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로 그린 '공간 속 드로잉'…조각가 존 배, 11년만 韓 개인전

황희경 2024. 8. 3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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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품은 하나의 음표에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많은 작품이 말 그대로 하나의 점이나 선에서 시작하죠. (중략) 레너드 번스타인은 '음악은 다음 음표에 관한 것이다'라고 쓰기도 했었죠. 제 작업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어요. 다음에 올 음은 무엇일까? (중략) 마치 대화가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번째를 이어 나가면서 각각의 점들과 선들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죠."

철사 조각을 용접해 이어 붙이는 작업을 해온 재미 조각가 존 배(87)가 11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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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사용접조각 등 연대기별로 주요 작업 소개
존 배, Involution, 1974, 철, 98 x 98 x 97 cm[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제 작품은 하나의 음표에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많은 작품이 말 그대로 하나의 점이나 선에서 시작하죠. (중략) 레너드 번스타인은 '음악은 다음 음표에 관한 것이다'라고 쓰기도 했었죠. 제 작업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어요. 다음에 올 음은 무엇일까? (중략) 마치 대화가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번째를 이어 나가면서 각각의 점들과 선들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죠."

철사 조각을 용접해 이어 붙이는 작업을 해온 재미 조각가 존 배(87)가 11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진행 중인 존 배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는 초기 강철 조각을 비롯해 연대기별로 주요 철사 조각과 드로잉, 회화, 최근작까지 70여년 작가의 예술 여정을 집약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다.

존 배 '운명의 조우' 전시 전경[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간 속 드로잉'이라는 작가 표현처럼 공간에 철심으로 그림을 그린 듯한 그의 작품은 철심에서 시작한다. 구리 코팅된 가늘고 짧은 철심을 용접해 하나하나 이어 붙이다 보면 어떤 형태가 만들어진다. 완성된 형태는 사전 드로잉이나 스케치 없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전시 제목처럼 '운명처럼 완성된 형태와 조우'하는 셈이다.

지난 28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 과정을 두고 "점으로 시작해 하나하나 진행되는 점과 선의 대화에 내가 함께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완성된 형태는) 기억과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나온 것"이라면서 "용접하면서 의식적으로 작업했다기보다는 일종의 무의식이 시각화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존 배 '운명의 조우' 전시 전경[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많은 철심이 만들어낸 조각들은 대칭적이지도 않고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안과 밖의 구분도 불분명하다. 철은 일반적으로 단단함을 상징하지만, 그의 조각에서는 무거움보다는 가벼움과 운동성이 느껴진다.

"내게는 공간이 재미있는 아이디어죠. 무엇이 속(안)이고, 밖일까. 내 옆에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을까. 저 사람이 내 옆에 같이 있지만 사실은 완전히 딴 세상에 있는 것이고 서로 통할 수 있을까 그런 걸 생각했어요. SF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실재(reality)가 무엇인가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장난친 거죠."

전시에서는 196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작업의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최신작 '헤븐 앤 어스'(Heaven and Earth)는 바닥에서부터 짧은 철선을 지그재그 방식으로 쌓아 올린 작업이다. 전시는 10월20일까지.

서울에서 태어나 12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는 28살 때인 1965년 미국 뉴욕의 유명 미술학교인 프랫 인스티튜트의 최연소 교수가 돼 2000년까지 교수로 재임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구한말 순국한 의병장이었고 아버지 배민수 목사는 독립운동가이자 농민운동가였다.

재미 조각가 존 배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원로 재미 조각가 존 배(87)가 지난 28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운명의 조우'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모습. 2024.8.31.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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