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창궐하는 비엔날레 [아트씽]

아트씽 기자 2024. 8. 3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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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여기, 역이(逆耳)]
전세계 대략 300개, 국내만 20여개 비엔날레
격년 국제미술제가 관광·도시마케팅으로 변질
비엔날레 운영 재하청 구조, 외국인 감독 선호
지자체장 업적쌓기 급급···'급도 안되는' 행사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사진제공=광주비엔날레
[서울경제]

지난17일 개막한 부산비엔날레에 이어 창립 30주년을 맞는 광주비엔날레가 9월 8일 개막한다. 국제적 미술 행사인 비엔날레가 같은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2개가 열린다는 것은 아무리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행사라지만 글쎄 조금, 아니 매우 과하다는 생각은 비단 필자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지구상에 비엔날레가 나라마다 도시마다 열리다 보니 이제 그 숫자를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대략 300여 개의 비엔날레가 존재하고 ‘비엔날레’의 어원이 2년이란 기간을 나타내는 라틴어 비엔니엄(Biennium)에서 유래한 걸 생각하면 매년 150개의 비엔날레가 열리는 셈이다. 따라서 지구에서는 2.5일에 하나씩 비엔날레가 개막한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림이 없을 듯하다.

우리나라도 도시 간 경쟁 그것도 문화예술이라면 무엇이 문화요 예술인가에 대한 정의나 고민도 없이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이 ‘문화’가 된 지 오래라, 비엔날레만 해도 규모는 차이가 있지만 그 숫자가 물경 20여 개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광주비엔날레(1995년·이하 창설연도)를 시작으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1997년), 청주공예비엔날레(1999년),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2000년·'미디어 시티 서울'의 명칭 변경),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2000년), 경기 도자비엔날레(2001년),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2001년), 부산비엔날레(2002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2004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2005년), 대구사진비엔날레(2006년),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2007년, 이후 2011년 폐지), 창원조각비엔날레(2012년), 제주비엔날레(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2017년), 전남 수묵비엔날레(2018년)등이 있다. 2024년 처음 열릴 예정인 대구 수성구의 수성국제비엔날레(2024년)가 있고, 부산의 민간에서 제목은 소박하지만, 비엔날레라는 명칭을 가진 제1회 한·일 작은 사진 비엔날레(2024년)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중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는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라는 이름으로 아트페어 등 정기적인 지역미술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외에도 해인 아트 프로젝트(2013년). 지리산프로젝트(2014년) 등등 비엔날레 형식의 행사들이 여러 곳에서 열렸다 사라지는 것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강원키즈트리엔날레 포스터

비엔날레에 대한 사랑은 강원도의 경우 2018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만든 강원국제비엔날레를 이듬해 강원국제예술제로 바꾸더니 2020년 강원키즈트리엔날레를 개최하고 이어 2021년 강원국제트리엔날레를 열었다. 트리엔날레라고 하더니 3년 마다가 아닌 매년 열리는 것이다. ‘가든’이란 말이 한국에서 ‘야외에 있는 규모가 큰 식당’이 된 것처럼 비엔날레란 말도 원래 의미는 사라지고 제멋대로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충남 보령시에서 2027년 ‘섬 비엔날레’를 개최할 목적으로 조직위원회가 출범했다는 소식이다. 제주가 섬을 주제로 비엔날레를 계획했던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1회 섬 비엔날레는 2027년 4~5월 보령시 원산도와 고대도에서 진행될 예정이라는데 충남도와 보령시는 각 섬의 특징을 살려 30여 개국 18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와 함께 해상공연, 해안 트레킹, 섬 음식 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제 비엔날레는 ‘매 2년 마다 열리는 국제적인 동시대 미술제’가 아니라 미술전시를 빙자한 문화관광엑스포로 변질되는 모양새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포스터
루틴날레(Routinale)

미술 행사인 비엔날레가 관광이나 도시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그 성격이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비엔날레란 1981년 여의도에서 열렸던 ‘국풍 ’81’의 또 다른 말이 되었고 정부와 도시가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하면서 비엔날레는 문화적 목적이 아니라 도시를 홍보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며,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도구가 되었다. 물론 에슬링겐(Esslingen)이나 펠바흐(Fellbach), 브리스번(Brisbane)이나 손스비크(Sonsbeek) 같은 도시와 부산의 경우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들이 비엔날레를 통해 국제적 인지도를 얻었다는 평가는 이런 일을 부추기는 동기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법 규모가 있고 예산과 조직도 갖춘 광주나 부산비엔날레는 물론 여타의 비엔날레가 매회 주제가 바뀌고 예술감독이 새로 임명되지만, 전혀 새로울 것 없이 25년~30년간 동시대 미술의 가장 일반적인 화두인 젠더, LGBTQ, 노동, 이주, 난민, 페미니즘과 생태주의운동, 기후, 환경, 전쟁, 분쟁, 인종차별로 국내외 비엔날레의 내용은 대등소이하다. 또 이런 주제를 담아내는 비엔날레의 형식도 크게 변함이 없다. 시대와 내용이 바뀌면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도 변화해야 할 텐데, 그것도 기존의 그대로이다.

2024 부산비엔날레 포스터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베니스 비엔날레도 1993년 청년작가들의 새로운 미술운동을 담아내고자 아페르토(Aperto) 전을 마련해 ‘비상’(Emergency /Emergenze)이란 전시를 마련했다. 주제를 정해 작가를 섭외하는 대신 작가들의 작업을 13개의 종류로 구분해 각기 다른 작품의 뿌리를 보여주며 세계화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다양한 과정과 장면, 관점의 공존, 공생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시각예술을 사고하고 비판하는 방식의 파편화를 강조한 이 전시는 전시제작의 역사를 ‘편집형’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이런 유형이 일반화되자 1997년 쟝 클레르(Jean Clair·1940~) 감독은 이를 폐지한다. 이후 국가관 중심의 전시와 병행해 예술감독이 특정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이렇게 비엔날레는 허세 섞인 미적 주제에 전념하기보다는 국제적으로 문화적인 실제 문제를 토론하고 전시로 다루어야 한다.

우리나라 비엔날레 운영은 원청과 하도급, 재하청의 형태다. 전시감독이 선임되면 이후 부문별 또는 특별전이란 이름으로 ‘큐레이터’들을 두어 이들에게 다음을 맡긴다. ‘ㅇㅇ비엔날레 큐레이터’란 경력이 필요한 나이 어린 경험없는 큐레이터들이 최저임금도 안되는 월 100만원의 인건비에도 기꺼이 몸을 던진다. 그리고 실제 업무는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참여한 운송업체가 출품작품 입·출고와 설치 기타 등등을 맡아 처리하고, 공간구성과 전시 그래픽, 도록제작 등은 또 다른 업체가, 홍보는 지역의 작은 홍보대행사가 처리한다. 또 주요비엔날레는 한국 물정을 모르는 외국인 감독을 선호한다. 그래서 주제는 겉돌고, 행사는 총괄할 수 없다. 감독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재단이나 사무국이 모든 것을 쥐락펴락한다. 한국의 비엔날레가 우리나라 큐레이터를 배척하고 외국인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비엔날레를 조직 운영하는 재단이나 사무국은 예산을 관리한다. 전시실행에 관한 실무는 해 본 적이 없으니 대행사를 지휘하고 감독할 능력도 갖출 수 없는 형편임에도 말이다.

사실 재단 또는 사무국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간파하는 능력 외에도 이를 어떻게 전시로 구현해 낼지에 대한 통찰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비엔날레에 대한 기능과 역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동네인사들에게 조직위원 또는 운영위원을 맡기고, 이들이 감독을 선임하는 구조이니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전남수묵비엔날레 포스터
비(非)엔날레

오늘날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는 수백 개의 비엔날레는 서로 예술을 상자 밖으로 꺼내 새로운 맥락에 놓고 새로운 관객에게 다가가는 중요한 형식 또는 장치다. 하지만 이런 사전적 원칙에 충실한 비엔날레는 점점 자리를 잃고 있다. 이제 비엔날레는 미술전뿐만 아니라 축제와 컨퍼런스에도 쓰인다. ‘비엔날레’는 포괄적으로 광범위하고 이질적인 시각예술 전시, 또는 더 광범위하게 시각예술 이벤트까지 포함하며 선을 넘어선다. 오늘날 비엔날레는 동시대 전시제작의 핵심 지표이자 원동력 중 하나로 떠올라, 동시대 미술의 관객개발뿐 아니라, 우리에게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바로 그 조건을 열어준다지만 이는 소수의 설정된 경향(Trend)과 많은 취향의 함정에 대중을 끌어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세기 박물관과 미술관이 우리가 예술을 접근하고, 소비하는 매개였다면, 오늘날 비엔날레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과 예술적 실천이 소개되는 ‘매체’다. 비엔날레는 미술관이 제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실험적인 미술의 탄생을 위한 장치로 나타났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적으로 매년 150여개의 비엔날레가 열리면서 익숙해졌다. 지금은 비엔날레를 본 적 없는 이에게조차 비엔날레는 익숙한 말이 되었다.

2022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포스터

이렇게 비엔날레의 탄생에는 제대로 된 미술관 활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대미술에 대한 수용 과정에서 일반적이며 통상적인 미술관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그리고 이런 전시를 제공해 본 적 없는 도시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것은 ‘걷지도 못하면서 뛰겠다’고 하는 꼴이다. 아무리 비엔날레가 전문적인 미술계 행사가 아니라 국가나 지방 정부 또는 기관의 지원을 받는 문화관광자원이 되었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비엔날레로서의 원칙을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다. 비엔날레가 마케팅을 통해 감정적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문화적 행사보다 ‘감동적인 경험’을 강조하며 ‘화려함과 황홀함’으로 관객을 유혹 교활한 주최 측의 관광상품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나라에서 비엔날레는 국제기구의 인증이 필요한 엑스포나 올림픽과 달리 임의로 국제행사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과 자치단체장들의 문화적 예술적 업적의 포장을 위한 포장재로 그리고 지역작가를 국제적인 ‘비엔날레 작가’로 승급시킬 기회로 이용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단체장과 지역미술인들이 암묵적으로 비엔날레 창설에 뜻을 모으는 것도, ‘급도 안되는’ 비엔날레가 창궐하는 이유이다. 이는 요즘 열리는 지방의 아트페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20여 개의 비엔날레를 개최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비엔날레 1개에 평균 50억만 잡아도, 1,000억에 이른다. 1,000억이면 동시대미술을 포괄하는 미술관을 10년 이내에 만들어 낼 수 있는 돈이다. 우리는 2년마다 이런 미술관 1개를 날리는 셈이다. 비엔날레가 현재 20여개 이르다 보니 ‘현대미술 관련 전문성을 갖추고 5년 이내에 미술국제전시를 책임 기획한 경험이 있는 이로, 국제적 네트워킹에 기여할 수 있고, 행사의 목적에 맞는 전시 운영과 홍보 소통 역량이 갖춘 이’를 구하지 못해 지역마다 난리다. 예술감독이 곧 비엔날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람 키우는 일보다 편한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는 기존비엔날레의 행태 때문에 비엔날레는 넘쳐나지만 ‘누구나 열지만 잘하는 곳은 한 곳도 없는’것이다. 어떤 비엔날레는 감독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고민이라지만 어쭙잖은 비엔날레로 개최도시의 이미지를 훼손시킬 바에는 과감하게 없애는 것이 되려, 업적이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존의 비엔날레를 폐지하는 결기 있는 지자체장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지금처럼 비(非)엔날레가 횡행하다 진짜 비엔날레마저 설 자리가 없을까 두렵다.

▶▶필자 정준모는 미술평론가이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KAAAI) 대표다. 동숭아트센터와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시작해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과 전시부장을 맡았다. 이후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장수 학예실장을 역임하며 근현대미술의 중요한 전시들을 기획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시 공예박물관 등 국내 여러 미술관 및 문화기관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한 행정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미술품 감정및 미술비평, 저술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아트씽 기자 artseei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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