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없이 달걀 만든다? 미생물 공장의 마법
닭이 먼저일까요 달걀이 먼저일까요? 닭이 달걀을 낳으니 닭이 먼저이지 않냐고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구 어디에나 있는 미생물을 이용한다면 닭 없이도 달걀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대체 달걀 왜 필요할까
달걀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구하기 쉬워 각종 요리에 자주 활용돼요. 달걀은 대부분 좁은 공간에 닭들을 가둬 키우는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됩니다. 이는 닭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어 조류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퍼지기 쉬운 환경입니다.
또 닭을 키우는 과정에서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닭을 키우지 않고 달걀과 비슷한 영양분과 식감을 가진 ‘대체 달걀’을 얻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달걀은 조리 온도와 방법에 따라 맛과 모양이 달라집니다.
껍질째 끓이면 삶은 달걀이 되고 흰자와 노른자를 잘 풀어서 찌면 달걀찜이 되니 수많은 요리를 만들 수 있어요. 지금까지는 콩 같은 식물 단백질로 대체 달걀을 만들어 왔지만 달걀의 이런 고유한 특성을 살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팀은 지난 7월 사람의 장 속에 사는대장균을 활용해 대체 달걀을 만들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이 활용한 대장균은 1917년 독일의 알프레드 닐슨 박사가 사람의 분변에서 처음 발견한 대장균으로 장에 이로운 단백질을 만들어 의약품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어요. 또 식물 단백질과는 달리 사람이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필수 아미노산을 갖고 있어 대체 달걀을 만들기 충분합니다.
● 대장균 키워 머랭 쿠키 만든다
연구팀은 대장균 겉을 둘러싼 세포벽과 세포막을 부수고 안에 있는 물질만 꺼내 모은 용해물을 만들었어요. 대장균 용해물을 100°C에서 10분간 가열한 결과 삶은 달걀이나 달걀찜의 덩어리처럼 탱글탱글한 식감을 지닌 겔 형태로 굳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정석영 KAIST 박사과정생은 “달걀찜을 만들려면 먼저 달걀의 껍데기를 깨서 달걀 속 액체를 모아야 하는 것처럼 대장균 또한 껍질인 세포벽과 세포막을 부숴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팀은 대장균 용해물로 머랭 쿠키도 만들었습니다. 연구팀은 대장균 용해물을 튜브에 담고 설탕을 넣었어요. 막대로 충분히 휘저으니 달걀흰자를 휘저을 때 거품이 생기는 것처럼 용해물 표면에도 거품이 생겼어요. 거품 반죽을 오븐으로 옮겨 130°C에서 1시간 30분 동안 구우니 머랭 쿠키가 완성됐습니다.
정석영 KAIST 박사과정생은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달걀을 생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라며 “앞으로는 맛과 영양을 갖춘 대체 음식이 식탁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화석연료는 가라! 미생물 출동한다
미생물을 활용하면 식품뿐만 아니라 원하는 화학물질도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석유를 가공해 만들던 인공 향료를 미생물로도 만들 수 있어요. 지난 2월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팀은 미생물을 사용해 향수나 샴푸에 쓰이는 재스민향을 만드는 방법을 공개했습니다.
재스민 향은 재스민꽃의 기름에서 분리해 얻어요. 하지만 이는 비용이 많이 들고 필요한 만큼 많이 생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산업에서는 석유를 가공해 얻은 화학 물질로 재스민 향을 내는 투명한 액체인 벤질 아세테이트를 합성합니다. 하지만 석유를 가공할 때 이산화황 같은 대기 오염 물질이 발생해 석유를 대체할 새로운 기술이 필요해요. 연구팀은 이 답을 미생물에서 찾았습니다.
대장균은 포도당을 섭취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다양한 물질을 생산해요. 종류에 따라 최종적으로 만들어 내는 물질도 달라집니다. 연구팀은 2종류의 대장균을 섞어서 동시에 키웠습니다.
포도당을 섭취해 벤조산을 생산하는 대장균을 키우고 여기에 벤조산으로부터 벤질 아세테이트를 생산하는 대장균을 섞었어요. 그 결과 두 가지 대장균으로 포도당에서 재스민 향을 내는 벤질 아세테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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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하진 기자 hae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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