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살인범, 억울한 누명일까…서명운동 일으킨 다큐[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스티븐 에이버리는 미국 위스콘신 매니토웍 카운티에 사는 남자입니다. 에이버리는 1985년 페니 번스턴을 강간한 혐의로 징역 32년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힙니다. 에이버리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을 요구하지만 번번이 기각당합니다. 하지만 사건 당시 검출된 DNA(유전자정보)를 최신 기술로 분석한 결과 진범은 성범죄 전과자인 그레고리 앨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2003년 출소한 에이버리는 자신을 잡아넣은 검사와 보안관서를 상대로 36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합니다.
에이버리의 인생은 다시 급격한 전환을 맞습니다. 2005년 사진작가 테레사 헐바크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당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유죄 판결에는 에이버리의 조카인 브랜든 대시의 증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대시는 경계성 지능장애를 가진 소년입니다. 경찰은 에이버리가 헐바크를 유인해 강간하고 대시에게 살인을 교사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에이버리 측은 경찰이 증거를 조작하고 대시를 협박해 거짓 증언을 받았다고 맞섭니다.
이번주 소개할 작품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살인자 만들기>입니다. 수사당국이 에이버리의 누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증거를 조작해 살인범으로 몰아간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작품입니다.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법정 스릴러 영화 이상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복잡한 사건을 정리해 극적으로 펼치는 연출과 편집의 실력이 대단합니다.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빠르게 달려나갑니다. 경찰 측이 제시한 증거들을 보면 에이버리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경찰 주장의 허점을 후벼파고 증거 조작 정황을 끊임없이 제시합니다. 객관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진실이 사실 얼마나 허술한 편견과 감정 위에 세워져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미국 범죄 다큐멘터리가 흥미진진한 이유는 실제 사건의 실명과 자료들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지 않는 데다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합니다. <살인자 만들기>에서도 에이버리 사건 관계자들의 모든 실명과 얼굴이 모자이크 없이 공개됩니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사건이지만 시청자는 동시대에서 경험하는 듯 생생한 느낌을 받습니다.
다만 <살인자 만들기>가 에이버리 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이버리의 변호사들은 혈액 용기(바이알)에 구멍이 뚫려 있다며 경찰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간호사가 용기에 혈액을 넣기 위해선 주사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구멍이 뚫린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법원도 변호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살인자 만들기>는 이런 반박을 공평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원이 정당한 주장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기각한 것처럼 연출했습니다.
<살인자 만들기>는 탐사보도의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하게 합니다. 2016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시상식에서 논픽션 부문 작품·연출·각본·편집상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에이버리와 대시의 사면을 청원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백악관은 “주 교도소 수감자를 대통령이 사면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살인자 만들기>는 현재 시즌 2까지 제작됐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스펜스 지수 ★★★★ 법정 스릴러 뺨치네
긴가민가 지수 ★★★★★ 진실은 어렵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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