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습기살균제 참사 13년… 피해자의 ‘번아웃’

신다은 기자 2024. 8. 31.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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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21]채경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 대표 인터뷰
채경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 대표. 본인 제공

2011년 8월31일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정부가 처음 공식화한 날이다. 이미 가습기살균제가 연간 60만 개씩 팔려나간 뒤였다. 그러나 환경부가 인정한 피해자 수는 현재까지 7956명. 그마저도 사망자 1868명을 포함한 수치다. 환경부가 자체 기준에 따라 폐 섬유화, 천식 등 극히 일부 질환만 피해로 인정하고 있어서다.

피해자들은 살균제의 독성 성분이 일부 장기 손상에 그치지 않고 전신에 영향을 미쳤다고 호소한다. 화학물질이 폐를 거쳐 몸 안 곳곳으로 퍼져나갔다는 거다. 학계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살균제 성분을 코로 들이마신 쥐의 심장, 간 등에서 살균제 성분이 검출됐다거나 살균제에 장기간 노출된 인간 폐세포에서 유전자 변이가 관찰됐다는 연구 등이다.

사건 발생 13년이 되는 2024년 8월, 피해자들은 전신 피해를 증명하는 연구를 직접 계획했다. 이를 준비하고 기획한 채경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8·31사회적가치연대) 대표와 유선으로 대화를 나눴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전신 피해에 관한 연구를 기획했다고.

“8월28일 인하대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적 없는 일반인 각각 30여 명을 채혈했다. 두 집단을 비교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게 두드러지는 전신 피해가 있는지 확인하는 연구다. 나도 아침부터 병원에 가서 실험 참여자들에게 절차를 안내하고 채혈했다. 안전성평가연구소와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님이 결과를 함께 분석할 예정이다.”

—연구를 통해 무엇을 확인하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독성물질로 인해 폐만 손상된 게 아니라 전신에 피해를 입었다. 예를 들어 에너지 대사를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돼 일반인보다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늘 피로감을 느낀다. 나도 만성 피로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자 가습기살균제 노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비교하는 것이다.”

—전신 피해에 관한 정부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가 직접 연구를 계획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걸 국가가 하지 않고 피해자 단체가 해야 한다는 게 정말 기막힌 일이다. 이번에 연구비 모금하고 기획하는 과정도 많이 힘들었다. 특히 대조군 모집이 어려워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 청년에게 참여를 호소해야 했다. 다행히 많이들 지원해줬지만, 번아웃이 와서 앞으로 더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를 기획한 까닭은.

“환경부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이후로 제대로 조사한 게 하나도 없다. 피해자 인정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대대적인 조사도 없다. 오죽하면 피해자 단체가 이렇게 주도적으로 모금하고 진상규명을 하겠나. 환경부가 이 모습을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 이건 당신들이 해야 했던 일인데 우리가 힘들게 하고 있지 않냐고, 정신 차리라고 말이다.”

—연구비를 모으기 위해 에스엔에스(SNS) 모금도 한 것으로 안다.

“7월 말 모금 플랫폼 ‘카카오 같이가치’에서 연구비 850만원을 모금했다. 약 3주 만에 목표치를 채웠다. 첫 모금에 이렇게 큰 금액을 올려 조기 달성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피해자 연구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단지 피해보상만은 아니라고 했는데.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사망자보다 생존자가 3배나 많다. 지금도 6천여 명이 생존해 있다. 환경재난에 있어 이들의 생체 데이터는 전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정보다. 그걸 정부가 연구하지 않고 묵혀두고 있다. 지금 내 아들 신체 나이가 40대, 내 신체 나이는 60대라고 한다. 이런 현상을 연구해야 하지 않나. 정부가 지금처럼 가해 기업한테 보상금 타내는 것에만 매달려서는 논의가 진전될 수 없다. 일회성 피해 구제를 넘어 상설화된 조사 기구가 필요하다. 그런 입법적 상상력을 촉구한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2024년 8월28일 인천 인하대병원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살균제 독성물질에 의한 전신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채혈하고 있다. 8·31사회적가치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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