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라고요? 엄연한 정원입니다 [임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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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유의 집이 있었다면 식물 임시 보호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한 식물 대부분은 내 정원의 한 부분이 되어 자리 잡고 있었을 테니까.
정원을 가꾸는 일을 누군가는 마음을 가꾸는 일이라고 하고, 내가 만든 걸작이라고도 한다.
내 집 없어도 가질 수 있는 정원 중 하나는 작은 이끼 테라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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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유의 집이 있었다면 식물 임시 보호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한 식물 대부분은 내 정원의 한 부분이 되어 자리 잡고 있었을 테니까. 나는 남의 집에 세를 주고 사는 형편인 데다 공간마저 한정적이어서 재개발 단지마다 끊임없이 버려지는 식물을 모두 품을 수 없었다. 더 좋은 집에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식물을 나누게 되었다. 이 과정을 되짚어보니 이른바 ‘임시 보호’였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정원을 욕망하게 된다. 나의 정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 생각해본다. 정원을 가꾸는 일을 누군가는 마음을 가꾸는 일이라고 하고, 내가 만든 걸작이라고도 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가꿔야 하는 것이 정원이라고도 한다. 여러 말들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것 같다가도 모르겠다. 지금도 집 마당에 작은 정원이 있지만 이곳은 언제고 떠나야 할 곳이다. 슬픈 결말이 예정되어 있다 보니 순간순간을 만끽하기가 쉽지 않다. 정원과 더불어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분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울 때가 많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을 보면 집도 있고 마당도 있는 ‘기득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정원과 소박함은 어울릴 수 없는 단어라고도 생각했다. 현대인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수도와 전기, 정화조를 구축하고 정원까지 갖춘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정원을 갖고 싶은 사람 대부분이 아마도 나와 같은 환경일 것이다. 살 곳 구하기도 바쁜데 무슨 정원 타령이냐며 누군가에겐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의식주에서 ‘주(住)’조차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부수적 옵션에 가까운 정원을 갖고 싶어 하다니 어불성설에 가깝다.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공공정원을 함께 가꿀 수도 있고 공공 텃밭을 대여하는 방법도 있다. 또 공원이나 식물원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정원사 양성 프로그램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정원에서는 ‘나의 취향’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손 타지 않은 자연을 보고 감탄할 때면 ‘꼭 내 손으로 가꾼 내 소유의 땅만 내 정원일까’ 싶기도 하다. 유리병 속이든 베란다든 옥상이든 화분 하나든, 크기와 장소와 방법에 무관하게 어디든 나름대로 온전한 정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요즘 나는 나와 적당히 타협했다. 내 집 없어도 가질 수 있는 정원 중 하나는 작은 이끼 테라리움이다. 뚜껑만 덮어두면 때맞춰 물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하나의 생태계가 유리병 안에 구축되어 있다. ‘사화정원’은 내가 기획한 정원이다. 죽은 식물, 낙엽, 솔방울 따위를 모아 모래 위에 올려서 만든다. 구성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변형이 가능하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 취급 받을 재료들의 ‘쓸모’를 발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테라리움과 사화정원 모두 어디든 함께 이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원을 갈망하는 내 마음도 어루만져준다. 문득 궁금하다. 여러분 각자의 정원은 어떤 모양일지, 또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백수혜 (‘공덕동 식물유치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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