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곳곳에 유령처럼 남은, ‘먼저 간 사람들’의 흔적

한겨레 2024. 8. 3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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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금희의 나의 폴라 일지
남극의 유령들
마음·발길 붙드는 매혹적 풍광
‘과몰입’ 방지 위해 2인1조 원칙
가야봉 꼭대기에 오르기 전 구릉에서 내려다본 해안가의 모습.

나는 유령을 믿지 않지만 유령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 텅 빈 존재가 지나갈 때 즉물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우리의 뒷덜미를 으스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으스스함으로 우리는 돌아보게 되고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다, 유령은 생각하게 하는 존재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으레 유령들도 존재한다. 이리나는 남극 곳곳에서 유령의 존재를 느꼈고 그것은 주로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흔적과 관련 있는 듯했다. 유령을 보았다는 말의 놀라움은 이후 떠난 이들에 대한 애도로 이어졌다.

영국 섀클턴 탐험대의 트라우마

여름이면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작은 호수(융설수 호수)가 생겨난다.

사실 이곳에 온 내내 내 평온을 간섭하는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평전에서 읽은 대목인데 배가 좌초되어 죽음의 문턱을 넘은 선원들이 가까스로 육지에 닿자 공포에서 벗어난 긴장과 분노를 펭귄들을 살생하며 풀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남극을 탐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펭귄을 요리해 먹었지만 그 살생은 폭력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인간을 한번도 본 적 없었을, 그래서 위험의 정도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을 생명들은 오직 분노의 발산을 위해 희생되었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대륙, 여름 볕 아래 생동하는 오늘의 남극은 그런 죽음의 이야기들을 곳곳에 품고 있었다.

섀클턴은 유능한 리더십을 발휘해 선원 모두를 감동적인 귀환으로 이끌었지만, 책을 통해 그중 몇몇은 고향으로 돌아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육체는 남극에서 돌아왔지만 이곳에서 겪은 트라우마는 유령처럼 그들의 삶을 맴돌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였을지도 모른다. 남극은 그들의 고난을 품어주었지만 도시는 그를 인간세계에 섞여 들지 못하는 유령으로 만들었을지도.

“정말 비극적인 이야기야,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고들 말이야.” 작업하고 있던 책상 위로 찬바람이 모여드는 듯했다. “그런 것에 대해서도 쓸 거니?” 이리나가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극을 다루는 많은 매체들에서 이곳의 고립과 미지성은 드라마틱하게 연출되지만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이리나는 자기 프로젝트인 ‘대기의 강’과 관련한 글들을 보내주고 나는 신문에 이리나 팀에 관한 기사가 실리면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점심에는 대기팀과 함께 가야봉의 고장 난 기상 타워를 철거하러 나섰다. 몇해 전 이산화탄소 측정을 위해 홍 선생과 카밀라 언니가 설치했지만 인정사정없는 남극풍으로 수명을 다한 것이었다. 나들이하듯 가자고 해서 가뿐한 기분으로 집결 장소로 갔는데 홍 선생이 왜 이렇게 얇게 입고 왔느냐고 물었다. 맑은 날에도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춥다는 말이었다.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약간 애매하게 웃으며 나는 답했다. “아니, 안 돼요. 더 두텁게 입고 와요.” 할 수 없이 방으로 가서 가장 두껍다 자부하는 바지를 입고 돌아갔다.

“그건 무슨 바지예요? 내가 평소에도 작가님이 저 바지는 뭔데 입고 다니나 궁금했거든요.” “제가 사온 등산바지인데요.” “아니, 안 돼. 기지에서 대원들한테 지급한 복장 그대로 입어야 고생 안 합니다. 갈아입고 오세요.” 또 퇴짜를 맞은 나는 방으로 가서 연구소에서 대여해준 바지를 입고 왔다. 이제는 됐겠지 싶었는데 홍 선생이 놀라며 그것밖에 없느냐고 물었다.

“지금 그건 내피만 입고 있는 거예요. 외피 없어요?” 약간 과장하자면 나는 내복 바지만 입고 나타난 셈이었다. 홍 선생은 멜빵바지 형태의 외피를 설명하며 다시 입고 오라고 시켰다. 가야봉에 오르기도 전에 옷 갈아입다 내 영혼이 날아가버릴 판이었다.

“그동안 외피 하의를 안 입고 다녔단 말이에요? 안 됩니다, 큰일 나.” 홍 선생은 정색했다. 입남극 보름 만에 정상적인 방한복 착용법을 알게 되다니, 나의 어수선한 성격이 탄로 나는 (이미 그랬겠지만) 순간이었다. 분명 교육받았을 텐데 흘려들은 것이다.

“그래요, 작가님, 우리도 외피는 꼭 입어요. 입고 안 입고의 차이가 무척 크거든요.” 카밀라 언니가 말을 보탰다. 그때까지 나는 이 멜빵바지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며 옷장에 고이 걸어두고 있었다. 또 터덜터덜 돌아가 외피를 입고 내려왔다. 홍 선생은 드디어 합격점을 주었고 카밀라 언니가 웃으며 핫팩을 건넸다. 기온이 영상 4도 정도인데도 보온에 신경 써야 하는 건 바람 때문이었다. 남극 내륙 기지와 이곳 모두를 경험한 대원이 차라리 추운 장보고 기지가 지내기는 더 낫다고 할 정도로 세종 기지 바람은 악명 높았다. 나갈 때마다 두들겨 맞은 듯 두 뺨이 얼얼해져 돌아왔다.

종일 하늘과 바다만 보고파

밖에 나갈 때는 눈과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늘 고글이나 선글라스를 끼고 발라클라바(눈 부위를 빼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방한용품)를 써야 한다.

바람은 평소처럼 강했지만 날도 맑고 정다운 소풍길 같았다. 멀리서 들리는 빙벽 무너지는 소리도 더 이상 나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 이제 그 모든 것은 일상이었다. 세종 기지는 여러 산봉우리에 포근히 둘러싸인 모양새이고 각 지형에는 한글 이름이 붙어 있었다. 백두봉, 세종봉, 전재규봉, 백제봉, 신라봉, 나비봉, 세종곶, 나래절벽,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늘 존재하는 한글 이름 촛대바위까지.

“작가님, 이제 기지 생활에도 적응했으니 등산 한번 하셔야죠?” 홍 선생은 늘 입는 복장에 트레이드마크 같은 엉덩이 의자를 배낭에 달고 있었다. 역시 프로는 미니멀리스트인 법이었다. “오늘 드디어 등산을 가게 되네요.” “아니, 세종 기지에 오셨으니 백두봉에 한번 가셔야죠. 그래야 등산이죠.”

백두봉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약간 방어적이 되었다. 어느 날 홍 선생과 아침 일찍 백두봉 등반을 갔던 벡터가 완전히 지쳐 돌아와 “가지 마, 가지 마” 하고 손을 내저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마리안 빙벽을 코앞에서 볼 수 있고 저 멀리 아르헨티나 기지와, 플로렌스 누나탁(Florence Nunatak)까지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했지만 하필 그날은 출발하자마자 날이 흐려져 못 보고 고생만 한 것이다. 우리도 기지에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가야봉 등반은 계속 이어져, 홍 선생은 호수 주변 식생을 관측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정상을 향해 올랐다. 구릉이 펼쳐지면서 절벽 아래 해안가 절경이 나타났고 나는 탄성을 질렀다. 거기에는 흰 구름을 몰고 와 자갈해변에 계속계속 부려놓는 바닷물이 있었다. 산꼭대기가 가까워지자 바람은 더더욱 강해졌다. 마치 수십대의 헬리콥터가 하강하고 있는 듯했다. 바로 옆에서 말하려 해도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상 타워 철거라는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는데 나는 풍광에 매혹돼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구름과 바다와 바람과 식물들이 내게 들어와 어떤 것은 지우고 어떤 것은 채워넣고 있었다. 내가 하는 생각과 완고한 마음은 지우고 자연의 동력과 빛을 불어넣고 있었다. 여기서 종일 바다와 하늘만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과몰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남극은 2인 1조였다. 나는 곧 일행을 뒤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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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바람에 날아가버린 탄성

가야봉 꼭대기에 도착한 대기팀이 고장이 난 기상 타워를 해체하고 있다.

안드레아와 벡터, 카밀라 언니와 원파고는 이미 기상 타워를 해체 중이었다. 쓰러져 있는 기기를 들어올리는 데만도 네 사람의 힘이 필요했다. 나도 서둘러 힘을 보탰다. 철근 무게도 무게지만 바람 때문에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남극에 유령이 있다면 아마도 바람이 아닐까. 카밀라 언니는 나사 하나도 부러지지 않게 잘 해체하자고 당부했다. 그 나사는 한국에서 1만7천여 킬로미터를 날아온 소중한 것이니까 재활용하자는 말이었다. 각자 흩어져 말뚝을 뽑는데 내게는 마땅한 도구가 없었다. 큰 돌멩이를 잡아 퍽퍽 쳐내니 드디어 뽑혔다. “성공했어요!” 하지만 그 말은 정신없이 부는 바람에 실려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옮겨요?” “들고 가야죠.” 안드레아가 철근을 올려 멨다. 원파고도 배낭에 부속품을 꽉 채우더니 마치 검투사의 검처럼 철근을 배낭 위로 가로질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각자의 리듬대로 하산을 시작했다. 배낭은 무겁고 걸음은 느려졌지만 앞서가는 사람들이 정다워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혼자 돌아다닐 수도 없지만 어쩐지 남극은 혼자라는 기분을 느끼기 어려운 곳이었다. 자기 안으로 빠져들기 전에 누군가 말을 걸었으니까, 지금처럼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걸을 때조차 그 사이를 바람이 채웠고 이 대륙에 대한 경이로움이 자연과 우리를 이어주었으니까. 하산하며 나는 섀클턴의 전기를 다시 떠올렸다. 내가 기억하고 싶어 노트로 옮겨 적은 부분은 잔혹한 살상에서 더 나아간 이런 고백이었다.

“사우스조지아섬 내륙의 이름 모를 산과 빙하를 36시간이나 행군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늘 셋이 아니라 넷인 것 같았다. 당시엔 대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워슬리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대장, 산을 넘을 때 왠지 또 다른 누군가가 옆에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크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자 그동안 그들을 이끌었던 알 수 없는 존재는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글·사진 김금희 소설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식물적 낙관’ 등을 썼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늘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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