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천국' 정유정 "마음속 야성을 깨우세요"[조수원 BOOK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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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를 만나 흥분한 탓은 아니었다. 지프에 연결된 외등 불빛 때문도 아니었다. 자리에 눕자마자 되돌아온 불청객 때문이었다. 이전보다 두 배나 많은 망둑어가 오른 다리 안에서 날뛰고 있었다.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종횡무진으로 오갔다. 슬리핑백이 들썩거릴까 봐 불안할 지경이었다. 이러다 다리를 움켜쥐고 쌍욕이라고 퍼부을 것 같아 무서웠다."(177쪽) "작가가 '저기에 시체가 있다'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게으른 표현이에요. 독자의 품에다가 시체를 안겨줘야 해요. 시체의 온도, 무게, 감촉 이런 것들을 독자가 생생하게 느껴서 시체를 안고 있는 느낌이 나게 묘사를 해줘야 하거든요."
소설가 정유정(58)이 최근 출간한 '영원한 천국'은 욕망 3부작 중 '완전한 행복' 이후 두 번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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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원 기자 = "여우를 만나 흥분한 탓은 아니었다. 지프에 연결된 외등 불빛 때문도 아니었다. 자리에 눕자마자 되돌아온 불청객 때문이었다. 이전보다 두 배나 많은 망둑어가 오른 다리 안에서 날뛰고 있었다.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종횡무진으로 오갔다. 슬리핑백이 들썩거릴까 봐 불안할 지경이었다. 이러다 다리를 움켜쥐고 쌍욕이라고 퍼부을 것 같아 무서웠다."(177쪽)
"작가가 '저기에 시체가 있다'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게으른 표현이에요. 독자의 품에다가 시체를 안겨줘야 해요. 시체의 온도, 무게, 감촉 이런 것들을 독자가 생생하게 느껴서 시체를 안고 있는 느낌이 나게 묘사를 해줘야 하거든요."
소설가 정유정(58)이 최근 출간한 '영원한 천국'은 욕망 3부작 중 '완전한 행복' 이후 두 번째 작품이다. 루게릭병에 걸린 이해상과 동생을 잃은 도수치료사 임경주가 각각 신체는 사라지고 의식만 남아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가상 세계 롤라와 1인칭 가상 극장 드림시어터를 통해 인간의 불멸 상황에서 나타나는 욕망을 드러낸다.
최근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만난 정유정은 자신의 작품을 감각에 의존하는 소설이라고 했다. "추리 소설처럼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사유하고 철학적인 부분들을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 있다"면서 "스릴러처럼 체험하게 하는 소설이 있는데 제 소설은 체험 소설에 가깝다"고 했다. "독자의 오감이 활짝 열려 주인공과 연결돼 끝까지 푹 빠져 '내가 소설 한 권을 다 읽었구나'라고 만드는 것처럼 체험하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영원한 천국'은 작가의 관심과 경험이 집약됐다. 과거 종합병원 간호사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정유정은 주인공이 루게릭병에 걸린 설정을 설명했다.
정유정은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됐다는 이야기보다 몸에 갇힌 사람이 필요했다"고 했다.
그는 "독자들이 상상하기 좋은 루게릭병을 골랐고 공부를 하면서 이 병은 근육이 펄떡펄떡 뛰는 느낌이 난다는 걸 알았다"며 "문제는 그 사람들의 감각이 고스란히 살아있다는 점이었고 고통도 느끼고 배변·배뇨 등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소설을 위해 정유정은 일본 훗카이도에서 쇄빙선을 타고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에서 캠핑도 했다. 직접 경험한 내용을 작품 속에 녹였다.
주인공 해상의 의식이 멀쩡하지만 몸은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태초의 바다였던 사막에 빗댔다.
그는 "바다는 모든 생명의 발상지이기에 태초에 바다였던 사막을 해상의 공간에 비유하면서 동시에 어린 왕자의 배경이 된 곳인 바하리야 사막을 찾았다"고 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바하리야였다.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가 만났다는 하얀 사막에 누워 별을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어린 왕자 같은 건 그곳에 없으며 별은 홍해에도 많다고 했다.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렇기는 하나 사막여우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반드시 오늘 가야 했다. 사흘 후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이집트는 자주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서른세 번째 생일엔 휠체어에 앉아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아니면 인공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거나."(148쪽)
홀로그램을 통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에 대해 과거 암 투병을 겪은 작가는 삶의 유한성에서 의미를 찾았다. 정유정은 불멸에 대해 "지루할 것 같다"고 했다.
"한없이 산다면 내가 무언가를 이뤄야 되겠다는 욕망도 없고 노력할 일도 없을 것이고 맨날 빈둥빈둥 놀면서 (작품처럼) 롤라 극장이나 들락날락할 텐데 그게 제 취향하고 안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여러분들 마음속 야성을 깨우세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 삶의 가치라 여기는 것에 대한 추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욕망과 추구의 기질에 나는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종종 야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사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중략) 그렇긴 하나, 우리는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개별적 존재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는 내 삶의 실행자인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523쪽)
☞공감언론 뉴시스 tide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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