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팁’ 문화, 나만 어려운 거 아니었네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때 아닌 ‘원조 논쟁’으로 불이 붙었다. 팁(tip) 소득 면세 정책 때문이다. 해리스 후보가 8월10일 유세에서 팁 소득 면세 정책을 제안하자, 트럼프 후보는 ‘트럼프의 아이디어’라면서 “내게서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은 팁 소득 면세 정책이 민주당과 공화당이 합의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는 이 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반박한다. 팁을 받는 노동자의 보장된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팁을 받는 노동자는 이미 최저임금 이하로 노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세금 감면 혜택이 거의 없으므로 보장임금을 자체를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근래 들어 미국에서 팁을 얼마만큼 줘야 하는지는 더욱 어려운 문제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종업원과 대면하지 않는 업종에서도 팁 결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키오스크로 주문과 결제를 했는데 팁을 요구하는 경우는 보편적 현상이 됐고, 로봇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곳에서도 팁을 요구한다. 2023년 퓨리서치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약 3분의 1만이 ‘팁을 언제, 얼마만큼 줄지 선택하기 쉽다’라고 답했다. 나머지 3분의 2는 ‘어떤 서비스에 팁을 줘야 할지, 그리고 얼마만큼 주는 게 적절한지 선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팁을 요구하는 업종의 범위와 그 금액이 일반적 상식을 넘어 과도해졌다는 인식이 확대된 것도 이러한 답변에 영향을 미쳤다. 뉴욕 시민 린다 와서먼 씨는 “예전에는 팁으로 15% 정도를 주면 나도 종업원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20%를 팁으로 주지만 그게 충분한지 신경이 쓰인다”라며 최근의 팁 문화가 과거와 달라졌다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팁 문화가 관대해진 데에는, 생계가 어려워진 노동자를 지원하려는 소비자들의 연대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자영업자로서는 당장 인건비 중 일부를 팁으로 대체할 수 있고, 모바일이나 전자금융을 활용하는 비율이 늘게 되면서 팁을 요구하는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심리적 부담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팁에 대한 요구가 소비자 관점에서는 더욱 노골적이고 불편하게 됐다. 팁을 주지 않으면 종업원이 항의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공유차량 서비스에는 “팁으로 아이들이 교육을 받습니다” 같은 문구가 붙기도 한다.
팁 정산 ‘제대로’ 받기 어려운 까닭
미국 43개 주에서는 팁을 받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 팁 노동자의 임금과 팁의 합계가 최저임금보다 적으면 사용자가 미달한 임금을 보조해주는 ‘팁 크레디트’ 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이 제도가 노동자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정확한 금액 계산을 위해선 고용주의 협조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팁 노동자는 최저임금이 보장된 노동자보다 결과적으로 적은 임금을 받을 확률이 높다.
전자결제가 보편화하면서 팁이 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아 제대로 정산받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한 레스토랑은 노동부로부터 노동자의 팁 25만 달러(약 3억4250만원)를 정산해주지 않았다고 고소당했다. 이 경우처럼 문제가 발각되어서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노동조합이 없거나 작은 식당의 경우, 팁으로 들어온 금액이 얼마인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인이 소송을 감당할 여력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 지원이 부족한 가운데 6개 주는 임금 관련 노동감독관이 한 명도 없다. 연방 노동부의 임금지급 관련 법 위반 실태조사도 2012년 이후 이뤄지지 않아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팁 노동자의 임금을 별도로 정하고 있는 현행 ‘2단계 임금체계’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지난 7월 미시간주에서는 주 대법원 판결로 팁을 받는 노동자도 단계적으로 하나의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시카고시에서도 7월부터 팁을 받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별도로 정한 법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애리조나 등 5개 주에서 관련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다.
‘팁플레이션’이라고 불릴 정도로 과도한 팁 요구 문화는 인건비를 억제하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한 고용주의 이해관계가 녹아 있다. 팁을 요구하는 업종을 늘려 노동자의 보장임금 폭을 줄이고, 팁이라는 ‘호의’로 드러나지 않는 가격 상승을 충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험성과 감정노동은 노동자의 몫이 되었다. 별도로 규정된 팁 노동자 최저임금을 폐지하려는 단체인 ‘하나의 공정임금(One Fair Wage)’은 “우리(의 가격)는 메뉴판에 없다”라는 구호를 통해 감춰진 비용이 누구의 책임인지를 드러낸다.
미국의 팁 문화는 노예노동의 역사라는 것이 정설이다. 정식 임금을 주지 않고 팁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하면서 노동력을 고용하기 위해 흑인이 많이 근무하는 업종에 적정임금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1938년 최저임금이 최초로 도입될 당시, 흑인이 많은 식당 종사자는 그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1966년 팁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법제화돼서 70센트로 정해지기 전까지 팁 노동자의 보장된 임금은 ‘0’원이었다. 지금도 연방정부 차원의 팁 노동자 최저임금은 2.13달러(약 2900원)로 최저임금 7.25달러(약 9930원)의 30% 수준이다.
뉴욕·양호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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