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국 산부인과 36.2% "임신중절 안 해"…'파트너 동행' 요구

서상혁 기자 홍유진 기자 장성희 기자 김예원 기자 2024. 8.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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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 삼킨 여자들]⑥전국 산부인과 287곳 조사…대부분 10주 이하만 시술
8주 기준 150만 원 부르는 곳도…고무줄 가격에 두 번 눈물 흘리는 여성들

[편집자주] "대한민국에서 임신 중지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다" 과연 그럴까. 의료계는 여전히 임신 중지 수술에 소극적이며, 일부는 진료조차 거부한다. 각자도생에 내몰린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체불명의 판매자를 만나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을 구매한다. 가짜 약인지, 진짜 약인지 확인이 어렵지만 지름 1㎝의 알약을 입안에 털어 꾸역꾸역 삼킨다. 정부와 국회는 뒷짐 진 채 여성들의 '목숨 건 임신 중단'을 관망 중이다. 뉴스1은 지난 2개월간 전국 산부인과 300여 곳을 전수 조사하고, 전국 곳곳에 있는 미프진 판매자들과 구매자 여성들을 직접 만나 대한민국 임신 중지 실태를 심층 분석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서상혁 홍유진 장성희 김예원 기자 = 전국 산부인과 의원 10곳 중 3곳 이상이 인공 임신 중절 시술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시술하는 곳도 대부분 10주 이하인 경우에만 시술하고 있었다.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지 5년이 넘었지만 의료 현장에는 낙태죄의 유산이 남아있는 셈이다.

시술 비용도 천차만별이었다. 8주를 기준으로 50만 원부터, 많게는 150만 원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임신 중절 시술을 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의료계에선 "의사로서 양심상 어떻게 임신 중절을 하겠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종교적인 이유도 의사들이 임신중절을 꺼리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임신중절 시술, 15주가 마지노선…'파트너 대동' 요구도

뉴스1이 지난 5월부터 약 2개월간 수도권·강원·호남·영남·충청 등 전국 산부인과 의료기관(병의원) 287곳을 전화 또는 방문 방식으로 무작위 조사한 결과, 전체의 36.2%(104곳)는 "임신 중절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중 "분만 의원이 아니라 아예 시술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곳은 13곳이었다.

그나마 시술하는 곳도 임신 10주 이후부터는 난색을 보였다. 15주가 마지노선이었다. 임신 중절 시술이 가능하다는 산부인과 183곳 중 "임신 15주 이상도 중절 시술이 가능하다"고 답한 곳은 12곳(6.6%)에 불과했다. 2021년 낙태죄가 폐지된 만큼 현재는 주수와 관계 없이 임신 중절 시술을 해도 '법적으로는' 처벌 효력이 없는 상황이다.

2019년 4월 임신 중단 여성과 의료진을 처벌하는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후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2021년 1월 1일 0시부터 낙태죄는 사라졌다.

하지만 '파트너와 함께 오라'고 병원도 상당수였다. 전체 임신 중절 시술을 하는 183곳 중 "파트너와 같이 와야 한다"고 명확하게 요구한 곳은 76곳(41.5%)이었다. "파트너가 어려우면 남동생이라도 와야 한다"거나 '서로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한 곳도 있었다. 부산의 모 산부인과 실장은 "임신을 혼자 하나. 당연히 필요한 거 아니냐"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다만 '미성년자가 법률 행위 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민법 조항이 있어 미성년자에 대해선 보호자 동의를 구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더라도 성인의 경우 파트너나 보호자 대동을 요구할 법적 근거는 없다.

ⓒ News1 DB

◇임신 중절 시술비 '천차만별' 8주 150만 원 부르는 곳도

시술 비용도 고무줄이었다. 임신 8주 기준으로 가격을 문의한 결과 가격대를 답한 산부인과는 모두 67곳이었다. 적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150만 원까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었다. 8주 기준으로 주 수가 올라갈 때마다 10만원씩 할증이 붙었다. "기록 남는 것을 원치 않으면 현금으로 결제하라"는 곳도 있었다.

모자보건법상 인공 임신 중절에 적용되는 수가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 수가는 △8주 이내 13만3200원 △8주 초과 12주 미만 16만2000원 △12주 이상 16주 미만 21만1800원 △16주 이상 20주 미만 27만2400원 △20주 이상 29만9300원이다.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은 법에서 정하는 5가지 사유(본인 또는 배우자가 유전학적 정신 장애나 신체 질환·본인 또는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성폭행·혈족 간 임신·모체 건강 해칠 우려)로 제한된다. 일반적인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절과 다르게 건강보험 수가가 적용된다.

의료 행위만 놓고 보면 일반적인 중절 시술과 모자보건법상 시술은 다르지 않다. 단지 수가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들은 큰 비용을 물고 있다. 모 산부인과 전문의는 "일반적인 임신중절은 현재 비급여이니, 병원들이 받고 싶은 대로 받는 것"이라며 "임신중절에 대해 의사들의 인식이 좋지 않으니 내키지 않으면 가격을 높게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부작용' 위주 임신중절 상담…산부인과 의사들 "의사로서 양심상 어떻게 하나"

의료계의 보수적인 태도는 '임신 중절 상담'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지난 2021년 임신중절 상담 수가를 신설해 산부인과 의사들이 중절에 대한 의료 상담을 하도록 했다. 다만 상담 항목에 '심한 복통' '자궁 천공' '우울증' 등 부작용이 주로 담긴 탓에 내담자의 판단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적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나영 대표는 "약물의 경우 기본적인 가이드에 따라 조치를 하면 부작용이 높지 않은데, 상담 가이드에는 부작용이 굉장히 과장되게 서술돼 있다"며 "기본적으로 임신 중지 시술에 대한 국제적 가이드라인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의료계는 '의사로서의 양심상' 인공임신중절이 꺼려질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임신중절을 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구절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의료계에선 임신 중절 시술을 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살아있는 생명을 없애는 게 의료 행위는 아니다"며 "임신 중절은 합병증이나 출혈 위험도 커 굉장히 위험한 의료 행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의는 "의료인 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많은 만큼 종교적인 이유도 있다"고 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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