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뒤처진 기술 수준…'R&D 효율성' 떨어뜨린 숨은 이유 [스프]

안혜민 기자 2024. 8. 3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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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뉴스] 데이터로 보는 R&D 2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환경도 놓칠 수 없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1편
[ https://premium.sbs.co.kr/article/vcXy-d7Pn7Q ]
에서는 2024 대한민국 R&D 예산 상황을 데이터로 살펴봤습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GDP 대비 R&D 투자 비율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한민국 R&D 예산 투자는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투자 대비 산출량이 적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네이처에서 발표한 대한민국 연구 성과는 세계 8위이고, WIPO(세계지식재산권기구)의 글로벌 혁신지수는 10위로, 투자 대비 아주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진 않고 있죠.

1편에서는 R&D 사업의 효율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예산 편성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예산 편성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R&D 예산은 중장기적 방향에 따라 집행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예산 외에 또 다른 문제점이 있는걸까요? 2편에서는 우리나라 R&D 사업의 효율성을 갉아먹는 또 다른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R&D 효율성 떨어뜨리는 30년 된 제도

1996년 도입된 연구과제중심제도(PBS, Project-Based System)는 우리나라 R&D 예산 운용의 핵심 제도입니다. 1980년대, 각 부처는 R&D를 강화하기 위해 부처 산하의 연구원을 우후죽순 만들었습니다. 부처별로 따로 연구원을 두다 보니 같은 업무를 A 부처의 연구원에서도 진행하고, 또 다른 부처의 연구원에서도 진행하는 등 비효율성이 늘어났죠. 그래서 등장한 PBS는 연구자나 연구기관이 경쟁을 통해서 과제를 수주할 수 있도록 했어요. 도입 초반엔 효율성을 높이는 등 좋은 효과를 냈었죠.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연구과제와 연구비 수주 경쟁이 과열되었다는 겁니다. 연구에 몰두해야 할 연구진들이 사업비를 따내기 위한 경쟁에만 매달리게 되면서 연구의 질이 떨어지는 상황이 이어진 거죠.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기보다는 과제 한두 개만 맡아서 기준만 맞추는 성과만 내는 문화가 형성되어 버린 겁니다. "기준만 맞추면 된다"는 생각으로 성과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다 보니 국가 R&D 과제 성공률은 연평균 99%를 상회하는 기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큰 연구로 진행되어야 할 연구개발 사업이 파편화되는 현상도 큰 문제입니다. R&D 예산이 늘어난 만큼 당연히 사업, 과제당 연구비도 많이 늘어났겠다 싶겠지만 데이터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아요. 마부뉴스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자료를 바탕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서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분석해 봤습니다. 출연연은 정부의 돈이 지원되는 연구기관을 뜻합니다. 출연연은 크게 두 영역이 있는데, 경제·인문·사회 영역과 과학·기술 영역으로 나뉩니다. 그중 과학과 기술 영역을 담당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데이터를 살펴볼게요.

2016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연구기관에 지원된 예산은 3조 9,097억 원이었습니다. 2022년엔 그 액수가 4조 9,219억 원으로 늘었죠. 예산뿐 아니라 할당된 과제도 늘어났습니다. 2016년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수행한 과제는 3,215개였는데, 2022년엔 4,290개로 1,000개 넘게 증가했어요. 그렇다면 R&D 과제당 평균 연구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예산이 늘어난 만큼 과제가 늘어나면서 과제당 평균 연구비는 도리어 감소했습니다.
 

대학은 대학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PBS로 연구비 수주 경쟁이 늘어나면서 서로 다른 팀과 협력하는 대신 개인 중심의 연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도 국내 R&D의 약점 중 하나입니다. 서로 다른 영역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연구가 진행된다면 시너지를 낼 텐데 말이죠. 이러한 분위기는 학계 내에서만 그치는 게 아닙니다. 대학은 대학대로, 또 기업은 기업대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연구가 실제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연계가 부족한 상황이죠.


산업계와 학계 사이의 경직된 모습은 과학기술 인재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네이처에서는 전 세계 연구 인재 DB를 관리하고 있는 League of Scholars 데이터를 활용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학계와 산업계 사이에서 연구 인력이 얼마나 오고 갔는지 분석해 봤습니다. 23개국을 대상으로 그래프를 그렸고, X축은 학계에서 산업계로 이동한 건수(1,000명 당)이고 Y축은 반대로 산업계에서 학계로 이동한 경우를 나타내죠.

지난 4년간 우리나라는 학계에서 산업계로 이동한 건 1,000명 당 6건으로 23개국 평균 7.1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 학계로 이동한 건 1,000명 당 0.8건으로 상당히 낮아요. 평균 2.5건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죠. 우리나라보다 더 낮은 건수를 기록한 나라는 6개국뿐입니다. 네이처에서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근 우리나라의 산업계와 학계 두 부문 사이의 이동성이 많이 경직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학계와 산업계 사이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경직된 학계의 분위기를 먼저 깨뜨려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기업과 학계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선 산업계 인력도 학계에 적극적으로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나아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서 대학에서 운영하는 직무교육도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사이, 대한민국 중요 과학기술 수준은 중국에 뒤처져

이번 정부의 급격한 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예측불가능성이 늘어났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PBS 정책은 여전히 변화가 없습니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서 자연과학계열이 아닌 의학계열로 인재가 더 쏠릴 가능성도 높아진 상황에다가,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인재들도 늘어나면서 대한민국 R&D는 쉽지 않은 환경에 놓여있죠.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 국가들은 점점 더 R&D 투자를 늘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는 사이 대한민국 중요 과학기술의 수준이 중국에 뒤처졌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혜민 기자 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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