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딥페이크 성범죄…진짜 대책을 찾자

윤유경 기자 2024. 8. 3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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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수사·느슨한 처벌, 불안정한 피해자 지원체계 문제
플랫폼 기업 대상 '디지털 성범죄 수사 협조 요구' 규정 필요
'피해자 되지 않는 교육' 아닌 '가해자 되지 않는 교육' 있어야
성범죄 실태 보도에 '단독', 일회적 사건 접근…언론 자성 필요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 딥페이크.사진=Getty Images Bank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범죄를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는 불법촬영, 비동의유포, 온라인 성착취 등 다양한 유형으로 확장되고 반복돼왔다. 2019년 여성 수십 명에 대한 성착취와 피해영상 유포로 수익을 창출한 텔레그램 성착취방(n번방) 참가자 수는 26만 명이 넘었고, 올해 서울대·인하대에서 여성 동문들의 딥페이크 합성물을 제작·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알려졌다.

반복되는 사건에도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은 없었다. 최근엔 교사, 지인, 동료, 학생들을 성적 이미지와 합성하는 대규모 딥페이크 성범죄가 드러났다. 성범죄물을 제작·유포하는 텔레그램 한 대화방의 전 세계 이용자 수가 22만여 명에 이른다는 보도를 포함해 피해 실태 보도가 속출하는 가운데, 여성들은 자신의 SNS 삭제를 삭제하는 등 스스로의 활동을 제약하거나 SNS를 중심으로 직접 성범죄 대화방 파악에 나서고 있다. 반복되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분노하며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미흡한 수사·느슨한 처벌, 불안정한 피해자 지원체계 문제도

디지털 성범죄가 반복되는 주요 이유로는 경찰의 미흡한 수사가 지적된다. 심각한 범죄라는 공감이 부족하고 '어차피 못 잡는다'는 식으로 범죄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n번방' 사건 당시에도 수사가 제대로 착수되지 않다가 '추적단 불꽃' 활동가들이 직접 나서 취재하고 가해자를 특정한 후에야 사건이 다뤄져 비판받았다.

▲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2020년3월2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의 근본 해결을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2019년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의 '단' 원은지 활동가는 30일 미디어오늘에 “서울대 딥페이크 성착취 사건을 경찰이 기자들에게 백브리핑할 때 n번방 사건과 딥페이크 사건을 비교하며 그 정도로 중한 범죄는 아니라고 밝혔다”며 “그런데 지금 n번방 사건이 크게 공론화됐던 때처럼 지옥문이 열렸다. 피해자 보호와 불안 해소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경찰이 어떻게 범죄 피해 정도를 비교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경찰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이버공간이라는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수사 전반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원은지 활동가와 함께 '추적단 불꽃'의 '불'로 활동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날 미디어오늘에 “수도권의 경우 한 수사관이 맡는 수사 건수가 300건일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고 이전과 달리 경제팀과 사이버수사팀이 하나로 통합됐다”며 “플랫폼 전반이나 사이버 수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떨어져 피해자들이 신고할 때 답답한 부분이 있다. 경찰에서 플랫폼에 IP주소 등 가해자 신상을 요청하면 돌아오기까지 최소 2주가 걸려 가해자를 검거하지 못하고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디지털 미디어, 젠더를 연구하는 홍남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도 29일 미디어오늘에 “디지털 성범죄는 가해자 특정이 어렵고 유포 범위, 속도가 글로벌 수준까지 순식간에 확장될 수 있다. 최초 합성자를 찾기 어렵고 유포 단계에서 가해자 또한 최초 합성자, 최초 유포자만으로 보기 어렵게 된다”며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의 특징을 알면서도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특정하도록 책임을 지우거나, '어차피 못 잡는다'는 회의적 태도가 쌓여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렀다. 가해자들은 '어차피 못 잡는다' 혹은 '안 잡는다'는 것을 알고 공권력과 피해자들을 조롱하듯이 범죄를 실행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2020년 7월1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회원들이 사법부의 손정우 미국 송환 불허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시민 참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느슨한 처벌이 가해자들에게 '범죄를 저질러도 실형을 살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NS를 통해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제작·유통하는 경우, 피해 대상이 아동이면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최소 징역 3년,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된다. 피해자가 14세 이상이면 성폭력처벌법이 적용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되지만 실형에 처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 'n번방' 참여자 중 혐의가 특정된 378명 중 실형이 선고된 건 12.4%에 불과하며, 집행유예 선고율은 69.1%이다.

수사를 통해 법정에 세워도 감경되는 경우가 많다. 박지현 전 위원장은 “가해자가 군대를 가니까 '군대 가서 정신차리고 올거다'라고 변호하기도 하고, 초범이라는 이유로 감경되는 경우도 많다. 계속해 성착취물을 시청하고 공유하다가 걸린 게 처음인 거지 어떻게 초범인가”라며 “그간 양형 기준과 감경 기준을 전반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미국 플로리다주에선 디지털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에게 형을 살고 나와도 일정 기간 디지털 기기 접근을 제한한다”며 “우리 사회도 이런 정도의 조치를 분명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에 대한 이해 부족은 피해자 지원 체계의 불안정으로도 이어진다. 여성가족부가 30일 공개한 2025년 예산안에 따르면,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 예산은 올해 34억7500만 원에서 내년 32억6900만 원으로 삭감됐다. 디성센터가 요청한 불법촬영물 식별 기술 고도화를 위한 30억 원 수준의 예산도 반영되지 않았다. 예산 삭감은 인력 부족과 전문성, 지속성의 부족으로 직결될 수 있다.

박지현 전 위원장은 “피해자가 많다 보니 피해자지원센터에 연락 닿기가 어렵다”며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들이 밤중에 인지하고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밤중 연락할 수 있는 곳은 1366(여성긴급전화)밖에 없다. 전문 상담인력을 많이 배치해 여러 선택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인지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경찰서인데 경찰서도 안내에 그치는 수준”이라며 “피해자들의 대처 방안에 대한 원스톱 다각적 지원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플랫폼 기업 대상 '디지털 성범죄 수사 협조 요구' 규정 필요

정치권에선 뒤늦게 대책 마련을 위한 법 개정안을 쏟아내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 강화, 피해자 지원 강화 등 다양한 대안이 나오지만 정치권에서 그동안 구조적 성차별 및 여성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손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홍남희 교수는 “딥페이크 관련 사안들은 정치인 관련 허위 영상, 가짜뉴스 등의 측면에서만 우려했을뿐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해선 그간 계속 사례가 있었음에도 정치적 관심사로 다뤄지지 않았다”며 “젠더 폭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정치권에선 정치적 목적에서 젠더 갈등만을 부추겨 왔다. 무의미한 갈등 조장보다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젠더 폭력의 문제를 근절하고 성평등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종합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위원장도 “디지털 범죄 관련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는데, 두 부처가 맡기엔 너무 크고 다양한 문제”라며 “독일엔 디지털위원회가 있다. 과방위 수준이 아니라 정부 부처에서 디지털 부서를 만들고 디지털위원회를 설치해 거버넌스 구조를 새롭게 마련해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체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가해자를 잡을 방법도 정치권에서 주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다. 이를 위해 IT 보안 전문가들은 텔레그램, 구글, 엑스 등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의 디지털 성범죄 수사 협조를 요구하는 법 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지금은 국가보다 기업이 위에 있다. 사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어떠한 경찰 협조에도 응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있어 정부는 '어쩔 수 없지'라고 대응하는 수준”이라며 “이젠 정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업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 X(옛 트위터) 로고.

프리랜서 개발자이자 디지털 성폭력 문제 대응 활동을 해오고 있는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는 십대여성인권센터 IT지원단으로 활동한 2019년부터 카카오톡에 프로필 사진 캡쳐 금지 기능을 넣어달라고 요청해왔다.

조 활동가는 지난 28일 “사용자의 프로필 사진 캡쳐를 허용한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 플랫폼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며 “과거 인스타그램에는 특정한 상황에서 다른 사용자가 이미지를 캡쳐하면 '○○○가 이미지를 캡쳐했다'고 알람을 보내주곤 했다. 기술적으로는 전혀 어렵지 않으나 플랫폼들이 하지 않을 뿐이다. 캡쳐 방지에 대한 차단 또는 알림 기능이 있었다면 누구나 손쉽게 남의 사진을 저장하거나 도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 되지 않는 교육' 아닌 '가해자 되지 않는 교육' 필요

한국 사회의 젊은 남성이나 남학생들이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놀이'로 인식하며 딥페이크 성범죄에 연루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박 전 위원장은 “결국 교육이 답”이라며 “공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반 인식, 정치인들의 말 등 모든 게 청소년들에겐 교육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껏 '밤에 늦게 다니지 말아라', '치마 입지 말아라' 등 피해자가 되지 않는 교육만 해왔다. 결국 같이 살아가는 입장에서 지금 집중해야 하는 건 가해자가 되지 않는 교육이다. 디지털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중범죄인지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남희 교수는 기술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아닌 '기술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한국 사회의 미디어리터러시나 디지털 시민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매우 경쟁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한국 교육 현장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학교 현장에선 현재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학교폭력, 성폭력 사례들이 범람하고 있다”며 “여성을 성적 도구화하고 이를 장난이나 놀이로 공유해 온 오랜 방식이 새로운 기술을 만나 더욱 실감나게 합성하고, 광범위하게 유포하는 것이 가능해져 피해 범위와 수준, 내용이 질적·양적으로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비판적 관점의 미디어 교육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수준의 미디어 교육,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은 영상교육 중심이며 일회성에 그치고 있고 다른 주요 과목에 비해 중요도가 낮게 취급되고 있다”며 “교육 시수와 중요도를 높이는 것 뿐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범죄 실태 보도에 '단독', 일회적 사건 접근…론 자성 필요

딥페이크 성범죄를 보도하는 언론도 진지한 개선이 필요하다. 홍 교수는 “딥페이크 성범죄 사례들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언론보도 방식도 고민이 필요하다”며 “디지털 성범죄를 일회적 사건 보도로 접근하는 방식도 여전하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언론이 자극적인 보도 방식보단 교육적 차원에서 어떤 접근이 필요할지, 해외 사례에선 어떠한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는 지 등을 캠페인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용어 사용의 문제도 지적된다. 홍 교수는 “불법촬영, 비동의 유포 등의 용어를 아직도 몰래카메라, 리벤지 포르노 등으로 명명하는 보도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지인 능욕'이란 말도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지인 능욕' 범죄라는 표현은 '능욕'이라는 단어가 가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표현이므로 '딥페이크 집단성범죄'와 같은 다른 표현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 실태에 '단독'을 붙이는 보도 행태도 지적됐다. 박 전 위원장은 “단독을 달고 새로운 사건인양 보도되는데 5년 전 (n번방 사건 때) 취재했던 것과 똑같이 있었던 일들”이라며 “조회수 올리려는 목적 말고 어떤 게 있나. 대안에 대한 집중도도 굉장히 떨어진다. 디지털범죄 전반에 대한 심층적 기획기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기사 작성으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되고 있는 여성 기자들에 대한 보호 조치도 필요하다. 박 전 위원장은 “데스크들이 대부분 남성이며 성폭력 전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도 많고, 관련 기사를 쓴 여성 기자들이 성폭력 타깃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기자로서 기자가 할 일을 하는 건데 본인이 피해자가 될 각오를 하고 일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언론사에서 기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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