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일용직…폭염은 왜 약자들에게 더 가혹할까
노동부는 ‘물, 그늘, 휴식’ 예방수칙만 강조…정책 세분화 필요성
[주간경향] 지난 8월 2일 경북 포항시 북구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장 확장 작업을 하던 노동자 A씨(35)가 쓰러졌다. 오전 11시 50분쯤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당시 포항시의 낮 최고기온은 37.7도였다.
일주일 뒤인 지난 8월 9일, 전남 여수의 GS칼텍스 공장에서는 공장 정비 사전 작업을 하던 노동자 B씨(58)가 숨졌다. 일이 끝난 뒤에도 B씨가 보이지 않자 경찰이 출동했고 이날 오후 5시쯤 심정지 상태로 외딴곳에 쓰러져 있는 B씨를 발견했다. 이날 여수의 낮 최고기온은 33.2도였다.
나흘 뒤인 8월 13일에는 충남 예산군 오가면에서 감자 분류 작업을 하던 태국 국적의 노동자 C씨(49)가 쓰러졌다. 오후 4시쯤부터 기운이 없다며 쉬었는데, 이내 쓰러져 오후 4시 43분 동료가 119에 신고했다. 오후 5시쯤 소방대원이 도착했을 때 C씨의 체온은 40도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의식을 찾지 못했고 체온은 41.7도까지 올랐다.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지난 8월 18일 사망했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인은 열사병이었다. C씨가 쓰러진 날 예산의 낮 최고기온은 34도였다.
폭염은 무차별적이다. 나이를 가리지 않고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평등한 재난은 아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부수적 피해>에서 “우리는 자연재해가 어느 정도 공평하고 무작위적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 위험한 처지에 놓인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실상이다”라고 했다. 온열질환으로 추정되는 사망 사례들을 들춰보면 무차별적이면서도 불평등한 폭염의 두 얼굴이 보인다.
폭염의 두 얼굴
A씨는 공사 현장에서 측량 보조 일을 했다. 그늘 한 점 없는 골프장 한복판에서 뙤약볕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일용직 노동자로 용역업체를 통해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B씨 역시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였다. 정비를 앞두고 사전작업을 위해 비계(건설공사 등에서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발판)에 올라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늘 없는 높은 곳에서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일해야 했다.
C씨도 일당을 받고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로, 쓰러진 현장에서는 그날 단 하루 일했다. C씨는 2019년 관광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뒤, 내리 5년을 머문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도 친구의 소개로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재신청은 할 수 없었다. 한국에는 가족이 없고 태국에 있는 가족은 한국에 입국할 처지가 못 됐다. 주한 태국대사관은 그의 유해를 화장한 후 태국의 가족에게 보냈다.
이들이 모두 일용직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위험하고 힘든 일이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맡겨지는 ‘위험의 외주화’는 폭염과 같은 재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뜨거운 날씨에 냉방장치 없이 햇볕에 고스란히 노출돼야 하는 일은 취약한 노동자의 몫이 된다. 이들 노동자는 더 적은 돈을 받고 더 오래 일하며, 작업 전 안전보건 교육은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용형태는 온열질환을 일으키는 핵심 변수일 수 있다. 일용직 등 불안정 노동자는 일터의 더위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새로운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몸이 더위에 적응하지 못하면 온열질환에 이를 가능성이 커진다는 해외 연구들이 있다. 미국에서 수행된 한 연구(쉴라 아버리·2014)에 따르면 온열질환 사망 사고의 절반가량은 노동자가 일을 시작한 첫날에 발생했다. 2011~2016년 사이 미국의 온열질환 사망 사례를 조사한 또 다른 연구(애런 투스틴·2018)에서도 사망 사고의 73%는 노동자가 근무를 시작한 첫 주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노동부 산하 직업안전보건청(OSHA)이 온열질환 대책의 첫머리에 ‘물, 그늘, 휴식’이 아닌, ‘신입 노동자 보호’를 놓는 것은 이 때문이다. OSHA는 노동자의 몸이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더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더위에 적응되면 몸이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얘기다. 일단 적응된 노동자는 신입보다 많은 땀을 흘려 체온을 적절하게 조절한다. 그러면서도 땀 속에 포함된 염분은 적어 몸속의 전해질 균형이 유지되고, 일하면서 심박수가 크게 상승하지도 않는다. 반면 생소한 환경에 던져진 신입은 염분이 많이 포함된 땀을 비효율적으로 흘리고, 일할 때마다 심박수가 크게 상승한다고 한다. OSHA는 ‘20% 법칙’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신입 노동자가 일을 시작한 첫날에는 정규 노동시간의 20%만큼 일하고, 힘들어하지 않는다면 그다음 날부터 노동시간을 20%포인트씩 늘려가는 방식이다. 하루 노동시간이 8시간이라면 한여름에 근무를 시작하는 신입은 첫날에 대략 1시간 40분까지만 일할 수 있다.
왜 사고는 신입들에게만 일어나나
만연한 온열질환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정책 실패의 결과물일 수 있다. 폭염 기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매년 적잖은 수의 온열질환 사망 사례가 발생하고 있지만 고용노동부는 몇해째 ‘물, 그늘, 휴식’이라는 3대 예방 수칙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올여름의 사망 사례들은 근속 기간, 고용형태 등 더 세분화된 정책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지난 8월 13일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에어컨을 설치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양준혁씨(27)가 쓰러졌다. 유족과 노무사가 학교 측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양씨는 당일 오후 4시 40분쯤부터 구토를 하고 주변을 비틀거리며 배회하는 등 온열질환 증상을 보였다. 사고 당일 장성의 낮 최고기온은 34.4도였다.
양준혁씨는 일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사고를 당했다. OSHA의 신입 노동자 보호 기준으로 보면, 해당 현장의 일하는 방식은 하나부터 열까지 잘못됐다. 일단 신입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기는커녕 일반적인 노동시간보다 길게 일을 시켰다. 근무 첫날 양씨는 오전 7시 45분 일을 시작해 저녁 7시 40분까지 12시간가량을 일터에서 보냈다. 이튿날도 오전 6시 30분쯤 집을 나서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했다. 몸이 더위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부하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
온열질환은 관리자부터 현장 노동자까지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야 예방할 수 있다. 예컨대 OSHA는 신입 노동자에게 온열질환 증상 등을 교육할 것, 신입의 증상 발현 여부를 관찰하기 위해 2인1조로 작업할 것을 권고한다. 또 신입이 온열질환 증상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작업을 멈추고 응급조치를 시작하며, 증상을 보이는 신입을 절대 혼자 두지 말라고 안내한다. 양준혁씨에게는 이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양씨는 새로운 직장에서 폭염에 대비한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서류 미비 등의 이유로 사고 당일까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못했다. 온열질환에 대한 현장의 이해도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양씨는 작업 중 머리를 식히는 쿨링모자를 써도 되는지 물었는데 ‘남들도 안 하는데 쓰지 마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더 심각한 것은 양씨가 분명한 증상을 보이는데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이를 방치했다는 점이다. 양씨가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지 30분 만인 오후 5시 9분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화단에 쓰러졌다. 그 무렵 하청업체 관계자는 양씨의 어머니에게 전화해 ‘정신질환이 있느냐.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니 데리고 가라’고 했다. 증상을 보인 지 50분 만인 오후 5시 30분쯤에야 119에 신고했고, 그 사이 양씨는 응급처치도 받지 못한 채 뙤약볕 아래 방치됐다. 양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당시 체온은 측정 불가였고, 사후 몇 시간이 지나 안치실에서야 측정할 수 있었는데 40도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 없는 정책이 피해자 책임 전가로
정부가 온열질환에 대응해야 할 사용자의 의무와 구체적인 기준을 빈칸으로 남겨놓으면 책임은 쉽게 개인에게 전가된다. 양씨의 어머니는 “장례식장에 하청업체 관계자가 와서 ‘아이가 평상시 물을 많이 먹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그렇게 된 것처럼 말을 해서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OSHA의 기준에 비출 때는 업체의 명백한 의무 방기에 해당하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기준이 없으니 사용자가 거리낌 없이 개인 탓을 한다.
OSHA가 말하는 신입 노동자는 이제 막 입사한 노동자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기존에 일하고 있던 노동자라도 육체노동 강도가 증가하는 등 업무환경이 바뀌었거나, 장기 휴가에서 복귀했다면 신입 노동자와 동등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8월 5일 저녁 7시 30분쯤 전북 무주우체국에서 우편팀장으로 일하던 D씨(48)가 호흡 곤란과 경련 증상을 보였다. 관사에서 함께 지내던 동료가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크게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행정직과 장시간 외근을 하는 집배원으로 나뉜다. 그런데 택배 수요가 늘면서 이제는 행정직 공무원들이 창구 접수 뿐만 아니라 집마다 찾아가 방문 접수도 해야 한다. 우체국의 규모가 작을수록 이런 현상은 심화한다. 업무분장에 명기된 우편팀장 D씨의 업무는 ‘인사, 산업안전, 경영평가, 노사’ 등 전반적인 관리지만, 실제로는 틈틈이 외근을 나가 택배 방문 접수도 해야 했다.
D씨가 쓰러진 날, 업무는 평소보다 과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일은 무주우체국과 무주군청이 지난 6월 체결한 ‘농특산물 전자상거래 활성화’ 업무협약에 따라 농산물이 처음으로 출하된 날이었다. 평소보다 업무량이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날 D씨는 탑차를 타고 업체로 가서 오후 4시 30분쯤 복숭아 약 200상자를 차에 싣고,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와 오후 5시 30분부터 약 20분간 이를 팔레트에 내려놓았다. 당시 혼잣말처럼 “오늘 좀 힘들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후 6시 30분에는 사무실에서 책상을 정리하면서 동료에게 “내가 더위를 먹었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정사업본부의 상급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노조의 김황현 교섭실장은 “인력난에도 소포 사업 확장 정책을 성심껏 수행하다가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아무도 책임 있는 사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개인의 건강관리 문제로 치부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과소 통계로, 폭염 위험도 과소평가
온열질환 대응에 있어 정부가 난맥을 보이는 또 다른 문제는 온열질환자 통계다. 현재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 통계는 질병관리청이 매일 발표한다. 전국의 응급실 500여곳에서 사인을 열사병으로 판단하면 이를 질병청에 신고할 수 있다. 전수조사가 아닌 데다, 의료종사자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대고 있기에 과소 집계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최악의 폭염이 덮친 2018년 질병청이 발표한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48명이었는데, 이듬해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2018년 온열질환 사망자 수는 170명에 달했다.
과소 집계된 통계는 사회가 폭염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들 수 있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폭염의 집계 방식에 대한 학계의 논쟁을 기사로 다뤘다. 첫 번째 방식은 폭염 기간에 열사병 등 확실한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이들만 집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심장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폭염 영향으로 사망한 이들은 제외된다. 두 번째 방식은 폭염 기간에 한정해 예년의 사망자 수를 상회하는 초과 사망자 모두를 폭염 영향으로 인한 사망자로 집계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폭염 기간에 누적된 건강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첫 번째에 가깝다. 사이언스는 2018년 온열질환으로 48명이 사망했다는 한국의 통계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확실히 과소평가됐다”고 했다.
이 같은 집계 방식으로 국내에서는 폭염기 노동현장에서 사망한 경우라도 온열질환을 사인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지난 8월 14일 오전 6시 30분쯤 경북 영양군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베트남 국적의 일용직 노동자 E씨(50대)가 쓰러져 사망했다. 소방과 의료진은 온열질환이 아닌 지병의 악화를 직접적인 사인으로 봤다. 담당 소방서 관계자는 “온열질환으로 안 잡았다. 새벽에 쓰러졌는데 그때는 덥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열대야를 동반한 폭염기에는 밤과 새벽에도 온열질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 지난 8월 25일까지 질병청에 신고된 올해 온열질환자 수는 3191명인데,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새벽 6시 사이에 발생한 경우는 327명으로 10.2%를 차지했다.
온열질환 인정에 인색한 집계 방식은 쓰러진 노동자의 산재 인정 과정에서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양준혁씨의 사건을 대리하는 박영민 노무사는 “양씨는 쓰러진 당시 체온이 측정을 못 할 정도로 고온이었다는 점에서 열사병이 직접적인 사인이라는 것이 명확한 경우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고령의 노동자들이 쓰러진 경우에는 고령이나 지병을 사인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아 온열질환이나 산재를 인정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쿠웨이트의 폭염기 산업재해를 조사한 한 해외 연구(바라크 알라흐마드·2023)를 보면, 현장의 기온이 높아지고 열 노출이 증가할 때마다 노동자의 온열질환 발병률뿐 아니라 추락 등 외상성 부상 위험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에 미치는 폭염의 영향을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하는 이유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응급실 상황이 워낙 정신 없어서 의료진들이 세세하게 온열질환 여부를 점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아주 명백한 경우만 온열질환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질병청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로는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신고를 해야 하는 데다, 따로 인센티브도 없어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갈수록 온열질환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확실한 온열질환인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한 줌에 불과하고, 만성질환자나 노인이 폭염에 노출돼 사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온열질환 수를 더 정확히 파악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더위가 심해질 때 예년보다 늘어난 사망자 수를 관찰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의 경우 여름철에 사망자 수를 질환과 사고로만 구분해 발표하고 있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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