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시장을 지킨다… 장사 열정 ‘모전여전’ [장다르크 이야기②]

이호준 기자 2024. 8. 31. 11: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대가 운영하는 반찬가게… 전통을 팝니다
음악 전공한 30대 女사장 고기를 연주하다-場(장)다르크 이야기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나섰던 시장에서 어엿한 ‘사장’이 된 전통시장의 여성 상인들. 이들의 뒤에는 항상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해 해주는 ‘선배 상인’이자 가족이 있다. 온 가족이 똘똘 뭉쳐 전통시장에서 일을 하고 전통시장의 미래를 밝히는, 대를 잇는 시장 사랑을 보여주는 여성 상인을 만나기 위해 기획취재반은 성남과 수원으로 향했다.

■ 세 번째 場(장)다르크. 성남의 '미식가' 배화자 대표(61) 이야기

성남 중앙공설시장 강원반찬 2대 사장 배화자 강원반찬 대표(61)와 딸 황연주씨(30)가 반찬을 요리하고 있다. 곽민규PD

성남 중앙공설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참기름 향, 매콤한 고춧가루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여러 가게를 지나 도착한 곳은 3대가 운영하는 강원반찬.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는 가게 안쪽 주방에서 얘기를 나누던 배화자 강원반찬 대표(61)와 딸 황연주씨(30)가 취재진을 환하게 반겼다.

강원반찬의 1대 사장이었던 권영삼씨(88)가 일궈낸 강원반찬. 이곳에선 권씨 집안 3대가 함께하고 있다. 요리에 열을 올리던 배 대표는 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반갑습니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강원반찬을 운영하는 대표 배화자입니다”라며 짧지만, 강렬한 자기소개를 했다.

배화자 대표는 “고향이 강원도였던 어머니가 30대 후반부터 시작한 가게라서, 성남에 있지만 이름은 강원반찬이예요. 학교 다니면서 한두 번씩 돕던 가게였는데 지금은 제가 대표로 잘 끌어 나가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45년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공설시장 강원반찬. 곽민규PD

젊은 시절 배 대표는 장사가 싫었다고 한다. 배 대표는 “장사, 가난이 너무 싫었어요.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시집을 갔고 가정주부로 지냈는데, 맞벌이해야 할 상황이 됐고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도와 시장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라고 30년 전의 기억을 풀어냈다.

그는 “처음엔 좌충우돌, 딱 그 말이 맞았어요. 장사는커녕 손님을 대할 줄도 몰랐으니. 그러다 상인 교육도 받고 어머니한테 장사 팁도 들으면서, 그렇게 하루 이틀 보내던 게 벌써 30년이 지났네요”라고 했다.

배 대표의 딸인 연주씨가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큰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했던 배 대표를 대신해 반찬가게를 운영할 사람이 필요했고, 가게에 뜻이 없었던 연주씨가 아픈 배씨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함께하게 됐다. 현재 연주씨는 배 대표에게 강원반찬만의 특급 레시피를 배우면서 대를 이을 준비 중이다.

성남 중앙공설시장 강원반찬 1대 사장 권영삼씨(88)와 배화자 현 대표, 황연주씨. 곽민규PD

어머니의 단골이 배씨의 단골이 되고, 또 배씨의 단골이 딸 연주씨의 단골이 돼 가는 과정을 보면서 배 대표는 부담을 느낀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배 대표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곳이라 엄마의 손맛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참 많은데, 가끔은 ‘내가 우리 엄마의 손맛을 따라 하지 못해 손님이 만족하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과 부담이 있었죠.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항상 옆에서 더 많은 걸 알려주시고 더 맛있는 음식을 위해 절 도와주셔서. 지금은 엄마가 일궈놓은 이 가게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죠. 얼마나 많이 고생하셨겠어요. 그런 엄마를 롤모델로 삼고 일을 했고, 지금은 우리 딸의 롤모델이 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러려나”라고 말했다.

배 대표는 가게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는 “강원반찬이 45년 됐어요. 하루 3만원도 못 팔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가족들이 다 뛰어들어서 하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겠어요. 내가 힘들 땐 내 옆에 있는 우리 엄마, 우리 딸을 보면서 지내는 것처럼 우리 엄마도, 딸도 똑같지 않을까”라며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많아서 가족이랑 함께하는 순간이 적지만, 우린 직장에서도 보고 집에서도 보는걸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 네 번째 場(장)다르크. 수원의 '고기왕' 한아름 대표(32) 이야기

수원 화서시장에서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아름 한대감 대표(32). 곽민규PD

무더운 날씨. 시장을 찾는 사람을 위해 시원한 물안개가 퍼지고 있던 수원 화서시장. 이곳에선 만난 한아름 한대감 대표(32)는 이제 막 시장에 발을 들인 ‘병아리’ 사장이다.

지금은 집게를 들고 손님들에게 맛있는 소고기를 제공하고 있는 한아름 대표는 원래 음악을 만드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한 대표는 “대학 전공은 물론이고 그 전부터 음악을 공부했기 때문에 한평생 음악만 알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 제가 지금은 소고기 부위를 공부하고, 더 맛있게 굽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라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음악과 소고기. 32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음악과 함께 한 그가 요식업에 들어서게 된 건 20년 넘게 화서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한 대표는 “시장은 원래도 익숙했어요. 엄마가 시장에서 정육점을 오래 하시다 보니 명절 같은 대목에는 일손을 도우러 자주 오기도 했고. 그땐 제가 시장에서 음식 장사를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라며 “부모님과 진로에 대해 얘기하던 중 ‘서른이면 도전해 봐도, 무너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장사를 시작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수원 화서시장 전경. 곽민규PD

사장 2년 차인 한 대표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고 한다. 그는 “이 가게를 연 지 햇수로 2년밖에 안 돼서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실수도 잦아요. 그럴 때마다 같은 화서시장에서 정육점을 하는 엄마한테 물어보면, 업계가 다른데도 엄마는 척척 해결해 주시니까. 엄마한테 의지를 참 많이 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전통시장 여성 상인으로 겪은 많은 고충 속에서, 생각이 많아진 적도 있다고 한다. 한아름 대표는 “어린, 여성 상인이면 아무래도 손님들이 행동을 거침없이 하실 때가 있어요. 그런 일이 있으면 저는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한데, 엄마는 그런 손님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면서 저를 많이 다독여 주시죠. 그러다 어느 날엔 ‘아, 엄마도 내 나이쯤 장사를 시작했으니 이런 일을 다 겪었겠구나. 그때 엄마는 속으로 삭히면서 지내셨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지금은 엄마랑 많이 얘기도 나누면서 서로에게 의지가 돼 주는 존재로 성장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한아름씨(32)가 가게 주방에서 어머니의 고기 손질 비법을 배우고 있다. 곽민규PD

또 그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에는 ‘무너져도 난 젊으니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가벼웠던 것 같아요. 한 달, 반년, 1년 계속 장사를 하면서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그때 저 자신에게 호되게 한마디 하고 싶어요. ‘아름아, 장사는 만만한 게 아니야’라고요”라며 웃어 보였다.

한 대표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지금의 가게를 운영할 마음이라고 한다. 그는 “2년 동안 배운 것들, 제 마음가짐 등을 다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는 꼭 장사를 시작할 거예요. 시행착오도 많고 허둥지둥 준비한 부분도 있어서 아쉬움이 많은데, 그때도 제 인생 선배이자, 이 화서시장의 선배이자, 여성 상인 선배인 엄마가 함께 해주실 테니까요”라고 했다.  기획취재반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이대현 기자 lida@kyeonggi.com
이지민 기자 easy@kyeonggi.com
금유진 기자 newjeans@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