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면 말그대로 대박"…전기차 화재 '게임 체인저' 등장 [성상훈의 배터리스토리]

성상훈 2024. 8. 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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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업계, 46파이(4680) 원통형 배터리 양산 시작
전기차 화재 문제 해결할 '게임 체인저'
사진=뉴스1


“상업화에 성공하면 말그대로 대박이다. 판도를 바꿀 무기가 될 수 있다”

전기차 화재사고, 전기차 캐즘(대중화전 일시적 수요침체) 상황에서 배터리업체들이 어떤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는지 취재하고 있던 기자와 만난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46파이 원통형 배터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46파이 배터리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이는 AA건전지 보다 지름과 높이를 확 확 키운 배터리입니다. 지름이 46㎜라는 뜻에 46파이 혹은 높이를 나타내는 80㎜이나 95㎜ 붙여 4680 원통형 배터리 혹은 4695 원통형 배터리라고도 부릅니다. 

배터리 업계는 이 46파이를 두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존 각형, 파우치형, 2170(지름 21㎜, 높이 70㎜) 원통형 등에 비해 안전성과 효율성을 대폭 개선할 수 있는 폼팩터라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달 초 화재사건 이후 전해질이 고체로 돼 안정성을 높인 '전고체 배터리'가 차세대 배터리로 여겨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상용화까지는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현 가능한 차세대 배터리는 4680이라고 보고 여기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게임체인저 될 것"

배터리의 형태는 크게 원통형, 각형, 파우치형으로 나뉩니다. 원통형은 말그대로 흔히 볼 수 있는 원통 건전지 모양, 각형은 직육면체, 파우치형은 봉투와 같이 생긴 형태를 말합니다. 배터리하면 원통형 모양을 떠올릴만큼 원통형 배터리는 가장 일반적으로 쓰여왔던 형태입니다.

안정성이 높기 때문이죠. 리튬전지는 어쩔 수없이 사용을 하면 할수록 열과 가스가 생겨납니다. 가스가 차면 배터리가 부풀어오르죠. 여러개의 배터리를 함께 사용하는 전기차의 경우 하나의 배터리에서 발생한 열 등이 다른 배터리로 전이되면서 연쇄 폭발로 이어지고 이게 화재로 이어집니다. 이번 청라 화재 사태도 파우치형 배터리가 열과 가스를 처리하지 못해 발생한 화재입니다. 

원통형은 이런 문제가 덜합니다. 원통형 배터리를 여러개 쌓아놓는다 하더라도 중간중간에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공간을 통해 가스와 열이 빠져나가고, 열 전이도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풀어오르는 경우에도 공간이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감당이 가능하죠. 사이 공간에 배터리 쿨링팬 등을 설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원통형 배터리가 시장을 장악하지 못한건 배터리 하나하나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리모콘 등에 쓰이는 크기의 배터리를 전기차에 넣는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배터리가 필요한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2170원통형의 경우 전기차 1대당 보통 3000~4000개가 필요합니다. 여러개를 만들어야 하다보니 가격이 비싸지고 효율이 떨어집니다. 같은 공간 대비 무게도 높습니다. 총 무게만 230~250㎏에 달합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BMS(배터리관리시스템) 통해 배터리 하나하나의 안정성을 관리하는데, 개수가 많으니 BMS 관리가 복잡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46파이가 ‘슈퍼셀’이라고 불리면서 각광받는건 이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통형의 장점을 살려 각형, 파우치형 대비 높은 안정성을 가져가면서도 2170보다 효율성은 높일 수 있습니다. 

46파이는 같은 에너지 밀도인 경우 기존 2170에 비해 전기차 1대당 들어가는 배터리 개수가 600~1300개에 불과합니다. 가격효율성도 개선되고 BMS(배터리관리시스템)를 통한 관리도 쉽습니다.

무게도 2170이나 각형, 파우치형에 비해 70~80% 수준입니다. 주행거리로 따지면 20% 가량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일본-미국 치열한 기술 경쟁

46파이 최대 단점은 기술적으로 만들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건전지 크기를 키우면 그만 아니냐'는 단순한 생각과 달리 실제 양산은 기존 형태의 배터리와 차원이 다를 정도로 어렵다는게 업계관계자들의 공통적인 발언입니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으로 구성된 셀을 둘둘 말아 대형 원통형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업체가 지금까지는 양산에 실패해왔습니다.

기술적 장벽을 넘어서서 46파이를 가장 먼저 시작하는건 LG엔솔이 될 전망입니다. LG엔솔은 올해 12월부터 충북 오창 공장에서 삼원계 46파이의 양산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현재 LG엔솔은 내부적으로 4680 양산 성공을 위해 전사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특정 프로젝트에 한 부서가 참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46파이에 대해서는 여러 부서가 동시에 달려들고 있습니다. LG엔솔이 양산에 성공하면 ‘전세계 최초’ 기록을 가져가게 됩니다..

삼성SDI의 경우 내년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존 계획은 2026년이었지만, 시장 판도를 읽고 양산 계획을 1년 앞당겼습니다. SK온 역시 4680을 ‘게임 체인저’로 여기고 대표가 4680TF(태스크포스)를 직접 맡을정도입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양산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파나소닉이 46파이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파나소닉의 당초 계획은 올해안에 양산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이었는데, 수율 안정성 등을 위해 양산 시점을 내년도로 미룬 상태입니다. 계획을 미루기는 했지만 오랜기간 원통형 연구를 해온 원통형의 강자이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로서는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도 4680을 자체 생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 2분기 주주총회에서 “4680이 효율성 측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배터리 셀이 될 것”이라며 양산의도를 밝혔지만 아직까진 기술적 장벽에 막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에선 각형의 LFP(리튬인산철)를 내세워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중국 회사들의 진격을 막을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에선 CATL 등이 4680 개발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개발기간이 짧아 기술 격차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국내 업체들이 4680을 성공적으로 양산한다면 중국산 각형을 주로 쓰는 BMW, 벤츠 등의 고객사의 수주를 따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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