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 매력 무시무시…불편하고 무거워도 열 보존율 높아 캠핑요리에 딱[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

기자 2024. 8. 3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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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묵직한 취향, 무쇠팬 요리

한 사람을 파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주방을 구성하는 조리 도구도 그중 하나다. 보통 한 음식 문화권 내에서는 식탁을 차리는 구성이 비슷한 만큼 냄비에서 프라이팬, 그릇과 접시까지 주방을 이루는 기자재에서 유사한 규칙성이 엿보인다. 만일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을 우리 주방에 밀어 넣고 고향의 전통 음식을 조리하라고 하면 주방 세팅에 적응하기까지 약간의 혼란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그에 비하면 찌개에 어울리는 냄비는 무엇이고 나물은 어느 정도 크기의 그릇에 담아야 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는 우리는 지인의 주방에 들어가더라도 곧잘 손을 빌려줄 수 있다.

그래야 할 터다. 하지만 나름의 고집으로 저마다의 주방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사소한 차이도 민감하게 감지한다. 어떤 집에 가면 프라이팬이 온통 스테인리스 스틸이라 달걀프라이를 하나 해 먹고 싶었을 뿐인 사람을 눈물짓게 하기도 하고, 전기밥솥으로만 밥을 하던 사람은 냄비 하나만 주어지면 어쩔 도리를 모른다. 모든 냄비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스토리가 있지는 않더라도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내 손이 자주 가는 팬이 있기 마련이고, 적어도 본인에게는 그것을 택하는 확고한 논리가 있다.

캠핑의 주방도 비록 매번 해체와 재조립을 반복하기는 하나 주방은 주방이라, 그 구성에는 저마다의 취향이 확고하게 반영되어 있다. 백패킹에 쏙 들어가는 단출하면서 정말 소꿉놀이 같은 재미를 배가시키는 미니멀 주방에서 중국집을 연상케 하는 화력을 자랑하는 화구와 화로까지 실로 다채롭다. 물론 취향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을 할 필요는 있다. 가령 내 눈에는 항상 1인용 반합과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손바닥만 한 조립식 스토브가 들어오지만 가족과 함께 캠핑카로 쏘다니는 입장에는 어울리지 않아 반려한다. 하지만 캠핑을 하게 되어 진정으로 신나게 활용하는 취향 저격 팬이 있으니, 바로 묵직한 쇳덩어리, 무쇠팬이다.

라푼젤의 무기…손목 건강 위협하지만

디즈니가 각색한 영화 <라푼젤>을 보면 주인공이 탑에 기어들어 온 도둑을 프라이팬으로 가격해 기절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상당히 효과적이었는지 이후로도 라푼젤의 프라이팬은 내내 등장하며 위기 상황에서 둔기로 활약한다. 실제로 주방에서 집어올 수 있는 무기 중에 동화 속에 등장시켜도 좋을 만한 것으로는 프라이팬이 제격일 것이다. 손잡이가 있고, 휘둘러서 가격하여 충격을 입히기에 좋다.

그런데 라푼젤이 들고 다니는 프라이팬을 잘 보면 가벼운 코팅팬이나 은색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이 아니다. 검은색에 둔탁한 윤기를 띠는 무쇠팬이다. 시대상을 반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 무쇠팬은 주형틀에 쇳물을 부어서 만들어 손잡이까지 일체형인 쇳덩어리다. 저런 프라이팬을 힘껏 휘두를 수 있는 라푼젤의 근력에 감탄하는 한편 무쇠로 머리를 제대로 여러 번 맞고도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상대방도 그저 대단할 따름이다.

프라이팬에서 냄비, 빵틀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는 무쇠팬을 사이즈별로 네 개, 그리고 크레페용 납작팬과 뚜껑 달린 냄비인 더치 오븐까지 추가로 가지고 있어도 집에서 원하는 만큼 무쇠팬을 자주 꺼내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무게 때문이다. 내용물을 가득 채우면 작은 오븐의 선반은 무게를 버티기에 살짝 위험할 때도 있고, 데일리로 사용하기에는 내 손목의 건강이 위협을 받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쇠팬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까. 시크한 블랙 컬러? 자연 속에도 도심 속에도 어울리는 끝내주는 ‘사진발’? 물론 그것도 좋다. 무쇠팬에서 익어가는 모둠전만큼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도 없으니까. 하지만 무쇠팬의 장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손잡이까지 쇳덩어리라 당연히 직화가 가능하고 오븐에 넣어도 끄떡없으며, 열 보존율이 좋아서 일단 달구고 나면 스테이크며 양파를 멋지게 노릇노릇하게 굽기에 이만한 팬이 없고, 코팅이 벗겨지면 버려야 하는 코팅팬과 달리 관리만 잘하면 대대로 물려주는 가보 프라이팬이 되는 것도 농담이 아니다.

삼겹살부터 솥밥까지 ‘노릇노릇’
바싹 말리지 않으면 금방 녹슬어
산성 재료 조리 땐 ‘쇠맛’ 단점도
시크한 블랙 컬러 ‘사진발’ 좋아
코팅팬과 달리 대대로 사용 가능

캠핑에서 무쇠팬을 써야 하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저 열 보존율이다. 천천히 예열해서 전체적으로 뜨겁게 달군 다음 삼겹살을 넣어보자. 세상 만족스러운 치이이익 소리가 난다. 워낙 뜨거우니까 식재료를 넣는다고 식지 않고 멋지게 노릇노릇한 크러스트를 만들어낸다. 노릇노릇이란 마이야르 반응, 그것이 빚어내는 바로 감칠맛이다. 무쇠팬에 구운 고기만큼 맛있는 건 없다는 뜻이다.

고기뿐일까? 우리는 전의 민족이다. 기름을 잔뜩 둘러서 지글지글 김치전이며 해물파전을 부치면 환상적인 ‘겉바속촉’의 질감이 막걸리를 부른다. 여기에 닭갈비를 굽고, 남은 양념에 밥을 넣어서 볶음밥을 지졌다면? 말도 안 되게 바삭한 누룽지가 생긴다. 정말로 노릇노릇에 있어서는 무쇠팬을 따라올 자가 없다.

물론 단점도 있다. 앞서 말한 무게는 물론이고 손잡이까지 달궈지니까 일단 불에 올리면 따로 장갑이나 손잡이 커버를 써야 화상을 입지 않는다. 또한 토마토 스튜 같은 산성 재료를 넣고 너무 오래 끓이면 ‘쇠맛’이 난다. 그리고 가장 큰 단점은 관리법인데, 세척하고 바로 물기를 제거해서 바짝 말리지 않으면 반드시 녹이 슨다.

흔히 무쇠팬에 대해서 가장 크게 오해하는 부분이 ‘세제나 비눗물로 씻으면 안 된다’인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무쇠팬에 음식이 달라붙지 않게 길들이는 과정을 시즈닝(seasoning)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기름으로 하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다. 기름을 바르고 가열하면 플라스틱과 비슷한 구조로 변형되며 무쇠팬이 코팅된다. 세제로 씻어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며, 오히려 세제를 쓰지 않으면 이물질이 남아 코팅을 망가뜨리게 된다. 마음 놓고 비눗물로 박박 씻어도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무쇠팬을 씻고 나서 그대로 마르겠거니 하면 반드시 녹이 슨다. 정말 하룻밤만에도, 물이 한 방울만 남아 있어도 녹이 슨다. 그러니 사용한 후에는 깨끗하게 씻은 다음 물기를 싹 닦고 불에 살짝 달궈서 말리도록 하자. 내버려 두면 마르는 팬에 비해 확실히 귀찮고 손이 간다. 그럼에도 고기와 전이 환상적으로 구워지는 데다 예쁘고 아름다우니 역시 무쇠팬을 포기할 수가 없다.

재료만 있으면 알밥도 5분 만에 뚝딱

고기를 너무 잘 구워서 고기 이야기만 했지만, 무쇠팬은 밥도 잘한다. 무쇠 냄비는 특히 솥밥 영역에서도 환상적인 누룽지를 보여주며 대활약한다. 밥을 직접 짓지 않더라도 그 노릇함을 즐기고 싶다면 냄비 없이도 가능한 무쇠 프라이팬 알밥을 만들어보자. 직접 만들면 날치알을 비롯한 모든 재료를 원하는 만큼 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단 차가운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밥을 넓게 펴 담는다. 그리고 잘게 다져서 각각 양념한 맛살과 단무지, 오이, 김치를 예쁘게 얹는다. 가운데에 날치알을 듬뿍 올린 다음 불에 올려서 따닥따닥 소리가 나며 바닥에 누룽지가 생길 때까지 가열한다. 김 가루와 소스를 취향대로 넣고 비벼서 먹으면 완성! 집에서 모든 재료를 손질해 오면 정말 5분 만에 차릴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비비는 동안에도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나는 것이 입맛을 당기게 하는, 무쇠팬이라 가능한 캠핑의 프라이팬 식사를 즐겨 보자.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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