨거운 자리다. 우리가 함께 더 뜨거워져야 타오르는 지구를 식힐 수 있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광장일 것이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당신께, 외롭게 절망하지 말고 함께 길을 내자고, 불안에 삼켜지기 전에 우리가 대안을 생산하자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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