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배터리 아래서 물 뿌리면 손상 ‘절반’
화재 전기차 90.6%가 국산 배터리
스프링클러 미작동이 피해 키워
특성에 걸맞은 대응법 보급해야
지난 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전기차에서 시작된 불은 8시간20분만에 진화되는 동안 주변 차량 87대를 태웠다. 아파트 480세대에 전기 공급이 끊겨 주민들이 임시 주거시설에서 생활해야하는 피해도 생겼다. 이 화재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전기차에 대한 공포를 더욱 키웠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는 등 다양한 대책들이 나왔으나 ‘전기차 포비아’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열폭주 차단 냉각이 관건
불은 탈 수 있는 가연성 물질이 처음 불을 일으키는 점화원에 의해 대기중 산소와 결합해 열과 빛을 발산하는 급격한 화학 반응이다. 자동차는 내연기관차나 전기차 모두 차를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싣고 있다. 내연기관차는 엔진 안에서 화석 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고, 전기차는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진 전기가 동력원이 된다. 이 차이는 전기차 화재가 기존 내연기관차 화재와 다른 이유가 된다.
소방청의 국가화재정보시스템과 국토교통부 통계를 종합하면, 지난해 국내 등록 자동차는 약 2595만대이고 국내에서 발생한 자동차 화재는 모두 4298건이다. 이중 전기차의 경우 약 54만대의 등록대수 중 72건(0.013%)의 화재가 있었다. 내연기관차 화재는 전체 등록대수와 화재건수로 추정해볼 수 있는데, 약 2541만대 중 4226건(0.017%)으로 볼 수 있다. 전기차의 화재 발생율이 더 높다고 말할 수는 없는 수치다. 또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화재가 난 전기차 139대 중 126대(90.6%)는 국내 배터리 3사인 엘지(LG)에너지솔루션, 에스케이(SK)온, 삼성에스디아이(SDI)의 배터리를 사용해, 중국산 배터리를 탓하기도 힘들다. 이번 청라 전기차 화재를 일으킨 벤츠 이큐이(EQE)의 경우 전세계에 3만대 이상 판매됐으나, 지금껏 화재로 큰 논란이 된 적은 없다.
전기차 화재가 내연차 화재보다 더 크고 위험할까? 2023년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화재센터의 강성욱 책임연구원 등이 영국 ‘어플라이드 에너지(Applied Ener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관련 실험 결과가 있다. 크기가 비슷한 내연기관차와 64킬로와트시(kWh) 배터리 팩을 단 전기차를 태워 나온 총 에너지를 쟀다. 전기차는 8.45~9.03기가줄(GJ)의 열이 방출됐고, 내연기관차는 8.08기가줄로 전기차 화재의 에너지가 조금 더 컸다. 전기차에서 배터리팩을 빼고 차체만 태웠을 때는 7.53기가줄이 방출됐는데, 이는 배터리팩 자체는 화재 전체 규모에서 비중이 크지는 않다는 뜻이다. 결국 어떤 자동차라도 불이 났을 때의 위험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전기차에 불나면 끄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차의 화재와 특성이 다르다. 국립소방연구원이 2023년 3월 발표한 ‘전기자동차 화재 대응 가이드’를 보면, 리튬이온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열폭주가 시작되고 전해액의 가연성 유기용매 때문에 탄화수소 계열의 가연성 가스가 분출된다. 배터리 안에서 산소까지 발생하므로 전기 불꽃 등이 일어나면 이 가스에 불이 붙으며 연소가 시작된다. 밀폐된 배터리 안에서 불이 시작되는 까닭에 기존의 분말소화기나 질식소화덮개 등은 화재 진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터리는 불이 붙은 셀이 옆으로 열을 전달하며 연속적으로 열폭주가 생기므로 이를 차단해야 한다. 실제 실험에서 불이 붙은 배터리의 온도가 섭씨 475도까지 올라갔으나, 1분가량 물을 뿌려 식히는 것으로 100도까지 온도가 떨어지며 진화가 되었다. 많은 양의 물을 퍼붓는 것으로 전기차의 불을 끌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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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러 정상 작동 15.6%뿐
이번 청라 화재의 피해가 커진 건 화재를 감지해 물을 뿌리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방청 조사로는 최초 화재 경보가 울린 후 누군가 알람을 임의로 끄는 바람에 화재 진압 시스템이 멈췄고, 다시 스프링클러를 켜려고 했을 땐 이미 소방 시스템이 망가진 뒤였다.
올해 한국화재소방학회 눈문집에 수록된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 결과도 비슷하다. 지하주차장처럼 꾸미고 좌우에 다른 차가 서 있는 상태로 전기차 화재를 발생시켰다. 배터리 팩이 모두 탔으나 현재 건축 기준에 따라 공동주택에 설치된 분당 80리터의 물을 뿜는 케이(K)80 스프링클러를 사용하니 옆 차는 도장면이 손상된 것 외에 불이 붙지는 않았다. 또 전기차 아래에서 물을 뿌리는 하부주수관창을 설치했을 때는 배터리 절반만 손상을 입어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다.
건물 실내에서 발생한 국내 자동차 화재 사례들도 이런 시험 결과와 일치한다. 2022년 대전의 대형 쇼핑몰 화재, 2023년 전남 광양의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모두 내연기관차에서 불이 시작됐는데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컸다. 반면 2023년 5월 군산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는 스프링클러 작동으로 그 차의 절반 정도만 타고 진압됐다. 전기차냐 아니냐보다 스프링클러의 정상 작동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아파트·빌라 등 공동주택의 화재 2만3401건 가운데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된 경우는 15.6%(3656건)에 불과했다. 전기차 소유주를 지하주차장에서 쫓아내기보다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안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전기차 화재에 가장 불안한 사람들은 차주들이다. 실제 불은 내연기관차에서 더 많이 나는데 전기차만 희생양 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막연한 불안감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는 구동 에너지원을 만들고 공급하는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그 동안 국내 전기차 보급 정책은 충전 인프라 등 사용성 개선에 집중됐다. 이제는 화재를 포함한 불안감에 대응할 때가 됐다. 전기차의 원리와 화재의 특성을 이해하고 비상시 실질적인 대응법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생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여러 수입차 브랜드에서 상품기획, 교육, 영업을 했다. 모든 종류의 자동차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다양한 글을 쓰고, 자동차 관련 교육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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