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년엔 산성화된 바다로 바캉스 떠난다
"This may be the coolest year of the rest of our lives (올해는 남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해가 될 겁니다)."
2023년 7월 기후 정책 전문가인 애슐리 워드 미국 듀크대 교수의 말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증명하듯 전 세계 해수면 온도는 올해 7월 2일까지 평년보다 상승하며 16개월 연속 최고치를 갈아치웠습니다. 이대로 해수 온도가 계속 오른다면 2100년의 바캉스는 어떤 모습일까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인 과거를 통해 2100년의 바다를 상상해 봤습니다.
● 꽁꽁 언 지구 피서는 적도로?
"2100년이요? 영화 '투모로우'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7월 5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권민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기후예측센터 센터장은 대뜸 영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투모로우는 급격한 지구 온난화가 되려 빙하기를 불러온다는 내용의 재난 영화입니다. 해수 온도 상승이 빙하기를 도래할 수 있다니 무슨의미일까요.
권 센터장은 "기온 상승과 해수 온도 상승으로 빙하가 더 많이 녹으면 극지방의 담수 유입이 증가할 것"이라며 "이는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AMOC・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바다가 순환하는 동력인 열염분 순환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열염분 순환은 해수의 밀도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바다의 대규모 순환입니다. 해수의 밀도는 온도와 염도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해수의 온도가 낮을수록, 염도가 높을수록 밀도가 높습니다. 주위보다 밀도가 큰 해수는 가라앉아 같은 밀도의 해수가 분포하는 수심에 도달한후 수평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열염분 순환의 대표적인 예가 AMOC입니다. AMOC는 북대서양에서 차가운 고염분의 물이 가라앉고 이 물이 남쪽으로 이동해 전 세계적으로 순환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순환의 원동력은 북대서양의 고위도 부분 빙하가 많은 바다에서 차가워진 해수가 아래로 가라앉는 힘입니다.
이런 AMOC가 기후변화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빙하가 녹는 양이 너무 많아섭니다. 최근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북극해에 위치한 그린란드의 빙하는 시간당 평균 3000만 t(톤)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doi: 10.1038/s41586-023-06863-2)
빙하가 많이 녹으면 북대서양 고위도 주변 해수의 염도가 낮아지고 염도가 낮은 해수는 밀도가 낮으니 심해로 잘 가라앉지 못합니다. AMOC 흐름의 큰 동력이 약화되는 겁니다.
논문의 저자인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채드 그린 박사는 "바다에 유입되는 담수의 양이 늘어나면 AMOC 붕괴는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예측한 AMOC의 붕괴 시점은 바로 내년인 2025년입니다.
AMOC가 붕괴된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요. 약 8200년 전 과거에 힌트가 있습니다. 당시 북아메리카 부근의 로렌타이드 빙상이 녹으면서 대량의 담수가 북대서양으로 유입됐습니다. 이는 AMOC의 약화를 초래했고 지구 전체의 열 전달을 방해해 급격한 기후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약 2~4세기 동안 북반구의 고위도 지역의 기온이 약 3℃에서 7℃까지 급격히 하락하는 소빙하기를 맞았죠.
불행 중 다행일까요. 권 센터장은 "영화에서처럼 모든 생명체가 추위에 얼어붙는 형태는 아닐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는 "만약 AMOC 붕괴로 소빙하기가 온다면 극지방 주변, 고위도 부근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며 "중위도 지방은 매우 건조해져 가뭄 등의 피해가 심해질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시원한 곳으로 바캉스를 떠나는 2024년과 달리 2100년 고위도 지역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바다로 떠날지도 모르겠습니다.
● 산성화된 바다… 헤엄치는 건 인간뿐?
한편 2100년의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선 물안경이 필수일겁니다. 피부가 민감한 사람에겐 피부가 바닷물에 노출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수영복도 꼭 필요하겠죠. 2100년의 바다는 지금보다 더 산성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평균 해수 수소이온농도(pH)는 산업혁명 이전 8.2에서 현재 8.08로 하강했습니다.
스페인, 호주, 영국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2100년 이 수치가 7.6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합니다. (doi: 10.3389/fmars.2021.584445) 바다에 녹는 이산화탄소가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는 해양에 흡수되면 물(H₂O)과 만나 탄산(H₂CO₃)을 만듭니다.
탄산은 다시 중탄산염(HCO₃)과 수소 이온(H+)으로 분해됩니다. 이때 나오는 수소 이온이 해수의 산성도를 높이는 겁니다. 문제는 이 높아진 산성도를 다시 낮추기 위해 탄산 이온(CO₃²)이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탄산 이온은 수소 이온과 결합해 중탄산염이 되죠. 이 때문에 pH 수치가 0.1만 떨어져도 바닷속 탄산 이온의 농도는 약 20% 감소합니다. 탄산 이온이 줄어들면 해양 생물의 단단한 외골격을 구성하는 탄산칼슘 형성이 어려워져 굴, 조개류, 연체동물 등이 살아가기 어려워집니다.
외골격이 탄산칼슘으로 이뤄진 산호 군락도 타격을 받습니다. 권 센터장은 "산호 군락의 멸종은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아랫부분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며 "결국 도미노처럼 생태계 전반이 무너지고 해양 생물 절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절멸'이라는 표현이 조금 과하다고 느끼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해양 산성화가 심각했던 2억 5000만 년 전 고생대 페름기 말기의 지구의 모습을 살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페름기 말기 대규모 화산 활동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급격히 증가시켰습니다.
증가한 이산화탄소는 해양으로 흡수돼 해수를 산성화시켰습니다. 2015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 해양의 pH 수치는 0.6~0.7 가량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해양 생물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돼 해양 생물종의 약 96%가 사라지는 대멸종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입니다.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원인이 화산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정도죠. 2100년에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동물은 인간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해수 온도 2.7℃ 상승
혹자는 우리가 바다의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접근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023년 해수 온도가 '역대급'으로 증가한 이유는 엘니뇨 때문이고 엘니뇨는 기후변화가 아닌 일시적인 기후변동이기 때문이지만 해수 온도가 상승하는 장기적인 '경향성'이 심상치 않습니다.
6월 15일 조양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팀은 SSP 시나리오에 따른 21세기 말 해수온도를 예측했습니다. (doi: 10.1029/2024EF004420)
SSP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발전 경로에 따라 미래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그에 따른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경로(SSP1-1.9)부터 환경친화적인 발전과 가장 거리가 먼 경로(SSP5-8.5)까지 5개의 경로로 구분됩니다.
연구팀은 2050 탄소중립 실현을 가정한 SSP1-1.9 시나리오와 현재 지구온난화 추세를 반영한 SSP3-7.0 시나리오로 미래 해수면 온도 변화를 예측했습니다. 그 결과 SSP3-7.0 시나리오에 따라 지구온난화가 지속된다면 21세기말 전 세계 평균 해수면 온도는 지금보다 약 2.7℃ 더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더 나빠질 것 없이 지금처럼만 살아도 2100년에는 바다가 2.7℃ 더 뜨거울 거라는 뜻입니다.
다행히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할 경우 2100년 해수 온도는 0.53~0.61℃ 상승한 뒤 다시 안정 상태에 이릅니다. 조 교수는 "바다는 지구의 에어컨"이라며 "지구의 온도가 오르고 내리는 것 역시 바다에 달려 있어 해수 온도가 급격히 오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데 33년이 걸렸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1990년부터 지금까지 여섯 번의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발간했는데 2023년 발표된 6차 보고서에서야 '기후변화의 가장 큰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권 센터장은 "기후변화에 책임이 큰 국가들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는 중국이고 그 뒤를 미국과 유럽연합이 잇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합치면 전 세계 배출량의 절반에 달합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이유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드는 비용이 더 크다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완전히 바뀐 지구를 다시 돌리는 데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을 이젠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8월호, 2100년, 산성화된 바다로 떠나는 외로운 바캉스
[김미래 기자 futurekim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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