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에 밀린 영화관에 구독 ‘패스’ 도입한다면?
해외서 운영되는 영화관 구독 멤버십도 주목
(시사저널=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최근 유명 배우 최민식씨의 영화 관람료 관련 발언으로 갑론을박이 나왔다. 영화 관람료가 인상되면서 관객 수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 생산적이지 못한 논쟁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사실 극장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영화관은 컬러TV 탄생, 비디오 보급, 홈시어터 대중화, 신작 영화 불법 다운로드 등 여러 위기를 마주해 왔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선방 앞에서 관람료에 대한 논쟁까지 겪고 있는 지금, 영화관은 새로운 진화를 꾀해야 한다. 영화계와 극장, 최종 소비자인 관객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마존의 성공이 말하는 것…구독자 혜택 확실해야
하나 있다. 바로 OTT의 성공 공식인 '구독경제'를 한국 영화계에 도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관 시장의 대표적인 플레이어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다. 각기 영화 관람 시 포인트를 적립하거나 할인 혜택 등을 제공하는 멤버십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 멤버십은 일정 비용을 내고 콘텐츠를 마음껏 누리는 구독 멤버십과는 거리가 있다.
콘텐츠를 활용한 구독 멤버십의 '롤모델'은 아마존 구독 멤버십인 '아마존 프라임'이다. 아마존 프라임은 구독료를 내면 무료배송, 스트리밍 음악, 아마존프라임비디오(OTT)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상품 판매가 아닌 구독료로 얻는 연 이익만 약 10조원을 훌쩍 넘는다. 아마존 프라임이 성공한 이유는 구독자 혜택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JP모건 발표에 따르면, 아마존 프라임 구독료가 119달러일 때 구독자는 약 784달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구독료 대비 약 6~7배의 경제적 혜택을 얻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구독경제 기반의 멤버십을 수년 전부터 비즈니스 모델(BM) 혁신 전략으로 삼고 있다. 물품과 서비스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구독 멤버십 구독자는 비구독자 대비 2~7배 정도 물건을 더 사는 것으로 여러 조사를 통해 나타났다. 영화관도 수익을 늘리고 활로를 찾기 위해, 또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늘리기 위해 구독 멤버십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런 구독 멤버십이 극장에 도입됐다. 영화의 탄생지인 프랑스에서는 일정 금액을 내면 극장에서 영화를 매일 볼 수 있는 구독 멤버십이 20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 극장 체인이 직접 구독 멤버십을 운영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CGV나 롯데시네마가 직접 운영하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극장이 아닌 플랫폼이 영화관 구독 멤버십 서비스를 운영해 크게 성장했다가 망한 사례가 있다. '무비패스'다. 오프라인의 넷플릭스로 불리던 무비패스는 2017년 영화 한 편의 관람료로 매일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해 주목을 받았다. 구독료는 9.95달러(약 1만3000원)로, 구독자가 한 달에 영화를 2번 보면 적자가 나고, 그 차액을 고스란히 무비패스가 보전해야 하는 리스크 가득한 BM이었다.
무비패스는 매일 영화를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고, 또 매일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극장은 누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자신들은 개인 ID를 통해 회원들이 선호하는 영화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데이터를 영화제작사 등에 팔기만 해도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의 '무비패스'는 왜 망했을까
그러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N차 관람' 등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던 무비패스는 한 달에 수십 편의 영화를 보는 고객들의 관람료까지 지불해야 했다. 심지어 어떤 구독자들은 주변을 지나가다가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쓰레기를 버릴 목적으로 영화를 예매했다고 한다. 당연히 영화를 안 보더라도 무비패스는 그 금액을 영화관 측에 지급해야 했다.
우여곡절을 겪던 무비패스는 2020년 파산 신청을 했다. 무비패스의 몰락은 OTT 구독 방식을 그대로 오프라인 영화관에 접목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긴다. 공간을 활용하는 비즈니스로서 영화관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고, 그 자체의 장점을 활용해야 한다.
최근 영화관에서는 스포츠, 유명 아이돌 콘서트, 스탠딩 코미디 등의 콘텐츠를 심심치 않게 상영하고 있다. 야구장, 콘서트장도 아닌 영화관에서 이 콘텐츠를 굳이 봐야 하는 이유가 뭘까. 집에서 큰 TV로 보면 저렴하고 편하게 볼 수 있는데 말이다. 바로 '공간의 힘'이다. 같은 팀이나 가수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느끼는 동질감과 에너지가 중요하다. 영화관은 공간을 활용해 멤버십을 확장하고, 주변 상권도 활용하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일본 신주쿠 미로드에서 음식점을 대상으로 한 구독 서비스가 성공했다는 점도 힌트가 될 수 있다. 월 500엔(약 4500원)을 내고 '드링크패스'를 사면, 제휴 식당에서 음료 한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멤버십이다. 할인 효과를 누리기 위해 구독자들은 제휴 점포를 더 자주 방문해 더 많은 메뉴를 주문했고, 이로 인해 구독 서비스를 도입한 가게의 평균 내점 빈도는 월 3.2~22회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영화관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게 되면 구독자는 공간이 주는 장점을 누리기 위해 극장에 더 자주 가게 되고 팝콘, 콜라 등 영화관 음식이나 관련 굿즈 등을 구입할 확률이 높아진다. 비구독자인 가족, 친구, 연인도 동반할 확률이 높아 극장의 모객 및 수익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구독 멤버십을 통해 기업이나 소상공인과도 상생할 수 있다. 지금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CGV 영화표를 가져오면 음식값을 할인해 주는 식당들이 있다. 예컨대 CGV가 구독 멤버십을 도입해 영화관이 위치한 쇼핑몰에서 할인해 주는 구독 서비스를 설계할 수도 있다. 소상공인과 함께 구독 멤버십을 만들어 운용한다면 대표적 상생 모델이 될 수 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영화를 관람하고 외식, 쇼핑까지 이어지는 할인 혜택을 받기 때문에 효율적 소비가 가능하다.
다만 영화 관람료에 포함된 입장권 부과금 문제는 과제로 남는다. 정부는 부과금을 폐지해 영화 관람료 약 500원을 경감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폐지에 따른 인하는 극장이 결정할 문제인 데다 그 금액이 소액이라 관객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구독 멤버십을 도입하더라도 관객들이 입장권 부과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부과금 폐지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정부와 국회의 협의가 필요하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영화인 출신이고, 김민석 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은 다큐멘터리 감독 이력을 갖고 있어 영화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다.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입장권 부과금 폐지와 영화관 구독 서비스 활성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연구교수
《구독경제: 소유의 종말》 저자. 대기업에서 비즈니스모델 혁신 및 개발, 스타트업 발굴, 밸류업 등의 혁신 업무를 수행했다. 경제칼럼니스트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KBS 및 TBS 라디오에서 '경제책사 전호겸 교수의 경제인사이트', '역발상경제'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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