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는 일을 미루는 사람일까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4. 8. 3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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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많은 사람들은 미루기 천재다. 금방 할 수 있을 거라는 둥 다양한 이유를 붙여가며 마지막까지 미루다가 데드라인 직전에 고통을 맛보며 심지어 우는 일을 많이 겪어봤을 것이다. 필자 역시 미루기에 대한 원고를 미루면서 작성했음을 밝힌다. 뻔히 더 고통받을 것을 알면서 우리는 왜 자꾸 미루는 걸까. 어떻게 하면 일을 미루지 않을 수 있을까.

우선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일이 지루하거나, 전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거나,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을 때 미루기가 나타난다. 주로 하기 싫은 일을 미룬다는 것이다. 캘거리대의 심리학자 피어스 스틸에 의하면 그 외에 미루기와 관련이 있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① 부정적 정서 신경증: 미루기는 기본적으로 '지금'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현재 직면해야 할 괴로움을 내일로 토스하는 행위다. 미루기를 뜻하는 영단어 procrastination에서 'pro'는 라틴어로 '앞으로'라는 의미이고 'crastinus'는 '내일'을 뜻한다고 한다. '(오늘 일을) 내일로'라는 뜻이다. 

이렇게 미루기는 눈 앞의 괴로움으로부터 도피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미 잔뜩 괴로운 상태인 경우 부정적 정서가 넘칠 때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더 일을 많이 미루는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몇몇 학자들은 미루기가 기본적으로 기분을 낫게 만들기 위한 또는 적어도 더 힘들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정서 조절' 전략이라고 본다. '도피' 같은 부적응적인 스트레스 대처법들이 그러하듯 미루기 또한 내 마음이 나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다보니 생긴 부작용 같은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도록 하자). 이는 한편 평소 삶이 행복하고 마음이 괴롭지 않아야 미루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관련해서 성격 특징 중 신경증(Neuroticism)은 부정적 정서성, 정서적 불안정성이라고도 불리는 특성으로 신경증이 높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늘 걱정이 많고 불안하며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성격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할수록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많은 편이고 따라서 미루기를 많이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문제는 부정적 정서를 피하기 위해서 일을 미루는데 미루는 행위 자체가 미래의 더 큰 부정적 정서의 원천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기분이 언짢고 스트레스가 많음 -> 미룬다 ->더 기분이 언짢아지고 더 스트레스 받음 -> 또 다시 미룬 결과 일이 망함으로써 더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이 발생하곤 한다. 

② 미루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 부정적 정서를 피하기 위해서 미루기를 한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미루고 나면 일단 마음이 엄청 편해질 것이라거나 엄청 즐거워질 것이라며 미루기가 가져올 '긍정적 정서'의 크기를 과대평가할수록 더 자주 미루는 모습이 나타난다. 

미루고 나면 이후 괴로움이 더 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보다 미뤄도 생각보다 별로 '즐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미루기를 줄여줬다는 발견이 있다[2]. 미루는 행위 자체를 삶의 낙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③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완벽주의, 자기 의식, 평가에 대한 두려움: 기본적으로 일을 잘 해내야만 한다는 압박이 심하고 다른 사람이나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무엇을 하든 부담감이 큰 편이다. 

이로 인해 일을 하기 '전'부터 일을 할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결과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트레스는 다 받으면서) 일을 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든가 조금도 실수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크면 일을 더 일찌감치 착착 해낼 것 같지만 의외로 일을 시작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해서 손도 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④ 자신에 대한 의심: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실제 능력 수준은 비슷해도 어차피 해도 안 될 거라며 포기가 빠른 경향을 보인다. 

못 할 거라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할 것 같지만 반대로 노력해도 소용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며 노력을 '덜' 들이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동안 준비해도 모자랄 일을 (어차피 안 될 거) 하는 시늉만 하자며 대충대충 벼락치기를 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⑤ 자기 핸디캐핑(Self-handicapping): 하루 이틀 벼락치기하고도 이 정도 성적을 받은 건 꽤 잘 한 거라고 생각하기 위해 계속 공부를 안 하다가 마지막에 벼락치기를 하는 학생을 상상해 보자. 미리미리 열심히 해놓고도 실패했다는 사실을 직면하면 '내가',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존감에 직격탄을 맞으므로 스스로 자신의 앞길에 장애물을 가져다 놓고서는 내가 못 한 게 아니라 장애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자존감을 수호하는 행위다. 내가 나를 좋게 생각하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자신의 앞길을 망쳐가며 자존감을 수호하는 것인지 인간은 참으로 슬픈 동물이다. 

벼락치기로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음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마지막까지 사람들과 약속을 만들고 술을 진탕 마시는 등 '약속 때문에, 술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흔한 예다.

⑥ 우울, 낮은 에너지 수준, 학습된 무기력, 비관주의: 무엇을 하든 즐거움을 찾기 어렵고 기력도 없고 집중하기도 어려운 경우다. 동기 부여가 어렵고 버틸 에너지도 부족해서 일을 시작하기도 어렵고 시작해도 '완성'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우울증을 측정하는 문항 중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미룬다'는 문항이 있을 정도이다. 위에서 살펴본 부정적 정서와도 큰 관련을 보인다. 

⑦ 원만하지 않은 반항적인 성격: 이 경우는 조금 다른데 반항적이고 속박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경우 외부에서 정한 스케줄과 데드라인에 불쾌함을 느끼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정해진 스케줄을 거부하고 마음대로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거꾸로 일을 '최대한 늦게' 하라고 압박을 주면 청개구리처럼 일찍 해낸다는 발견이 있었다. 

⑧ 충동성이 높고 지루함을 잘 참지 못하는 경우: 이 경우 미래나 장기적인 결과 책임 같은 걸 별로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만 사는 경향을 보인다. 주의 집중도 잘 못해서 하던 일을 까먹고 다른 일을 하다가 정작 급한 일을 못 마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는 자극(스마트폰과 같은)이 많은 환경은 피하는 것이 좋다.  

⑨ 자극 추구성: 자극 추구성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 조금 다른 이유로 미루는 행동을 보인다.  이들은 일을 마지막 한 두 시간 남겨놓고 후달리면서 하는 스릴을 즐기는 또는 중독된 듯한 모습을 보인다. 긴장해서 빠짝하면 평소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릴은 짧지만 후회는 오래 갈 가능성이 있다. 관련해서 한 연구에 의하면 상습적으로 벼락치기를 하는 학생들은 벼락치기에서 높은 생산성을 보여줬지만 학기말 건강 상태나 성적, 삶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자들에 의하면 “미루기의 이득은 짧고 비용은 오래간다”고 한다. 

⑩ 체계성: 일을 계획하고 목표를 수립하며 목표 달성까지의 상황이 순조로운지 모니터링 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어도 의도치 않게 미루는 현상이 발생한다. 어떤 일을 언제 해야 적절한지에 대한 청사진을 짜지 못하기 때문에 주먹구구식으로 한 달 걸릴 일을 일주일이면 할 수 있겠지~ 하다가 나중에 울고 만다. 미루려고 미룬 게 아니고 일 하는 과정이 체계적이지 못해서 미루게 되는 경우다. 

⑪ 낮은 성취욕(achievement motivation): 별로 일을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없고 일의 즐거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다. 일을 너무 잘 하고 싶어하는 것도 문제지만 조금도 잘 할 마음이 없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원인들 중 몇 가지나 해당되는 것 같은가. 원인을 알면 해결책이 보이는 법이다. 미루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즐거운 일을 많이 만들어 행복도를 높이고 부정적 정서, 스트레스, 불안, 우울을 줄일 것, 잘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 놓을 것,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도움을 청하고 알게 될 때까지 연습 또 연습하기, 할 수 있는 부분은 정확하게 인식함으로써 자신감 높이기, 충동성이 높다면 유혹이 많은 환경은 피하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원전 300년 전에도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행태의 사악함을 강조하는 글들이 쓰여졌다고 한다. 애초에 한정된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로써 에너지 보존을 위해서라도 때때로 일을 미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벅찬 일이라서 모든 일을 제 때 처리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도 하다. 따라서 또 일을 미루는 나를 보았을 때 자꾸 미룬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 이유를 찾아 내가 나의 힘듦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자는 태도로 접근한다면 좋을 것 같다. 

[1] Steel, P. (2007). The nature of procrastination: A meta-analytic and theoretical review of quintessential self-regulatory failure. Psychological Bulletin, 133, 65–94.
[2]Sirois, F., & Pychyl, T. (2013). Procrastination and the priority of short‐term mood regulation: Consequences for future self.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Compass, 7, 115-127.
[3]Saddler, C. D., & Sacks, L. A. (1993). Multidimensional perfectionism and academic procrastination: Relationships with depression in university students. Psychological Reports, 73(3, Pt 1), 863–871.
[4]Tice, D. M., & Baumeister, R. F. (2018). Longitudinal study of procrastination, performance, stress, and health: The costs and benefits of dawdling. In Self-Regulation and Self-Control (pp. 299-309). Routledge.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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