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온 라크블랑…하얀 눈 사라지고 푸석한 바위만 [ESC]
하늘호수에 비친 만년설 산정
기후변화로 녹아내려 애석해
사라진 것들에서 건진 깨우침
함께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눈을 뜨면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것을 바라고, 같은 꿈을 꾸는 곳이 있을까? 그런 이상향이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할까? 세상에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적어도 내가 아는 ‘그곳’이라면 과장 보태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곳에 모인 사람이라면 푸른 눈을 가진 자든, 피부가 검은 자든, 영어를 못하는 자든 상관없이 매일 아침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산을 갈망한다. 창문을 열면 만년설의 알프스가 눈앞에 동화처럼 펼쳐지는 곳, 바로 ‘샤모니’다.
투르뒤몽블랑, 영원한 버킷리스트
샤모니는 알프스 최고봉인 해발 약 4810m의 몽블랑 기슭에 자리한 프랑스의 작은 산악 마을(해발 1035m)이다. 산이 유명한 고장답게 1924년 세계 최초 동계 올림픽과 1960년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열렸으며, 현지 인구는 1만 명이 채 되지 않으나 사시사철 이곳을 찾는 전 세계 여행자는 이 수를 훌쩍 웃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산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몽블랑 산군을 가운데 두고 프랑스 샤모니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스위스를 거쳐 다시 프랑스 샤모니로 돌아오는 투르뒤몽블랑(TMB)은 걷고 달리는 자들의 영원한 버킷리스트다.
내가 샤모니와 처음 만난 해는 2014년 여름이다. 샤모니를 방문한 연유는 꽤 특별하다. 무려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비록 예상치도 못하게 찾아온 고산병으로 인해 최후의 원정대원 5인에서 낙오해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하얀 산을 품었던 마음, 자일(등산용 밧줄)로 연결돼 의지하고 연대했던 산우(山友)와의 우정은 내 등산 인생의 한 페이지에 지금까지도 선명히 각인돼 있다. 열흘이라는 원정 기간이었지만 사람이 산을 오르며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은 전부 느낀 시간이었다.
찰나에 지나지 않은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삶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었다. 1990년대 말 일본인 아내와 샤모니에 정착해 현재까지도 산악인들의 오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한국인 사장님, 시즌이면 이곳 아파트에 작은 방 하나를 구해 몽블랑 주변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초로의 등반가, 가족과 함께 1년 살기를 하며 매일같이 몽블랑의 산길을 달리는 트레일러너 등 산과 함께하는 다양한 삶을 보면서 틀에 얽매여 있던 나의 삶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샤모니에서는 어느 길로 향하든 산에 오를 수 있다. 그중 많은 여행자가 사랑하는 곳이 바로 하늘 호수 ‘라크블랑(Lac-Blanc)’이다. 몽블랑과 이름이 유사해 모종의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는데 프랑스어로 몽(Mont)은 ‘산’, 블랑(Blanc)은 ‘하얀’을 뜻한다. 즉 몽블랑은 ‘하얀 산’이다. 그렇다면 라크(Lac)는? ‘호수’다. 즉 라크블랑은 ‘하얀 호수’다. 만년설의 몽블랑 산군을 투명하게 담고 있는 아름다운 하얀 호수, 라크블랑을 다시 찾은 것 또한 그러니까 9년 만이었다.
2023년 8월, 샤모니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그리웠던 라크 블랑으로 향했다. 몽블랑 원정대원들과 함께했던 하늘 호수에 오르면서 그때 그 시절의 설렘을 재현하고 싶었다. 시끄러운 노래와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한낮의 선술집을 지나, 시큼한 치즈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피자 가게를 지나, 각종 등산 장비를 판매하는 아웃도어숍을 지나, 인적이 드문 산길에 이르는 동안 오래 전 이곳을 향하던 어린 마음이 떠올랐다. 하염없이 걸을 수 있었던, 어디로든 오를 것만 같았던, 순수한 가슴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동경하던 지난 시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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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모든 곳이 야생 전망대
그렇게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해발 1875m 지점인 라 플레제르(La Flegere)에 도착했다. 시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곧장 오를 수 있는 곳을 이렇게 시간을 들여 올라온 것이다.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사방의 풍경은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발 딛고 서는 모든 곳이 야생 전망대인 곳. 어쩐지 몽블랑 정상까지 한달음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곳. 라크블랑까지는 3㎞남짓 거리다. 케이블카도 더는 갈 수 없는 곳이다. 그 당시 너무 크고 높게만 느껴졌던 하늘 호수가 이제 지척에 있었다. 조금 더 힘을 냈다.
이윽고 고대하던 하늘 호수 앞에 이른 시간은 오후 2시. 태양은 정수리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9년 전 내가 알던 하얀 호수와 어쩐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지키는 낡은 산장도, 파란 하늘도, 푸른 호수도 그대로인데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그것은 라크블랑의 ‘인상’이었다. 순백의 하얀 눈이 환대하던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애석하게도 곳곳이 푸석하게 메마른 황색의 바위였다. 기후 변화로 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가 점점 녹고 있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안타까움이 컸다.
지난 추억을 상기하며 호수 둘레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세월이 흐르며 사라지고 있는 것은 비단 하얀 눈만이 아닐 것이다. 문득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인연들, 지나가 버린 시간들, 내 인생의 어떤 열정이나 다짐 같은 것을 떠올렸다.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얻은 것도 있겠지. 그렇다면 그 자리에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산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덕분에 더욱 단단해진 두 다리, 뜨거워진 심장, 냉철해진 이성이 있을 것이다. 조금은 서글픈 마음으로 그 시절 함께 라크블랑에 올랐던 원정대원들에게 모처럼의 침묵을 깨고 새삼 안부 문자를 보냈다.
이후 샤모니는 줄곧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꼬박 이틀을 보냈다. 돌연 날이 개면 이참에 투르뒤몽블랑을 한 번 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갈지는 정해져 있기도 했고 정해져 있지 않기도 했다. 돌발 행동이었지만 비가 그치면 일단은 나서기로 했다. 160㎞에 이르는 장도 중 우선 가는 데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샤모니에서 이탈리아 쿠르마유르까지는 터널이 연결돼 있어 여차하면 버스를 타고 중도에 되돌아올 수도 있었다. 귀국까지는 겨우 4일이 남아 있었고, 나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몰랐다.
글·사진 장보영 등산여행가
스물다섯 살에 우연히 오른 지리산에 매료된 이후 히말라야와 알프스, 아시아의 여러 산을 올랐다. 그러다 산을 달리기 시작했고 산악 잡지도 만들었다. 지은 책 ‘아무튼, 산’은 산과 함께한 청춘의 후일담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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