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이 개·고양이 탓?…한국과 미국의 황당한 논쟁 왜
[주간경향]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는 그날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경기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저출생 추세를 반전시키겠다는 윤 대통령의 말이 무색하게 저출생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태도는 여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0.7명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김문수 “젊은이들이 개만 사랑한다”
최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김 장관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이던 지난해 9월 대구에서 열린 ‘청년 경청 콘서트’에서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개만 사랑하고, 개만 안고 다니고,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또 “젊음은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라며 “애를 낳아서 키워줘야지, 개를 안고 다니는 것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고 했다. 저출생의 원인과 책임을 반려견을 키우는 청년 개인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이다.
기자가 취재한 전문가들은 김 장관의 말이 사실인지부터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의 저출생이 반려동물 양육 때문이라는 실증적인 연구자료가 없고, 학계에서도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서 세대 구성별 반려동물 양육 비중을 보면 1인 가구가 9.8%로 가장 낮았다. 3세대 이상 가구가 20.1%로 가장 비중이 높았고, 그다음이 비친족 가구(18.5%), 2세대 가구(17.9%) 순이었다. 비혼 1인 가구가 출산 대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대세라기보다는 규모가 있는 가정에서 반려동물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주의 연령대도 50대가 18.9%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16.5%), 60대(14.4%), 30대(14.0%), 29세 이하(12.4%) 순이었다. 혼인 상태에 따라 구분해 보면 배우자가 있는 경우 16.5%가 반려동물을 키워 가장 많았고, 미혼은 11.9%만 반려동물을 키웠다.
통계청의 2019년 생활시간 조사 결과를 보면 맞벌이 부부임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가사노동에 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음식 준비’의 경우 여성이 하루 1시간 20분, 남성이 12분으로 성별 간 차이가 매우 컸다. ‘청소 및 정리’는 여성 31분, 남성 11분, ‘가족 및 가구원 돌보기’는 여성 36분, 남성 15분이었다. ‘반려동물 및 식물 돌보기’는 평균 소요 시간이 3분으로 전체 가정관리 시간(평균 1시간 33분)의 3.2%에 그쳤다. 여성의 과도한 가사노동 부담이 저출생의 원인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반려동물 양육이 영향을 미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성별 간 임금 격차, 장시간 노동,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등 노동 문제가 저출생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의 태도는 중요하다. 조은주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에선 저출산 대책을 주로 보육 쪽으로 논의했는데, 핵심은 노동과 고용정책”이라며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김 장관의 발언은)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말로 보인다”고 했다.
청년진보당 당원들은 지난 8월 22일 서울 강남구의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에 찾아가 “김 장관이 청년만 탓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통령도 국가비상사태라고 이야기하는 저출생 문제에 대해 경사노위 위원장으로서 책임이 있는 김 장관이 ‘청년들이 개나 안고 다니고 애를 안 낳아서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하고 청년들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낮은 임금, 노동시간 문제로 40만명 넘는 청년이 ‘쉬었다’고 집계되는 상황”이라며 “당장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불투명한 현실에서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고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저출생에 대한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 등의 시각이 논란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7년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소득과 학력 수준이 낮은 남성과도 결혼할 수 있게 유도한다’는 취지의 저출생 대책을 제안해 논란이 일었다. 2022년 나경원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은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거론하면서 “이런 프로그램으로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것으로 너무 인식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5월엔 “남성의 발달 정도가 느리기에 여성을 1년 조기 입학시키면 서로 매력을 더 느끼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가 비판을 받았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8월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청년들이 왜 비혼·비출산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정부가 그 부분을 외면하고 있다”며 “저출생 문제의 당사자인 청년 여성과 남성들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또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비자발적인 경우도 있는데 (김 장관의 말은) 1인 가구, 비혼·비출산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 6월 육아휴직 급여 인상, 출산·육아휴가 확대, 초등학생 늘봄프로그램 확대,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기준 완화 등을 저출생 대책으로 발표했지만 여전히 단편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신 교수는 “국가가 청년과 여성을 외면하고 하향식으로 약간의 지원을 해주겠다고 핀셋 정책을 내놓아서 출산율을 반등시킨 나라는 없다”며 “경제적인 양극화, 젠더 격차를 해결하는 등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 사회 구조적인 개혁이 없이는 초저출산 추세가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정규직으로 다음 달 재계약이 될지 모르는 여성에게 자꾸 아이를 낳으라고 이야기하면 그 여성이 낳을 수 있겠느냐”며 “문제의 시작은 노동시장”이라고 했다.
송 교수는 “1주당 69시간까지 일해도 된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저출산과 관련해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이라며 “이런 신호를 보면서 젊은 세대는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느끼고 다시 얼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면서 출산과 양육의 주체인 여성들을 보호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나쁜 신호였다”며 “저출산은 전 세계적인 기조이고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지만, 많은 정책이 나오고 예산이 들어가는데도 왜 바뀌지 않을까를 생각해본다면 결국 사회와 정책의 중심에 선 대통령이 좋지 않은 신호를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리스는 자식 없이 고양이 키우는 여자”
미국에서도 저출생과 반려동물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대선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선 J. D. 밴스 상원의원이 2021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향해 “자식 없이 고양이 키우는 여자(Childless cat ladies)”라며 “국가의 미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말한 게 논란이 됐다. 해리스 부통령은 2014년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와 결혼한 뒤 엠호프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함께 양육해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성들은 ‘출산하지 않은 여성은 정치인의 자격도 없다는 것이냐’고 분노했고, ‘해리스를 지지하는 자식 없이 고양이 키우는 여자’ 문구를 넣은 고양이 그림을 공유하며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은 SNS를 통해 “미국의 부통령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을 정말 믿을 수 없다”며 밴스 의원을 비판했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지난 8월 21일(현지시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집이 불타고 있을 때 집주인의 인종, 종교, 그의 배우자의 성별, 투표성향을 묻지 않는다”며 “그 집이 자식 없이 고양이 키우는 여자의 집이라면 우리는 그 고양이도 구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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