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100개 증발…왜 피해자가 가해자 됐겠나" 하루인베스트 피해자들의 호소
"주변 잘 챙기던 사람이 '인생 끝났다'며 범행 예고"
"극단 선택한 피해자들도"…탄원서엔 엄벌 요청
"열람·등사 거부…사법부 소극적 태도가 일 키워"
전문가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정보는 공개해야"
[서울=뉴시스]홍연우 기자, 임수정 인턴기자 = "평생 커피 한잔, 밥 한 끼 허투루 사 먹지 않으며 모은 돈을 노후 대비를 위해 하루인베스트에 예치해 둔 건데 이 사달이 난 거다. 투자가 아닌 예금 개념이었다. 이자를 많이 준다고 해서 예치를 해둔 건데 그 돈이 한순간에 증발하니 얼마나 지옥 같았겠나. 그런데 이젠 한 순간에 범죄자가 되어버렸으니… 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너무 안타깝죠."
지난 28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법정에선 50대 남성 A씨가 재판을 받던 하루인베스트 대표 이모씨를 법정에서 흉기로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법정에서 발생한 흉기 피습 사건에 시민들은 놀랐으나 피해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28일 살인미수 혐의로 A씨를 현행범 체포했다. 그는 서울남부지법에서 방청 도중 피고인석에 앉아 재판받던 하루인베스트 대표 이모씨의 오른쪽 목 부위를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다. 이씨는 의식이 있는 상태로 병원에 이송돼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출금 중단에 따른 손해에 불만을 품고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며, 입출금 중단 사태로 피해를 입은 배상 신청인단 중 한 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들의 말에 따르면 A씨가 보유하던 비트코인 100여개는 '하루인베스트 러그풀(먹튀) 사태'로 출금 중단됐다. 이는 30일 기준 시가 한화 약 8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A씨와 가깝게 지냈던 또 다른 피해자 B씨는 그를 유순하고 조용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홀로 지내며 프로그래밍 일을 했고, 그렇게 번 돈 한푼 헛되이 쓰지 않는 알뜰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B씨는 "내성적이고 순했다. 술·담배도 일절 하지 않았다"며 "한 가지 기억나는 건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자고 하면 '그런 거 사 먹어본 적 없다. 나는 집에 가서 믹스커피 마시면 된다'며 수줍게 답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조용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라며 "피해자 중에 대구에 사는 분이 있다. 재판 방청을 위해 서울에 오는데 숙박비가 부담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밤을 새우고 온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A씨가 '내가 밖에 나가 있을 테니 나 신경 쓰지 말고 내 방에서 주무시라'고 나서서 말하더라. 그렇게 주변 사람 챙길 줄도 알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이 길어지며 점차 A씨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B씨는 "수사 과정,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아무런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2023년 6월에 입출금이 중단됐는데 1년이 지나도록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를 못하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옥 같았겠나"고 말했다.
그는 "A씨가 얼마 전부터 '내 인생은 끝났고, 저 사람들이 돈을 줄 것 같지도 않다'는 말을 몇 차례 했다"며 "언젠간 일이 터질 것 같아 (A씨를 말렸는데) 하필이면 딱 하루 재판 방청에 20분가량 늦은 날 일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B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에는 이처럼 절박한 피해자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B씨는 탄원서에서 "이미 일부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남은 피해자들은 이혼하거나 생계유지를 위해 참담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그 피해는 더 끔찍한 결과를 낳고 있다"고 했다.
이 탄원서는 이번 사태의 핵심 관련자로 꼽히는 방모씨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에 제출됐다. 방씨는 하루인베스트먼트의 파트너사인 B&S 홀딩스의 대주주로 이번 사태의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1심 재판부는 지난 13일 그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으나 방씨가 이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피해자들은 사법부의 소극적 태도가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하루인베스트 피해자들은 경영진 기소 후 사건 기록 열람·등사를 요청해 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자가 1만명이 넘는 사건인 데다 자료의 양도 방대하다 보니 재판 진행상 편의를 위해 열람·등사를 불허하고 있다는 것이다.
B씨는 "계속해서 검사에게 '최소한 사건의 전말이라도 알려달라'고 여러차례 얘기했는데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법원에서도 계속 열람·등사를 거부했다"며 "피해자들 사이에선 판·검사를 향한 원망도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그는 "외국인 피해자들의 경우엔 더 심각하다"며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서 한국인 피해자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번역기로 번역해 겨우 사건을 파악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비교적 최근 등장한 유형의 사기 사건인 만큼 수사 진행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면서도 피해자들과 최소한의 정보는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임석순 한경대 법학과 교수는 "사적 복수를 막는 차원에서 피해자들이 가급적 형사 절차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지양한 것이 근대 형사법 체계의 기본적 취지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입장에선 충분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임 교수는 "수사기관의 입장에선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정보가 누설되면 피해자를 가장한 가해자가 정보를 입수해 범죄 사실을 은닉하는 등의 부작용도 생길 수 있어 조심스럽다"면서도 "최소한의 선에서 수사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보공개 자체는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희봉 변호사(법무법인 로피드)는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 과정에서 사기가 발생하는 사례가 최근에 발생했다. 기존 사기 사건을 수사해 왔던 수사기관도 낯선 유형의 사건이라 사건 파악이나 수사에 시간이 좀 더 걸렸을 것이고, 피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렇지만 수사 이후 재판에 들어가게 되면 다르다. 피해자라는 점이 소명이 된 상황에선 검찰이 제출한 수사 기록을 볼 수 있게 해줘야 하고, 재판 진행 상황 등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ong1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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