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티켓의 경제학 그리고 심리학 [권상집의 논전(論戰)]
영화관, 꿈을 공유하는 심리적 공간…관객은 호구 아냐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기 전 일이다. 모 극장을 운영하는 기업이 요청한 특강을 마친 뒤 경영진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 영화 티켓 가격이 계속 오르면 관객에게 부정적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경영진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대중이 영화를 1년에 5편 가까이 보기에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연간 영화 관객 수가 7년 연속 2억 명을 돌파하던 시기였으니 경영진의 전망도 무리는 아니었다.
위기는 늘 안일한 생각을 조롱하듯이 침투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하자 극장을 찾던 관객은 발길을 끊었다. 넷플릭스는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영화를 집에서 편히 볼 수 있다고 홍보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영화관은 지난 4년간 세 차례나 가격을 인상했다. 그러나 구원투수로 호출된 가격 인상은 불만 더 키웠다. 영화 티켓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배우 최민식의 발언은 이런 배경을 담고 있다.
[영화 티켓의 경제학] 커지는 가격 민감도와 가격 저항
올해 나타난 영화 산업의 위기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진짜 위기는 2025년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4대 배급사(CJ, 롯데, 쇼박스, NEW)의 내년 영화 라인업은 모두 합쳐도 20편에 불과하다. 국내 최대 배급사였던 CJ가 과거 국내 영화를 해마다 20편 제작하고 매년 13~15편의 국내 영화를 꾸준히 개봉해온 점을 감안하면 제작투자가 급격히 위축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관에서 관객이 사라진 탓이다.
영화 티켓은 상품 그 이상의 성격을 지닌다. 경제학의 수요-공급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을 올리고 수요가 적으면 가격을 내리는 일반 제품·상품과 다르게 움직인다. 그래서 영화 티켓 가격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문화경제학자가 연구를 진행해 왔다. 상당수 연구 결과는 국내 영화관이 무조건 영화 관람료를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2007년 문화경제연구 학술지에 게재된 '영화 산업의 수익성과 다양성 제고를 위한 가격차별전략'을 살펴보면,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많은 관람객을 유인할 수 있는 영화는 높은 관람료를 설정하고 예술·독립영화 등은 낮은 관람료를 설정하는 것이 단일 관람료 설정보다 더 높은 이윤을 창출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영화 제작비, 출연진, 감독 등의 영향 요인과 무관하게 동일한 관람료의 문제점을 엿볼 수 있다.
코로나19의 타격에서 벗어나 극장 시장 회복을 위한 연구는 노철환 인하대 교수가 2022년 아시아영화연구 학술지에 게재한 '극장 시장 회복을 위한 영화상영관 입장권 적정 가액 연구'를 들 수 있다. 노 교수는 실증 분석을 통해 주요 국가의 영화 관람료를 비교한 뒤 관람료 부담지수를 도출, 실질 관람료는 우리나라가 미국·프랑스·영국·일본 등에 비해 낮지만 실제 피부로 느끼는 관람료 부담은 높다고 지적한다.
해당 논문은 겉으로 드러나는 영화 티켓 가격 이외에 연간 평균 관람 횟수, 영화관 실질 관람료, 최저시급을 모두 고려했을 때, 국내 최저시급이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 대비 낮아 영화 관람료 부담을 가장 크게 인식한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등 OTT(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가 대체재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영화 티켓의 가격 민감도와 가격 저항은 커질 수밖에 없다. 관람료 인상은 영화관 침체를 가속화할 뿐이다.
[영화 티켓의 심리학]수익 아닌 문화 향유의 공간
물론 가격을 내린다고 해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대 영화관 그리고 극장 운영 기업의 성과가 당장 살아나는 건 아니다. 높아진 임대료, 치솟는 인건비, 영화 판권 등 영화관 운영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영화관의 상징이던 대한극장, 서울극장이 문을 닫고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매년 폐점을 통해 비용 절감에 나선 이유다.
문제는 영화관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극장을 소유한 기업들이 영화 티켓 가격에 방점을 찍고 너무 급격히 인상한 점에 있다. 매년 높아진 관람료는 소비자에게 고객만족, 고객감동을 부르짖던 영화관의 심리적 시그널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좌석 고급화로 가격을 인상하고 좌석 위치에 따라 가격을 더 높이 부과하면 고객은 수익 극대화 도구로 자신들을 대하는 극장의 경제적 시그널에 거부감을 느낀다.
2021년 국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미경 CJ ENM 부회장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영화관 침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영화관의 침체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음향, 스크린 등 영화관을 찾는 경험 자체가 더 즐겁고 풍요로울 수 있는 본질적 방안에 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 향유의 집합체가 영화관이란 점을 강조한 발언에서 묘안을 찾아야 한다.
노철환 교수 역시 흥미로운 콘텐츠, 관람료 다양화 등을 통해 관객의 문화복지 향상 측면에서 기업들이 극장의 회복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관람료 인상은 전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기초적 대안에 불과하다. 관객 입장을 존중하는 방안을 내놓을수록 기업이 읍소하지 않아도 대중은 다시 영화관을 찾을 것이다. 영화 산업의 CEO도, 영화 전공 교수도 영화관의 심리적 공간에서 답을 찾으라고 얘기한다.
지난해 말 《서울의 봄》부터 《파묘》 《범죄도시4》가 연이어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이는 여전히 매력적인 콘텐츠, 높은 완성도를 보인 작품에는 관객이 적극적으로 호응함을 보여준다. 최민식이 배우 입장에서 관람료보다 더 강조한 요소도 바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작품에 있다. 영화 현장 최전선에서 관객을 만나온 그가 영화 산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점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CGV는 8월 마지막 주, 나흘간 영화를 반값에 볼 수 있는 '컬처위크' 행사를 열었다. 영화관도 고객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관은 꿈을 선사하고 그 꿈을 대중과 능동적으로 공유, 상호작용하는 심리적 공간이다. 가격 인상이 아닌 어떤 가치를 어떻게 관객에게 제공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기업이 영화관의 침체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관객은 호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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