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빠 영화, 봐줘야지!" 팬덤 영화가 잘 나가는 이유

김소연 기자, 차유채 기자 2024. 8. 3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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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팬덤에 빠진 극장가 ②
[편집자주]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OTT 가입자, 비싸진 극장 관람료 탓에 관객들이 극장을 외면하는 시대다. 그러나 앞다퉈 극장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다. '스타 팬덤'들이다. 스타를 주인공 삼아 만든 영화가 극장가의 새 수익원으로 떠올랐다. 영화계 팬덤 세계를 들여다봤다.

#송정화(42·가명)씨는 임영웅 콘서트 실황 영화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 개봉일인 28일에 맞춰 영화를 아이맥스로 예매했다. '미스터트롯' 때부터 임영웅 팬이었던 어머니 영향으로 투표에 동참하고, 콘서트에 따라갔다가 그 역시 팬이 됐다. 이번 영화에 담긴 상암 콘서트는 그가 예매에 실패했던 콘서트다. 송 씨는 "못 본 콘서트를 아이맥스 관에서 상영한다고 해 바로 예매했다"며 "사운드가 생생하고, 비하인드 이야기까지 있다고 하니 비싸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콘서트 실황 영화 연도별 매출 추이/그래픽=윤선정
극장업계에 팬덤을 노린 콘서트 실황 영화 바람이 거세다. 오는 28일 CJ CGV 단독으로 개봉하는 임영웅의 콘서트 실황 영화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은 지난 27일 기준 예매 관객 숫자만 12만8200여명에 달하며 할리우드 대작을 제치고 실시간 예매율 1위를 달성했다.

지난해 개봉했던 임영웅의 첫 번째 콘서트 실황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이 최종 25만명의 관객을 기록했는데, 예매분으로만 지난번 영화 관객 수 절반 이상을 넘어섰다. 이 같은 추세라면 국내 콘서트 실황 영화 최고 관객 기록인 방탄소년단(BTS)의 2019 영화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34만명)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임영웅뿐만이 아니다. 요새 가장 '핫'하다는 스타들은 모두 극장에 있다. 현재 최고 인기인 아이돌 블랙핑크·에스파·세븐틴, BTS(방탄소년단) 슈가 등은 물론, 지오디·김준수·이준호 등 1~2세대 아이돌들도 올해 콘서트 실황 영화로 관객을 만났다. 올해 상반기 14개 영화가 개봉했고, 27일 기준 벌어들인 매출액은 71억원여에 달한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임영웅 영화 예매분까지 포함하면 관련 매출액은 27일 기준 110억원을 넘어선다.

콘서트 실황 영화가 전체 영화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에 불과하다. 그러나 K팝의 인기를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세를 나타내고, 충성도가 높아 관객 가뭄에 시달리는 극장업계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주목받은 콘서트 실황 영화…OTT와 차별화 꾀하는 극장가에 '묘책'
콘서트 실황 영화가 주목받은 것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밀폐된 공간인 극장은 텅텅 비었지만, OTT(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극장가가 한산하던 팬데믹 기간, 기대 없이 개봉한 콘서트 실황 영화 3편은 30만명가량 관객을 끌어모았다.

코로나19 탓에 그해 전체 영화 관람객 숫자는 5952만명으로 2019년(2억2668만명) 비해 5분의 1토막이 났었다. 이 시기, 기대하지 않았던 팬덤 영화가 30만명의 관객을 모은 것은 이례적이었다. 충성도 높은 팬덤 덕에 콘서트 실황 영화는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서도 취소 없이 높은 좌석 점유율을 자랑했다.

이후 콘서트 실황 영화는 2021년 3편, 2022년 5편, 2023년 14편으로 개봉 작품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14편의 작품이 개봉했다. 하반기에도 가수 남진,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 등의 콘서트 실황 영화 개봉이 예정돼 있다.

콘서트 실황 영화는 극장업계에 여러모로 이득이다. 생존이 최대 과제가 된 극장업계는 OTT와의 차별화 요소로 체험형 콘텐츠를 앞세워 아이맥스, 스크린X, 4D, 광음시네마 등 프리미엄 상영관에 투자했다.

한 번 관람에 적어도 2만~3만원을 투입해야 하는 특수상영관에서 아무 콘텐츠나 보지는 않을 터. 그동안 마블 시리즈 등 특수 기법으로 제작한 할리우드 대작만 특수 상영관을 채웠다. 그러나 대작은 1년에 1~2편 나오기 마련이고, 최근에는 마블 시리즈 등 프랜차이즈 영화마저 인기가 시들해졌다.

그 공백을 콘서트 실황 영화가 메꿔주고 있다. 콘서트 실황 영화는 큰 스크린과 뛰어난 음질, 생생한 화질이 강점인 특수 영화관에 맞춤형 콘텐츠다.
"내 최애가 영화 나오는데, 가줘야지!" 팬덤 강화 효과도
치열한 예매 전쟁에 밀려 콘서트를 관람하지 못한 팬들에게 콘서트 실황 영화는 선물 같은 콘텐츠다. 실제 이번에 영화화된 임영웅 상암 콘서트의 경우 VIP석 암표가 5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예매는 물론, 좋은 자리 얻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경쟁을 뚫고 콘서트를 봤더라도 내 '최애(가장 좋아하는 스타)'의 콘서트 전후 이야기가 담긴 콘텐츠라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콘서트 티켓 비용으로 수십만원을 지출하는 팬들에게 특수 영화관 관람료는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금액이다.

CJ CGV 관계자는 "임영웅 영화 개봉 첫날 용산 아이맥스 영화관 624석이 전부 매진됐는데 이는 지난 2월 '듄2' 이후 처음"이라며 "아이맥스관은 '1.43대 1' 스크린 비율에 맞춰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가 나올 때나 매진되는 큰 영화관"이라고 전했다.

영화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 속 장면/사진=CJ CGV

그러면서 "콘서트 현장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려 편집에 신경을 쓰고 스타의 생각, 콘서트 뒷이야기까지 담아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콘서트 실황 영화는 팬덤을 강화하는 기제로도 쓰인다. 혼자 편하게 집에서 보는 OTT와 달리,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응원하고 노래를 부르는(싱어롱 상영관 한정) 행위는 팬덤을 공고히 한다. '찐팬'임을 입증하고 싶다면 내 최애의 콘서트 영화 N차 관람은 필수다.

하재근 영화평론가는 "모여서 보면 혼자 볼 때와 달리 콘서트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극장은 스크린이 크고 음향 설비가 좋아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 역시 위안이 되고 더 특별한 경험이 된다"고 분석했다.

기획사 역시 이미 진행했던 콘서트의 기록을 극장판으로 재가공하는 것인 만큼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 잘 되면 수익성 극대화에 도움이 된다. 팬덤이 크지 않아 관객이 적게 들어도 팬덤에 소비할 새로운 콘텐츠를 줬다는 측면에서 팬 서비스가 좋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콘서트 실황 영화 덕분에 특수관도 '특수'

일반 영화 대 특수 상영 매출 비교/그래픽=최헌정
콘서트 실황 영화 상영이 늘면서 특수 상영관 매출은 영화 산업이 지지부진한 와중에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매년 발표하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화의 특수 상영(아이맥스, 4D, 스크린X, 돌비시네마 등) 매출액은 195억원으로 전년보다 37% 증가해 2018년 집계 시작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특수 상영 매출이 같은 기간 1264억원에서 1124억원으로 11% 역신장한 가운데 나온 기록이다.

영진위는 이에 대해 "아이맥스와 스크린X가 주를 이루는 콘서트 실황 영화의 흥행에 따른 것"이라며 "콘서트 실황 영화가 극장에서 주요 장르이자 간과할 수 없는 흥행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업계 전문가들은 팬덤을 겨냥한 콘서트 실황 영화가 극장업계의 돌파구가 되고, 나아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 역시 조심스레 점친다. 해외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 등이 최초로 1억달러 넘는 수입을 기록하는 등 가능성은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가장 거대한 팬덤을 자랑하는 방탄소년단(BTS)이나 임영웅조차도 아직 상업영화로서 흥행 분기점인 100만 관객을 넘지 못했다. 전찬일 영화 평론가는 "현재 극장은 살아남는 게 지상 과제이기 때문에 콘서트 실황 영화 등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 "팬덤의 반짝 소비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팬덤의 N차 관람을 유발하고, 일반 관객까지 유입하기 위해 콘텐츠 차별화가 필요하다. 김헌식 영화 평론가는 "공연 실황 영화가 K팝 성장과 맞물려 더 증가할 것"이라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까지 연출 기법 등을 다양화하고 전문 영화감독들도 참여해 퀄리티를 높이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소연 기자 nicksy@mt.co.kr 차유채 기자 jejuflow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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