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다리 끌던 강아지, 뛰며 행복해하자…보호자가 펑펑 울었다[인류애 충전소]
국내 '강아지 휠체어' 없던 시절부터 10년째 만들어, 유기견 1000여 마리에 기부도
노부부가 보물처럼 품에 안고 온 건 노견이었다. 이 녀석이 탈 휠체어를 맞추러 왔다고 했다.
나이는 17살, 이름은 또또. 길바닥에 버려져 안락사될 예정이었던 강아지. 죽음을 사흘 앞두고 가족으로 맞아줬다. 또또가 3살 때였다.
또또 아빠 남준우씨는 처음엔 강아지를 꺼렸다. 5살 때 동네 개가, 그의 형을 물었던 기억 때문에. 아내와 딸은 또또를 예뻐했으나, 준우씨는 두 달쯤 거릴 두었다. 눈치를 살살 보는 또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안쓰러웠다. 너는 어쩌다 버림받았니. 말을 걸 때부터 둘은 가까워졌다.
어느 날 밤, 준우씨가 술에 취해 퇴근했을 때였다. 집에 와 탁 드러누웠을 때, 한참 반기던 또또가 배 위에 올라왔다. 준우씨가 당시를 회상했다.
"아내와 딸이 저한테 오려고 하는데, 손도 못 대게 또또가 으르렁거리는 거예요(웃음). 허허, 이 녀석 봐라.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았죠. 정이 어찌나 들었는지."
그리 14년이 흘렀다. 또또의 시간은 준우씨보다 몇 배 더 빨랐다. 걸음이 점차 느려지다 자는 시간이 늘었다. 이윽고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고, 양쪽 다리가 나빠졌다. 걷기도 힘들어졌다. 어떻게든 걸으려 버둥거리는 또또를 보며 준우씨는 맘 아팠다.
우연히 TV에서 반려견 휠체어가 있단 걸 봤다. 그 길로 찾아온 게 '워크앤런'이었다. 이곳엔 10년 넘게 반려견 휠체어를 만들며 미쳐 있던 사람. '강아지 휠체어 아저씨'라 불리는 이철 대표(66)가 있었다.
또또의 네 다리가, 이 대표가 만든 휠체어에 올라갔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준우씨가 본 광경이 이랬다.
"휠체어를 타니까 달리기도 하는 거예요. 못 걸으니까 짜증 내고 음식도 안 먹으려고 했는데. 이거 타고 운동하니까 식욕이 옛날이랑 똑같아졌어요. 휠체어에서 안 내려오는 거예요. 그리 좋아하더라고요."
벌써 15년은 된 얘기라며 들려준 게 이랬다.
"끼잉, 낑낑, 낑낑낑."
깊은 밤 퇴근하던 길. 소변보러 화장실에 들렀을 때 들려온 소리. 당시 이철 대표는 등이 쭈뼛 섰다. 평소 쥐를 무서워하는데 '찍찍' 소리처럼 들려서였다.
"놀라서 도망쳐 나오려 했는데, 쓰레기 더미 속에서 비닐 헤집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자세히 들으니 비닐 안에서 뭔가 꼼지락꼼지락, 벌려보니 강아지가 버려져 있더라고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단다. 아이를 비닐에서 꺼냈다. 차에 천을 깔아 강아지를 올려주었다. 그 길로 집에 데려왔다. 와서 보니 강아지가 움직이긴 하는데, 뒷다리를 쓰지 못했다. 장애가 있어 누군가 버린듯 했다.
새벽이슬 맞고 있었던 강아지라고, 이름을 '이슬이'라 지어주었다. 귀한 생(生)을 모른척하는 법을 몰랐다. 그리 가족이 되어주었다.
출장 등으로 일본에 갔을 때였다. 동행했던 친구가 고양이 집사였다. 나고야에서 펫 박람회를 하는데, 고양이에게 사줄 게 있는지 보러 간다고 했다. 이철 대표가 따라가겠다고 했다.
거기서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반려견을 위한 '휠체어'가 있어서였다. 당시 가격이 50만원. 꽤 비쌌지만 망설임없이 샀다.
이슬이에게 빨리 휠체어를 태워주고 싶어, 귀국 일정도 하루 당겨 돌아왔다. 휠체어를 조립해 태워주었다.
"애가 막 뛰어다니고 난리가 난 거예요. 진짜 너무 좋아서 눈물이 펑펑 나오더라고요. 그 행복감이란 게 눈빛부터 달라지더라고요. 뛰어다니며 그제야 다른 애들이랑 속도를 맞추며 어울리는 거예요. 산책도 다니고요."
하염없이 운 데에는 이슬이를 향한 미안함도 있었다. 이런 휠체어가 있는줄도 몰랐어, 아빠가 찾아보지도 않았었다. 그냥 거기까지가 할 수 있는 전부라 생각했던 게 너무 미안했던 거였다.
화장을 마치니 한 줌이었다. 가루를 단지 안에 넣고, 그 앞엔 두 다리였던 휠체어를 두었다. 그걸 볼 때마다 이철 대표는 가슴이 미어졌다. 매일 슬퍼 견딜 수 없었다.
우울감이 심해지자, 휠체어를 팔아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겠단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중 이철 대표의 눈에 들어온 글이 있었다.
"경기도 양주에서 유기견 보호소를 하는 분이었어요. 우린 휠체어를 살만한 여유가 없지만, 우리 애가 꼭 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글을 올리신 거예요."
그 보호소에 찾아갔다. 휠체어가 필요한 유기견을 만났다. 믹스견이었다(이철 대표는 이를 '아름다운종'이라고 표현했다, 좋다). 허리엔 장판 등으로 만든 조악한 지지 장치를 차고 있었다. 보호소 소장이 그 강아지를 어떻게든 걷게 해주고 싶어 만든 거였다.
이슬이가 쓰던 두 다리가, 그 유기견에게 이어졌다. 이철 대표의 기부였다. 강아지는 휠체어를 타자마자 신나서 막 뛰어다녔다. 보호소장은 신나게 날아다니는 아이를 보며, 기쁘고 미안해 꺽꺽 오열했다.
그러면서 걷지 못하는 유기견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철 대표는 일본에 또 갈 일이 있으니, 휠체어를 사다 주겠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갈 때였다.
이번엔 아예 일본에 있는 반려견 휠체어 공장을 찾아갔다. 한국에 이런 장애견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엔 반려견 휠체어가 없다고. 자주 사야 할 것 같은데 비용이 부담된다고. 그랬더니 일본 관계자가 좋게 봐줘서 50%씩 할인해준다고 했다. 그리 또 구해 유기견들에게 계속 기부했으나, 여전히 비용 부담이 컸다.
두어 달 후에 휠체어를 처음 만들었다. 부족한 게 많았단다. 뒷다리만 얹는 휠체어였다. 그 무렵엔 국내에도 반려견 휠체어를 수입하는 업체가 생겼으나 고가였다. 이철 대표는 유기견들을 위한 것만 만들어 계속 기부했다.
입소문이 나며, 장애견 보호자들이 그에게 만들어달라고 의뢰했다. 그래서 그때 금액으로 10만원을 받고 반려견 휠체어를 만들어 팔면서, 그 돈으로 다시 유기견 휠체어를 만들어 기부했다. 그리 10년 전부터 사업이 시작되었다.
휠체어는 네 다릴 지지하는 걸로 점점 진화했다. 제품도 의족, 보조기, 척추 보호대 등으로 확장되었다. 30년 된 회사를 직접 찾아다니며, 하루 2시간씩 3개월을 매진하며 다 배워서 만든 기술이었다.
열정이 대단하단 말에 그는, 그게 아니라 재밌어서 하는 거라고 했다. 어떤 게 재밌냐고 물었더니 이리 답했다.
"애들은 걷고 싶어 하는 욕망이 누구보다 커요. 근데 누워만 있으면 애들이 눈빛이 흐려지거든요. 우울하고, 마음도 다 포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먹지도 않고요. 근데 내가 서 있다는 느낌 자체만으로도 얘네가 자신감이 생겨요. 꼬리가 딱 올라가요. 잘 걷게 되면 식욕도 생기고 배변도 잘 돼요. 그걸 보면 너무 좋은 거예요."
다리만 만드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허물어진 삶을 꼿꼿하게 세워주던 강아지들의 '휠체어 아저씨'. 숫자를 다 세어보진 않았으나 유기견들에게 기부한 휠체어, 보조기, 의족만 1000개가 넘는다고 했다.
이 회사가 정말 잘 되었으면 싶었다. 더 많은 장애견들이 헥헥헥, 환히 웃으며 뛸 수 있도록.
에필로그(epilogue).
이철 대표가 유독 기억에 남는 반려견이 있다고 했다. 이름이 '동주'였다.
"동주는 경기도 분당의 한 공원을 늘 산책하던 아이였어요. 근데 암에 걸렸어요. 수술하려 열어보니 전체에 다 퍼져 있어서 다시 닫았다고요. 앞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였지요."
나이가 지긋했던 동주 보호자의 선택은 이랬다. 단 열흘이라도 동주와 산책하고 싶다고. 동주와 늘 함께 걷던 분당의 그 공원을. 그래서 이철 대표에게 동주의 휠체어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간곡한 그의 청대로 해주었다.
한 달 뒤 박스가 하나 도착했다. 동주가 남긴 휠체어였다. 거기엔 보호자의 손편지가 있었다. 이리 쓰여 있었다.
'우리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보름 동안,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즐거운 산책을 했습니다. 마지막 날 산책하고 쉬고 있는데 안아달라고 하더라고요. 따뜻한 햇살에서 깜빡 졸았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끝으로 이리 덧붙였다.
'이 휠체어는 다른 유기견에게 선물해주세요.'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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